행복한 눈물
행복한 눈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5.2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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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송아지 한 마리가 돼지고기 삼겹살 1인분 값에 지나지 않자 슬픈 워낭소리가 온천지에 메아리쳤던 적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수입 쇠고기 광우병사태로 뒤숭숭했다. 그러나 조사단의 현지 확인 후 다행히 식품건강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송아지 이야기가 나왔으니 근대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이중섭의 ‘황소(1953)’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평안남도 평안의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18세 되던 해까지 들판에 있는 ‘소’를 유난히 관찰하고 스케치하기를 좋아했다. 6ㆍ25전란을 맞아 남으로 내려와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피난살이했다. 그 후 일본인 아내와 자식을 일본에 두고 기러기아빠 신세로 40세에 생을 마감했는데 유명한 작품 ‘황소’를 그려 엄청난 수작으로 인정받는다. 그는 소의 외침을 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해 유달리 많은 주름을 그려 넣었고 코와 입에 칠해진 강렬한 붉은색이나 사람 얼굴처럼 소의 표정을 그려 매우 생동감 있고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작품에서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본질’은 무얼까? 그것은 우람한 황소 모습 그 자체가 아니라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의 간절한 ‘향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1950년 이후 이중섭과 쌍벽을 이룬 작가로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현대적인 화가 박수근이 있다. 강원도 양구 산골에서 태어난 그는 소재를 생활 속에서 찾아 시골 사람들이 자주 등장하는 그야말로 거짓없는 한국의 평범한 서민상을 잘 묘사했다. 화면의 바탕은 유난히 화강암 표면같이 우툴두툴한 효과를 자아내고 있는데 그러한 화면에 묘사한 그의 대표작 ‘아기 업은 소녀(1963)’는 너무나 유명하다.

바가지 머리모양을 한 시골소녀가 그냥 아기 업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림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작가의 본심은 이름 없고 가난한 서민의 삶을 소재로 한 그야말로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리자는 것이다.

이러한 향토성 있는 화가는 머나먼 이국땅 미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뉴욕적이고 뉴욕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미국인의 향수를 잘 자아내는 뉴욕 맨해튼 출신인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이 있다. 그의 대표작 중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인기작 ‘행복한 눈물(Happy Tears, 1964)’은 언젠가 국내 대재벌이 회사 감사를 받으면서 세간의 뉴스거리가 되었던 문제의 작품이기도 하다. 화면을 유심히 쳐다보면, 빨강머리에 눈물을 흘리면서 웃고 있는 모습, 게다가 빨간 입술을 반쯤 벌리고 애처로운 눈빛을 한 여성 캐릭터가 들어간 만화 같기도 한 그림이다.

그 역시 표현하고자 하는 본심은, 빨간 입술의 요염한 여자 모습이 아니라, 미국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흘러간 그 옛날의 문화에 갈증을 느끼게 하는데 있다.

생뚱맞은 이야기이지만 잠시 ‘먹을거리’에 대해 화제를 돌려보기로 한다. 6ㆍ25전란 이후 피난시절, 먹을 것이 없었던 서민들에게 공짜로 비빔밥을 보시(布施)한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할머니의 딸, 그 딸의 며느리, 또 그 며느리의 딸과 사위, 4대째로 86년째 이어지고 있는 울산의 어느 비빔밥집이다. 그 가게에 문을 열고 들어가 앉으면 종업원이 살포시 꿇어앉아 주문을 받는다. “소고기는 삶은 걸로 할까요? 날 것으로 할까요”라고. 곁들여 나오는 한국의 전통 놋쇠그릇에 탕국을 함께 먹으면 한껏 포근한 고향의 맛으로 돌아가게 된다.

언젠가 일본인 교수 두 명과 초청강연회를 마치고 이 음식점에 와서 함께 식사한 적이 있다. 그런데 금방 나온 비빔밥을 필자가 용감하게 비벼대니, “아니, 보기 좋은 음식을 그냥 그대로 먹으면 좋을 텐데 왜 비비는 건가요”라고 물어본다. 언뜻 필자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조목조목 설득시켜 주었다. “이 음식은 혼동 상태가 될 때까지 비벼야 맛이 있지요. 여러 재료들이 섞이면 맛은 최고조로 달하지 않습니까? 노련한 지휘자의 지휘봉에 따라 연주되는 오케스트라의 하모니를 들어보셨지요? 비빔밥의 진정한 맛은 ‘조화’에서 생기는 것이지요…”

이와 같이 비빔밥과 향토 작가들의 작품에서, 우리는 그것을 외형의 모습 그대로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 바깥 외형만 보고 가볍게 판단하기 보다는, 그 내면의 진정한 본질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깨달아갈 때 우리의 삶은, 진정 가치 있고 행복한 일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김원호 울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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