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연못에 퐁당
개구리 연못에 퐁당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4.1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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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오래전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교수로 몇 년간 체재할 때 겪었던 모습이다. 동경의 한가운데 시가지 신쥬쿠(新宿)는 그야말로 교통도 복잡하고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번화가이다. 그 중심지에는 생각보다 꽤 넓고 조용한 신쥬쿠 교엔(御苑)이라는 옛 황실정원이던 공원이 있다. 도시인들이 산책 겸 자주 들리곤 하는데 잠시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양쪽으로 정통 일본식 정원과 구미풍의 서양식 정원이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어 사람들을 상쾌하고 차분하게 해준다. 공원 안에는 관람객도 그렇게 많지 않은데 한쪽 잔디 언덕에 일군의 50, 60대 단체 관람객이 군데군데 흩어져 왼손에 메모지 오른손에는 연필을 들고 있다. 모두들 골똘히 사색에 잠겨 있는가 하면 뭔가 생각이 떠오르면 금세 메모지에 한자 한자 적는다. 일본의 전통시 하이쿠(俳句) 동호인들의 모임이다. 일본에서는 직업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가입할 수 있는 하이쿠 동호회나 교실이 전국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다. 그만큼 일본인들은 시를 좋아하는 민족인 것 같다.

일본의 하이쿠라는 전통적인 시는 초등학생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다. 17C말 한국의 김삿갓과 같은 방랑시인이며 하이쿠 시인으로 이름을 떨친 마츠오 바쇼(松尾芭蕉)는 이미 봄날이 깊어진 어느 날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퐁당!”과 같이 읊조렸다. 인기척 없는 조용하고 오래된 연못가에 개구리 한 마리가 연못에 퐁당 뛰어들었다. 주위가 너무나도 조용하고 평온했던 만큼 일순간에 정적이 깨졌지만 곧 정적의 상태로 돌아가는 심미안을 엿볼 수 있는 시다. 하이쿠시는 5·7·5 운율을 지닌 한 줄짜리 시로 모두 합해봐야 기껏 17자에 지나지 않는 짧은 정형시이다. 이렇게 짧고 간략하게 표현함으로써 ‘압축과 절제의 미’를 보여줄 뿐 아니라 ‘찰나와 우주’를 담아보는 시로 예부터 전해내려 오고 있다.

어차피 시 이야기가 나왔으니 동양의 시에 대하여 좀 더 살펴보자. 먼저 한국에는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시조(時調)가 있다. 물론 현대풍의 시조도 있지만 일본의 하이쿠만큼 그렇게 많이 구가하지 않는 것 같다. 시조는 원래 고려 중엽에 발생한 한국 전통시 양식의 하나로 초, 중, 종장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종장 첫 구 3음절의 규칙은 절대적으로 지켜야하는 독특한 점이 있는데다 6구 45자의 형식을 취하여 아름다운 문학성을 보여주고 있다.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晝夜)에 흐르거든 옛 물이 있을 손가/ 인걸(人傑)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는 것은”과 같이 노래한 유명한 황진이의 시조를 들 수 있다.

그런 반면에 중국에는 외형적으로 기다란 한시(漢詩)가 있다. 예를 들면, 당나라 최고의 낭만파 시인이며 ‘달과 술’의 시인이었던 이태백(李太白)의 한시를 보면, “달빛 아래 홀로 술을 마시며(月下獨酌)/ 꽃밭 가운데 술 한 항아리(花間一壺酒)/ 함께 할 이 없어 혼자 마신다(獨酌無相親)/ 잔 들어 달을 불러오고(擧杯邀明月)/ 그림자 더불어 삼인 되었구나(對影成三人) … ”라고 여러 장으로 길고 여유로이 읊었다.

아무튼 이와 같은 동양의 시나 영국 미국 등 서양의 시를 통틀어 보더라도 일본의 하이쿠만큼 외형적으로 짧은 시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하이쿠 중에서 관심이 가는 것은,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대망’의 야사(野史)에 나오는 시다. 16C 일본 전국(戰國)시대의 통일이 이르는 과정에서 유명한 세 장수가 등장하는데 서로 다른 성격과 정책을 엿볼 수 있다. 나무 위에 앉아있는 두견새(時鳥)를 보고서, 어린 시절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울지 않으면 죽여 버려야겠다(鳴かぬなら殺してしまえ時鳥)”라고 읊었다. 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울지 않으면 울도록 만들겠다(鳴かぬなら鳴かせて見せよ時鳥)”라고 했고 덕장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앞과 달리“울지 않으면 울 때를 기다리리(鳴かぬなら鳴くまで待とう時鳥)”라고 하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 시를 잘 음미해 보면, 세 장수의 인생관을 확실히 간파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세상만사를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다양하게 달라진다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지은 일본의 세 장수의 하이쿠시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 스스로 각인해 보는 것도 우리의 삶에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들에게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한 처세방법이 되지 않을까?

<김원호 울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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