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지 않는 풍차(風車)
돌지 않는 풍차(風車)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4.12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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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통합진보당 울산조직의 강점은 상향식 체제다. 물론 당 지도부의 지침과 생각이 어느 정당보다 강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없진 않지만 인적(人的) 확대만큼은 자생력에 바탕을 두는 경향이 짙다. 그네들 말을 빌리자면 ‘밑바닥에서부터 투쟁을 통해 쌓아 올라간 경력’을 인정하는 조직이다. 김창현 위원장이나 동구에 출마했던 이은주 전 시의원, 조승수 국회의원, 이선호 울주군 출마자, 노옥희 공동대표들의 면면을 뜯어보면 대부분 지역사회 밑바닥부터 훑어 올라 온 사람들이다.

때문에 사람들 눈에 자주 띈다. 웬만한 토론회나 쟁의장소에는 으레 보인다. 언변도 비교적 뛰어나다. 토론 방식은 치열하다 못해 격렬할 정도다. 원고(原稿)를 청탁해 보면 다른 사람들이 3~4일 걸릴 일을 하루 만에 뚝딱해치워 보내준다. 한마디로 움직임이 없으면 못 살 것처럼 보이는 인물들이다.

2009년 북구 재선거에서 당시 민주노동당 김창현 후보와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는 거의 두 달 가까이 후보단일화 안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양측 입장을 조율하기 위해 민노총이 나서고 현대차 노조가 협상안을 드밀었다. 그래도 김, 조 두 사람의 입장차가 정리되지 않자 민노당, 진보신당 수뇌부까지 나섰다. 그런 과정을 통해 두 사람의 주장과 논리가 지역 언론에 연일 게재됐다. 중앙 뉴스에도 등장할 만큼 전국적인 쟁점으로까지 번졌다.

하지만 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진보당 쪽의 이런 동력이 갑자기 멈춰 섰다. 지난 달 18~19일 야권 후보단일화 이후의 과정이 유권자에게 거의 감지되지 않았다. 이 전처럼 치열한 경쟁구도가 전개되지 않고 당 내부 경선과정을 거치는 바람에 일반 유권자들은 누가 단일후보인지 거의 알 수 없을 정도였다. 현역의원이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패했지만 내부에서 튕겨져 나오는 소음도 거의 없었다. 경쟁 상대방들이 잠시 신경전을 벌이긴 했으나 일반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 정도는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탈당파가 몰고 온 진보바람이 울산에서 두절된 것은 사실상 이 때부터다. 이어 지난달 이정희 대표가 ‘여론조사 연령대 조작’문제로 서울 관악 을 출마를 포기하면서 울산은 동맥경화현상까지 보였다. 울산 진보당 자체 창의성은 고사하고 움직임조차 뜸했으니까 말이다. 이전 선거들과 달리 4·11 총선을 하루 이틀 앞 둔 시점에서 민주노총이나 현대차 노조가 움직인 흔적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역대선거에서 매번 선거를 앞두고 정체현상을 빚던 새누리당이 공방전을 벌였다. 지난달 18일 최병국 의원이 당 공천결과에 불복해 무소속 출마의향을 밝히자 지역 유권자들의 시선이 그 쪽으로 쏠렸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북구를 2번이나 찾아가 북구가 온통 ‘붉은색 바람’에 뒤덮이는 듯 했지만 자주색 물결은 별로 눈에 띄질 않았다.

흔히들 여당은 선거승패를 조직으로 가늠하고 야당은 바람으로 승부한다고 한다. 이 말은 선거 운동기간의 길고 짧음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는 말이다. 또 조직은 사람과 전략과 시간이 필요하다. 한 순간에 해 치우는 것이 아니라 장시간에 걸쳐 저인망 전법으로 천천히 훑어가는 게 조직력이다. 반면에 바람(風)은 말(言)과 논점과 경쟁이 주요 요소다. 최종 지점과 거리가 멀면 멀수록 미풍에 그치기 쉽고 엉뚱한 곳으로 방향을 돌릴 가능성이 높은 것이 바람이다.

바람을 탔어야 할 울산 진보당은 이 세 가지 요소를 모두 놓쳤다. 유례없는 중앙당의 중앙집권적 태도 때문에 우선 경쟁성을 보이지 못했다. 경쟁성을 상실하는 바람에 진보정당의 생명인 선명성이나 창의성도 전혀 나타낼 수 없었다. 논점은 아예 중앙당에 가려 울산 진보의 존재감마저 상실될 정도였다. 다수 유권자들의 시선이 온통 야권연대 중앙수뇌부의 ‘정권 심판론’에 모아져 울산 진보당의 공약, 주장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지난해 말 이정희 대표는 민주통합당이 출범하자 선거연대를 줄기차게 요구하면서 연대에 주저하는 사람들을 향해 “연대를 성사시켜 얻는 기쁨보다 구태정치의 셈법을 벗어나서 겪는 불편함이 더 큰 분들”이라고 했다. 사용한 수사적 기법이나 감치는 비꼼이 넘쳐나는 말들이다. 하지만 ‘여론조사 조작사건’ 이후 이 대표는 “용퇴가 아니라 재경선이 진정으로 책임지는 일”이라고 했다. 비판할 때와 달리 책임론에선 너무나 허약한 단어를 사용했다. 대표 말에 힘이 빠지면서 울산진보당도 그 뒤부터 말을 아꼈다. 그 때부터 울산진보 풍차는 완전히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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