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사마광이 독을 깬 사연
어린 사마광이 독을 깬 사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5.06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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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송(北宋·960~1126년)시대에 살았던 학자이면서 정치가였던 사마광(司馬光·1019~1086년)이 어렸을 때 겪은 일화가 그림과 시로 전해온다. 격옹도시(擊瓮圖詩)다. 그가 여러 친구들과 함께 놀다가 한 아이가 잘못하여 물을 담아 둔 큰 물 독 속에 빠졌다. 다른 아이들은 겁내어 달아났으나 자신은 곧 돌로 독을 쳐서 깨뜨려 아이를 구하였다고 하였다.

성현(成俔·1439~1504년)이 지은 용제총화에 보면, 격옹도시를 읽은 조선의 문신 김수온(金守溫·1409∼1481년)은 운(韻)을 내어서 “독 속의 천지가 홀연히 시원스럽게 열리니 산천과 만물이 한 가지로 밝게 되살아나네”라고 읊조렸다. 이 내용이 그림으로 그려져 격옹도(擊瓮圖)라 한다.

이 시와 그림이 만고(萬古)에 빛나는 것은 어린아이가 위급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상황을 해결하는 지혜와 순발력에 놀라면서 한편에선, 사람의 목숨 앞에 더 귀한 것은 없다는 세상의 이치를 이미 깨우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제11권 3월 24일(병술) 2번째 기사에 의하면, 임금은 사마광이 지은 자치통감의 강목(資治通鑑綱目)을 찍느라고 고생하는 주자소(鑄字所)에 자주 술과 고기를 내려 주었는데, 근 2년 동안 술 1백20병을 내려 주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와 함께 떠오르는 그림은 컬럼버스의 계란이야기다.

신대륙을 개척하러 떠난 이탈리아 사람 콜럼버스는 그들이 가고자 했던 곳과는 다른 대륙인 서인도제도(중앙아메리카)를 발견한다. 이 글에선 굳이 신대륙의 발견은 곧, 토착인의 수난의 역사로 이어 졌음은 차치하고, 그의 기발한 발상을 말하려 한다. 콜럼버스는 그의 귀국을 기념하는 파티 자리에서 그의 성공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귀족들이 계란을 세워보라는 제안을 하는데, 그는 스스럼없이 계란의 한 쪽 부분을 깨뜨린 후 식탁 위에 세웠다고 한다. 너무나 쉽고 그럼에도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발상은 인상 깊게 남아 있다.

1989년 11월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옛 소련)은 이른바 고르비(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러시아어:perestroika-개혁)와 글라스노스트(러:glasnost’-개방) 정책에 따른 후속 조처가 제대로 실행되지 못한 가운데 이념의 바로미터인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 10월 3일 분단 41년 만에 독일이 통일이 되었다. 앞서 3월에는 북유럽 발트 3국인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가 도미노 현상에 힘입어 그동안 소련의 무력에 의해 빼앗긴 조국을 되찾았다. 이로써 냉전 관계를 유지해 오던 동서(東西)는 해빙기를 맞게 되었다.

발트 3국은 당시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의 130개 다민족 국가에 속했다. 그들 3국은 독립과 동시에 합법적으로 제일 먼저 실행한 것이 그들 나라이름의 우표발행이었다. 1918년부터 발행했으나, 소련에 복속되면서 중단된 자국의 우표가 1991년 광복(光復)과 함께 비로소 자기 나라의 이름으로 다시 기념우표를 발행함으로써 독립국가로서 정체성을 세계만방에 알리기 시작했다. 1880년 세계 최초의 우표가 영국에서 발행되고 4년 후인 1884년 대한제국이 우표를 발행했음에도 김옥균, 홍영식이 주도한 갑신정변에 의해 우정총국이 문을 닫으면서 10년 동안 우정 사업이 중지되기도 했다. 아무튼 36년간 일제강점기를 지낸 우리 나라의 입장과 별반 다름없는 동질성을 3국에서 발행한 독립기념우표에서 찾아보았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당나라의 제왕 이세민에 대한 글인, 당 태종의 평전에서 태종의 용인술을 보여 주는 대목이 나온다. ‘비천한 사람이라 하여 임용하지 않는 일이 없고 멸시 받는 사람이라 하여 존중하지 않는 적이 없다.’고 함에서 깨우침을 얻어 밑줄을 그어 두었다.

나라든 개인이든 세상을 이타적 입장에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만난다면 별반 어려울 것이 없다고 믿는다. 가끔 너무나 당연한 진리를 앞에 두고 편 갈이를 하는 등의 욕심에 갇히다 보니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많은 어려움에 당함은 아닐런지.

언젠가 필자가 칼에 손을 벴는데 이 상황을 본 아이가 ‘빨리 본드 바르세요!’라고 하였다. 제 딴엔 유치원에서 본드를 발라 왕관을 붙이던 것이 생각난 것이었다. 기발하지 않은가. 이 상황에서 어떡하죠, 어쩌죠 하며 허둥대는 모습과 비교한다면, 너무나 자신감에 찬 대응 방안이었으며, 섬광처럼 지나친 순간의 그 바탕에는 굉장한 따뜻함과 사랑이 묻어 있었음을 믿었다. 어린 사마광이 큰 독을 깨뜨려 친구를 물속에서 구한 큰 지혜도 빛나는 사랑이었음에 다름이 없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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