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과 성적
인성과 성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4.25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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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가 되고 얼마 되지 않은 날. 큰 딸아이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가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에 새 교장선생님이 부임을 하셨는데 부임 첫날부터 학생들을 파격적(?)으로 다뤄 그에 반기를 든 일부 학생들이 그들의 트위터에 교장선생님을 지칭하여 육두문자를 날리며 물러가라고 했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지만 곧 어떤 이유에서인지 밝혀졌다.

얼마 전 학교에서 진학상담 설명회를 개최한다 하여 고3인 아이가 눈에 밟혀 바쁜 걸음으로 학교를 찾았다. 순서에 의해 문제의 교장선생님이 인사말씀을 하셨다. 작은 체구의 모습이었지만 강건함이 보였고 다소의 떨림과 긴장이 느껴졌지만 대체로 목소리엔 힘이 넘쳤다. 학교의 역사가 깊은 만큼 낙후된 시설과 교칙을 소소히 어기고, 짧은 교복치마와 분방한 생활태도, 그리고 선생님에 대한 인사성 및 예절을 잊은 듯한 학생들을 보니 모교이면서 교편생활을 하였던 곳이기에 안타까움이 크셨다한다. 한마디로 변질에 속상한 교장선생님과 늘 그래왔던 것을 늘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학생들과의 전쟁이었다.

오래 전 큰 딸이 초등학교 다닐 무렵이었다. 아이는 아이답게 친구들과 놀면서 유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딸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한 적이 없었다. 몇 문제 되지 않는 받아쓰기에 엄마들이 목숨을 걸고 심지어는 현금과 상품까지 걸어 백점에 승부수를 던지는 것을 보았지만 한글이야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다 뗄 것을 확신하였던 터라 크게 걱정이 없었다. 중간 이상만 하면 모자라지는 않는다고 이야기를 해왔던 까닭에 딸아이는 늘 60점짜리 시험지를 태극기마냥 펄럭이며 해맑은 모습으로 집에 오곤 했다.

그에 반해서 사람이 사람냄새 나게 살아야 한다는 밥상머리 교육은 극성스러울 정도로 했었다. 딸아이가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할 때부터 부끄러워해야 할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른에 대한 예절과 예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가족, 친구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은 덕분에 아이의 인성은 누가 뭐래도 제대로 갖춰졌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아이의 인성은 이만하면 괜찮은데 이제 공부를 좀 시키는 것이 어떻겠냐는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은 것이다. 그런 내용의 전화야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지만 반복되는 선생님의 전화에 신랑으로부터 핀잔을 받고 말았다.

성화에 못 이겨 결국은 공부를 시키기로 했는데 역시 제 자식을 가르친다는 것이 가장 힘든 것임을 이미 터득한 터였던지라 고민 끝에 동네 또래 친구 몇을 모아서 공부방을 열었다.

‘스마일클럽’이 공부방의 이름이었다. 여기서 나는 초등학생들이 배우는 국어와 수학을 가르쳤고 아울러 한문과 영어, 과학까지도 가르쳤다. 아이들은 늘 재미나게 가르쳐주는 나를 잘 따랐고 수줍음을 떨치고 결국은 주도적으로 학습하게 되었다. 얼마 후 중간고사를 맞이했다. 신통하게도 이 아이들의 성적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아이들 스스로도 놀라했고 녀석들의 엄마도 놀라워했다. 그 후로 몇몇의 엄마에게 공부방에 가입을 시켜달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러나 공부방의 운영은 그리 길지 않았다. 녀석들의 치다꺼리가 힘든 것도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하면 된다는 것을 이미 가르쳐주었고 또한 아이들도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즐겁게 하는 공부의 묘미를 덤으로 알게 된데다 또 하나의 성과는 예의와 범절까지 훌륭해졌으니 필요 이상의 목적을 달성한 까닭이었다.

이미 어린 날 엄마의 손에 이끌려 귀를 뚫고, 짧은 치마에 익숙해졌으며, 하나뿐인 자식이라 그저 오냐오냐 컸을 학생들과 하나 있는 자식 이미 다 커서 손 갈일 없고 오직 머릿속엔 이 학교와 우리 학생뿐이라는 교장선생님과의 전쟁이 시작되었지만 진실을 이길 수는 없으며 진심을 다하는 마음은 통하게 되어있는 법이니 그 전쟁의 승리자가 누가 될 것인지는 자명하다. 학생들과 학부모들로부터 거친 항의를 받더라도 학생들을 위해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교장선생님의 얼굴이 하나뿐인 자식 앞에 벌벌 떠는 부모들의 얼굴과 묘하게 오버랩 되었다.

그날의 학교 방문은 인성과 성적을 두고 고민했던 지난날을 일깨우는 동시에 짧은 두 달여 기간 동안 공부방을 열면서 바랐던 바람직한 학교의 모습이 떠올라 흐뭇했다. 인성과 성적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 아닐까?

오양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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