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의 이야기
죽은 자들의 이야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5.06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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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괴담을 통해 삶, 사리분별, 권선징악 등의 교훈을 후손들에게 가르쳤다. 남편의 학대에 못 이겨 자살한 아내가 귀신이 되어 나타나지만 ‘부부의 인연’ 때문에 남편에게 복수를 못하고 돌아간다는 이야기, 먹을 것이 없어 자식을 삶아 노부모에게 드리려고 했는데 솥뚜껑을 열어보니 백년 묵은 산삼이 들어 있었다는 얘기는 인간의 본질을 깨우쳐 주는 삶의 지침서 인 것이다.

청소년 사이에 떠도는 괴담은 삶, 선악에 대한 훈계성 얘기 보다 흥미위주의 줄거리가 많다. 학창시절과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루다 보니 사건전개 장소도 ‘학교’라는 매개체가 자주 등장한다. 교실, 화장실, 생물실 등이 주 메뉴이고 새벽1시, 외짝 운동화 등이 양념으로 등장한다. 중, 고교생들이 즐겨 듣고 말하는 ‘학창시절 괴담‘이 ‘여고괴담‘이란 영화로 발전되면서 어른들의 상업성이 끼어드는 듯해 찜찜했지만 픽션(fiction)을 영상화 했다는 점에서 사뭇 입을 다물었다.

“장다리는 한 철이요, 미나리는 사철이라”라는 민속요는 이조 숙종조 정비였던 인현왕후를 몰아낸 장희빈을 ‘장다리’에 비유한 반체제 노래였다. ‘선화공주는 밤마다 궁궐을 몰래 빠져나와 맛둥방을 만난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린 서동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모략’한 첫 번째 남성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백제무왕이 왕자시절,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를 아내로 취하기 위해 조작한 이 노래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서라벌(경주)아이들에게 ‘마’를 나눠주며 이 노래를 부르도록 부추겼으나 남녀 사이의 연정에서 비롯됐고 개인적이란 점 때문일 게다.

‘괴담’을 ‘민간전승의 설화에 나오는 괴이한 이야기’라고 국어사전은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항간에 도는 괴담은 정궤도를 벗어난 ‘괴상한 소문’인 것 같다. 「현 정부가 독도를 일본에 넘기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유럽에서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크다며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숭례문이 불타 국운이 쇠약하며 조류 인플루엔자도 이 때문이다」이런 ‘괴담’에서는 장희빈을 몰아내기 위해 ‘장다리’ 노래를 꾸며낸 김춘택의 대의명분도 찾아 볼 수 없다. 맛동이 지어낸 서동요는 ‘사랑을 위해 거짓말’을 꾸며내는 정서라도 있지만 작금의 괴담들은 사람이 아닌 귀신들끼리의 대화처럼 들린다.

‘국운이 쇠하며’란 언급은 반국가적 행동이다. 조류 인플루엔자를 국가의 운명과 결부시킨 언동은 반사회적 불안을 조성하는 범죄행위다. 이런 말을 퍼트릴 수 있는 주체는 ‘살아 있는 자’가 아닌 ‘죽은 자’들임에 틀림없다.

이런 사회악 요소들이 노리는 것은 그들의 놀음에 인간들이 놀아나게 만드는 것이다. 끝내 자기 판단을 잃고 비틀거릴 때 상대로부터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자 들인 것이다. ‘죽은 자’들이 노리는 대상이 건전한 시민, 국민이 아니라 판단력이 못 미치는 청소년들이란 점에서 그들의 비굴함과 졸렬함도 감지할 수 있다.

지하에 묻혀 있는 사람들은 암흑 속에서 ‘그들끼리만’ 살도록 만들어 주면 된다. 혹여 밖으로 나오면 다시 캄캄한 곳으로 몰아넣으면 된다. / 정종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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