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녀석들
용감한 녀석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5.02 20: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필자는 문수산 아래에 위치한 직장에서 그다지 멀지않은 곳에 살고 있다. 그래서 문수산을 자주 올라간다. 올라가다 왼쪽에 보면, 1997년 개봉한 ‘콘택트’라는 SF영화에 나오는 것과 닮은 둥근 망원경 하나가 우람하게 보인다. 그것은 울산대학교 천문대에 자리잡고 있는 지름 21m의 엄청나게 큰 전파망원경(KVN)이다. 아침에 한쪽으로 기울어 있으면 오후에는 반대편으로 기울어져 하늘을 향하고 있다. 오늘밤에도 아마 하늘을 쳐다보고 수많은 별들을 향하여 우주의 신비를 관찰하고 있을 것이다.

이 큰 망원경을 보니 인류가 처음으로 달나라를 밟은 역사적인 날이 생각난다. 1969년 7월 21일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은 달 표면을 처음으로 밟은 후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 있어서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 있어서는 위대한 비약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제트기 조종사로 한국전쟁 때 참전 경험이 있는 그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하늘에 대한 궁금증도 너무나 많았다. 친구들에게는 장래 꼭 멋진 비행사가 되겠다고 ‘약속’을 했고 그래서 비행기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 후 해군 비행사가 된 어느 날, 소련에서 우주여행을 한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하고 NASA에 들어가 우주선을 조정하는 비행사가 됐다. 혹독한 훈련 때문에 비행사를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그는 친구들과 했던 어릴 때 ‘약속’을 떠올리면서 어떠한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강인한 용기로 이겨냈다. 무엇보다 무사히 달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과의 ‘약속’과 자신의 ‘책임감’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와 이름이 같은 랜스 암스트롱(Lance A.)이라는 사이클 선수가 있다. 매년 7월이 되면 프랑스에서는 세계최고 권위의 도로 사이클대회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로 온통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인다. 올해 98회째를 맞는 이 대회는 20일 동안이나 알프스 산맥을 포함해 프랑스 전역과 스위스·독일을 거쳐 약 4천㎞의 20개 구간을 달리는 대회를 말한다. 천국의 풍경에서 펼쳐지는 지옥의 레이스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인간 한계에의 도전이지만 알프스의 눈 덮인 산과 군데군데 코발트 색깔의 호수를 넘는 고산지대 풍경은 한 폭의 그림같이 매우 환상적이다. 유럽에서는 월드컵 축구 못지않게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사이클 선수라면 누구나 이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한다.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무엇보다 이 대회에서 ‘인간승리’의 감동을 전해준 미국의 랜스 암스트롱이라는 선수이다. 고환암 판정을 받은 그는 고환을 제거한데 이어 뇌까지 전이된 암세포를 도려내는 큰 수술을 받았다. 생존율 절반에 승부를 건 그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3년여의 투병생활을 마치고 1999년부터 연속 7회나 우승하는 대신화(大神話)를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레이스는 언제나 연극 이상의 극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자기 의지를 말하기도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같은 이름인 루이 암스트롱(Louis A.)도 화제로 올릴 수 있다. 위대한 트럼펫 주자이며 재즈계의 대부인 그에게는 유명한 팝송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What A Wonderful World)’라는 노래가 있다. 여기에는 그의 중저음의 거친 목소리에 담긴 천진스러움과 열정이 전율을 느낄 정도로 아름다운 선율과 사랑스럽게 혼합돼 있다. 그는 뉴올리언스의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자라 돈을 벌기 위해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고, 새해전야를 자축하는 기분에 총을 쏘다가 체포돼 소년원에 수용된다. 그곳 생활은 엄격하고 힘들었지만 악기와의 만남이 그의 고독을 구원해 준다. 그가 소년원밴드에 들어간 어느 날, 그곳의 기상과 소등을 알려주는 나팔수가 갑자기 나가게 돼 그 일을 대신 맡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나팔소리에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기상했으며 아주 편안한 기분으로 잠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계기로 소년원에서 장래 트럼펫 연주자가 되겠다고 자기의 입술을 찢어버리는 ‘의지’의 사나이가 된다.

결론을 지으면, 어릴 때 친구들에게 이야기한 약속을 강인한 용기와 책임감으로 인류 최초의 달나라 착륙이라는 신기원을 세운 닐 암스트롱, 또 암에 걸려 뇌까지 전이된 몸을 수술 후 사이클로 치유한 랜스, 그리고 좋지 않는 환경에서도 강인한 의지로 난관을 극복한 재즈계의 대부 루이, 이들을 통하여 우리는 약속, 책임감, 의지력이 얼마나 우리들의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인지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정말 요즈음 유행하는 인기 개그프로의 말대로 ‘용감한 녀석들’이 아닌가?

<김원호 울산대 교수>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