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 가면 아직도 선생의 향기 물씬
그 곳에 가면 아직도 선생의 향기 물씬
  • 김영수 기자
  • 승인 2008.05.08 2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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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박경리 선생의 흔적을 찾아서…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

- 박경리 詩 옛날 그집 중에서

25년에 걸쳐 4만매의 원고지에 6백만자로 이룩된

우리 문학 최대의 작품인 토지.

대하 소설 토지의 작가인 박경리 선생이

지난 5일 향년 82세를 일기로 오후3시께 타계했다.

토지를 비롯해 '김약국의 딸들’ ‘시인과 전장' 등의

장편소설로 한국문학의 새 경지를 개척한

박경리 선생.

▲ 박경리 선생의 묘소가 들어설 통영 미륵산.

이제 박경리 선생은 통영 앞바다가 보이는

통영 미륵산 기슭에 영면하셨지만

선생의 향기와 흔적은

아직도 통영, 하동, 원주에 남아있다.

소설 '토지'와 '김약국의 딸들' 이라는 지도를 들고

박경리 선생의 향기를 따라

선생을 추억하는 여행을 떠나보자.

'죽으면 내 고향 통영에 묻히고 싶다'

통영 박경리 선생 생가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 그 고장의 젊은 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 만큼 바닷빛은 맑고 푸르다. - 김약국의 딸들 중에서-

박경리 선생의 생가(통영시 문화동 328-1번지)는 통영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서문고개에 있다.

수군통제영 서문이 있었다고 해서 서문고개. 서피랑이라고 불리는 이 고개는 ‘서문고랑’ ‘성날’ ‘뚝지먼당’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있다.

고갯길 입구에는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작품비가 서있다.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서 소개되는 간창골 세병관 대밭골과 명정골 등 주변의 지명을 확인 할 수 있다. 초라한 서민주택가가 늘어서 있는 언덕.

그 언덕 위에 박경리 선생의 생가가 있다. 이제는 콘크리트 주택이 들어서 예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사실 박경리 선생은 통영을 떠난 뒤 50년동안 고향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통영시장 등이 고향방문을 부탁해 지난 2004년 11월에 50년만에 통영을 찾았다. 그리고 지난해 81회 생일을 맞아 통영의 한 펜션에서 머문 박경리선생이 ‘죽으면 통영에 묻히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박경리 선생의 묘소는 한산도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미륵산 기슭에 조성됐다.

▲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

온통 '토지'로 물든 풍요로운 옛 고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

‘사고하는 것은 능동성의 근원이며 창조의 원천이다’

- 박경리 선생 말씀 중에서-

갑오농민전쟁으로 수백년간 유지돼 온 봉건질서가 뿌리로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한말의 혼돈에서부터 일제 식민지를 거쳐 해방에 이르기까지 60여년을 관통하고 있는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섬진강이 주는 혜택을 한몸에 받은 땅인 평사리에는 온통 ‘토지’로 물들여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참판댁을 올라가는 길은 구불구불하다. 옛 돌담을 덮고 있는 담쟁이가 정겹고 최참판댁 마당에서 내려다보는 평사리의 전경은 풍요로운 옛 고을을 느끼게 해준다. 이 곳에는 소설속의 최참판댁이 한옥 14동으로 재현돼 있으며 조선후기 우리 민족의 생활모습을 담은 초가집, 유물 등 드라마 토지의 세트장이 자리잡고 있다. 각 세트별로 드라마에 나왔던 배우사진과 극중 역할에 대한 부연설명이 돼 있으며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매년 10월에는 전국 문인들의 문학축제인 토지문학제가 이곳에서 개최되어 문학마을로써 자리매김 하고 있고 또한 소설 속의 두 주인공을 캐릭터로 개발해 관광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박경리 선생은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 이 곳을 찾은 적이 없다. 1960년대 화개의 친척집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한번 스쳐 지나가면서 구상하고 있던 토지의 무대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 소설 속 동네의 구조와 실제 평사리의 모습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 원주시 토지 문학공원.문화관

선생이 손수 가꾼 텃밭...쉼터로 제격

강원도 원주시 토지 문학공원.문화관

‘내가 원주를 사랑한다는 것은 산천을 사랑한다는 애기다. 원래의 대지, 본질적인 땅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원주’, 그 이름 자체를 나는 사랑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얼마나 그 대지의 모성으로부터 떠나 있는가.’ -박경리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 중에서-

박경리 선생과 강원도 원주는 각별한 인연을 가진 도시.

지난 1980년 시집간 딸 을 도와주기 위해 강원도 원주 단구동으로 이사와 소설 토지의 4부와 5부를 탈고하고 26년간의 토지의 집필을 마무리 한 인연이 있는 곳. 원주에 소재한 연세대학교 매지캠퍼스 국어국문과의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원주시는 이런 박경리 선생과의 인연을 기념해 지난 1999년 5월 토지문학공원을 건립했다. 토지문학공원에는 박경리 선생이 토지를 집필했던 옛집과 정원을 원형대로 보존했고 소설 토지의 배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3개의 테마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 박경리 선생 옛집 집필실.

박경리 선생이 16년간 살면서 소설 ‘토지’를 완성한 옛집은 선생이 손수 가꾸던 텃밭, 나무와 꽃을 보존하면서 돌담을 쌓고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쉼터를 새로 만들었다. 건물은 원형 그대로 내부 및 외벽을 보수하였으며 1층은 선생이 생활하던 자취를 볼 수 있도록 가구나 집필도구를 기증받아 전시관으로 조성했다.

이 밖에도 소설 ‘토지’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고향, 평사리의 들녘이 연상되도록 섬진강 선착장, 둑길, 정자 등을 배치한 ‘평사리 마당’과 토지속의 대표적인 아이 주인공인 홍이의 이름에서 따와 아이들이 뛰어놀수 있는 ‘홍이동산’이 꾸며져 있다.

/ 김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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