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문에 사람들 눈에 자주 띈다. 웬만한 토론회나 쟁의장소에는 으레 보인다. 언변도 비교적 뛰어나다. 토론 방식은 치열하다 못해 격렬할 정도다. 원고(原稿)를 청탁해 보면 다른 사람들이 3~4일 걸릴 일을 하루 만에 뚝딱해치워 보내준다. 한마디로 움직임이 없으면 못 살 것처럼 보이는 인물들이다.
2009년 북구 재선거에서 당시 민주노동당 김창현 후보와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는 거의 두 달 가까이 후보단일화 안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양측 입장을 조율하기 위해 민노총이 나서고 현대차 노조가 협상안을 드밀었다. 그래도 김, 조 두 사람의 입장차가 정리되지 않자 민노당, 진보신당 수뇌부까지 나섰다. 그런 과정을 통해 두 사람의 주장과 논리가 지역 언론에 연일 게재됐다. 중앙 뉴스에도 등장할 만큼 전국적인 쟁점으로까지 번졌다.
하지만 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진보당 쪽의 이런 동력이 갑자기 멈춰 섰다. 지난 달 18~19일 야권 후보단일화 이후의 과정이 유권자에게 거의 감지되지 않았다. 이 전처럼 치열한 경쟁구도가 전개되지 않고 당 내부 경선과정을 거치는 바람에 일반 유권자들은 누가 단일후보인지 거의 알 수 없을 정도였다. 현역의원이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패했지만 내부에서 튕겨져 나오는 소음도 거의 없었다. 경쟁 상대방들이 잠시 신경전을 벌이긴 했으나 일반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 정도는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탈당파가 몰고 온 진보바람이 울산에서 두절된 것은 사실상 이 때부터다. 이어 지난달 이정희 대표가 ‘여론조사 연령대 조작’문제로 서울 관악 을 출마를 포기하면서 울산은 동맥경화현상까지 보였다. 울산 진보당 자체 창의성은 고사하고 움직임조차 뜸했으니까 말이다. 이전 선거들과 달리 4·11 총선을 하루 이틀 앞 둔 시점에서 민주노총이나 현대차 노조가 움직인 흔적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역대선거에서 매번 선거를 앞두고 정체현상을 빚던 새누리당이 공방전을 벌였다. 지난달 18일 최병국 의원이 당 공천결과에 불복해 무소속 출마의향을 밝히자 지역 유권자들의 시선이 그 쪽으로 쏠렸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북구를 2번이나 찾아가 북구가 온통 ‘붉은색 바람’에 뒤덮이는 듯 했지만 자주색 물결은 별로 눈에 띄질 않았다.
흔히들 여당은 선거승패를 조직으로 가늠하고 야당은 바람으로 승부한다고 한다. 이 말은 선거 운동기간의 길고 짧음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는 말이다. 또 조직은 사람과 전략과 시간이 필요하다. 한 순간에 해 치우는 것이 아니라 장시간에 걸쳐 저인망 전법으로 천천히 훑어가는 게 조직력이다. 반면에 바람(風)은 말(言)과 논점과 경쟁이 주요 요소다. 최종 지점과 거리가 멀면 멀수록 미풍에 그치기 쉽고 엉뚱한 곳으로 방향을 돌릴 가능성이 높은 것이 바람이다.
바람을 탔어야 할 울산 진보당은 이 세 가지 요소를 모두 놓쳤다. 유례없는 중앙당의 중앙집권적 태도 때문에 우선 경쟁성을 보이지 못했다. 경쟁성을 상실하는 바람에 진보정당의 생명인 선명성이나 창의성도 전혀 나타낼 수 없었다. 논점은 아예 중앙당에 가려 울산 진보의 존재감마저 상실될 정도였다. 다수 유권자들의 시선이 온통 야권연대 중앙수뇌부의 ‘정권 심판론’에 모아져 울산 진보당의 공약, 주장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지난해 말 이정희 대표는 민주통합당이 출범하자 선거연대를 줄기차게 요구하면서 연대에 주저하는 사람들을 향해 “연대를 성사시켜 얻는 기쁨보다 구태정치의 셈법을 벗어나서 겪는 불편함이 더 큰 분들”이라고 했다. 사용한 수사적 기법이나 감치는 비꼼이 넘쳐나는 말들이다. 하지만 ‘여론조사 조작사건’ 이후 이 대표는 “용퇴가 아니라 재경선이 진정으로 책임지는 일”이라고 했다. 비판할 때와 달리 책임론에선 너무나 허약한 단어를 사용했다. 대표 말에 힘이 빠지면서 울산진보당도 그 뒤부터 말을 아꼈다. 그 때부터 울산진보 풍차는 완전히 멈춰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