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예찬
커피 예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4.0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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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내리는 나른한 오후 시간이다. 강의도 끝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학교 근처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 차를 마셔본다. 구수하고 향기로운 커피 냄새에 매료되어 있노라면 아련한 지난날 어느 라디오 인기 DJ의 방송 오프닝 멘트가 생각난다. 매일 오전 11시가 되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골든디스크 아무개입니다”로 시작되는 낮고 굵직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편안한 진행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지금은 다른 DJ에게 넘겨주었지만 40여년 동안 활약한 그는 단일프로의 최장수 진행자로 세계 기네스북에 올랐을 정도로 유명했다. 그러나 사실 이 방송의 백미는 다른데 있다. 한참 방송을 재미있게 듣다보면 중간에 쪼르륵 차 따르는 소리가 거품일듯 청량하게 나면서 DJ가 “차 한 잔 합시다”라는 말을 띄운다. 그 몇 마디 말이 청취자들을 차분하고 오붓한 분위기에 젖어들게 한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차는 커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와 같은 라디오 방송 이외에도 커피를 이야기한 너무나 익숙한 노래도 있다.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그대 올 때를 기다려 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아/ 내 속을 태우는 구려 …” 60년대를 풍미했던 듀오그룹 펄 시스터즈의 ‘커피 한잔’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그대에 대한 속 타는 자기의 심정을 커피 한잔에 가득 담아 애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악기 ‘잼베’라는 북과 기타만으로 경쾌하게 연주되는 아이돌가수의 ‘아메리카노’도 커피 향을 물씬 풍기는 노래다. 마치 송아지가 어미 소를 찾듯 불러대는 “음메 음메…”로 들리는 것이 마치 인디언풍의 노래 같기도 하다. 실은 “아메 아메 아메리카노/ 좋아 좋아 좋아/ 시럽 시럽 빼고 주세요 …”라는 색다른 가사로 아메리카노 커피 특유의 구수한 향기가 입안을 충만하게 한다.

내친김에 커피에 대한 짧은 시 한편을 들어보자. 아주 옛날 시리아의 시인 마마이(Mamai)는 커피를 두고서 “나는 짙은 갈색의 사랑스러운 커피요/ 나의 생명은 늘 컵 속에 있지요”라며 짧고 정감 있게 시를 읊은 적도 있다.

이와 같이 ‘커피’는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많은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15C초 예멘의 샤디리라는 사람이 에티오피아를 여행하고 있던 중, 산양들이 무리지어 여기저기를 힘차게 뛰어다니며 이상한 풀의 열매를 따 먹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신기하게 여겨 이것을 뜨거운 물에 삶아 즙으로 마신 것이 인류 최초의 커피라고 한다. 17C 중엽 폴란드인 프란츠 콜시츠키가 여러 가지 시련을 겪은 끝에 유럽 처음으로 비엔나에 커피하우스를 오픈했다. 그런데 거기에서 커피를 마시는 풍습이 서구사회의 생활을 많이 변화시켰고, 급기야 커피가 프랑스에 들어 온지 100년 후 시민혁명이 일어난 것을 보면 분명 커피하우스는 집회 장소로 안성맞춤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커피하우스가 세월이 지나 지금은 대학캠퍼스 주변이나 복잡한 도시 번화가에 자리 잡으면서 현대인들을 편안히 숨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즉 유명 프랜차이즈들이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데, 특히 서울 을지로에 있는 건축가 아론 탄(Aaron Tan)이 설계한 S 타워의 S 커피점은 미국 본사로부터 전 세계 최우수 디자인상을 받을 만큼 최고의 멋진 매장이다. 이 같은 미국 최고의 커피점을 사업 경쟁에서 밀어낸 C 커피점은, 유명 백화점의 공채 출신인 젊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토종 프랜차이즈이다. 많은 경험과 축적된 경영으로 그는 작년 미국 맨해튼에 해외 1호점까지 오픈했을 정도이다. 이러한 커피점 이외에도 다양한 운영기법으로 현대인들을 매료시키는 비주얼 명품 카페들이 속속 들어서서 도시가 한층 활기차게 보이는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한 잔의 커피를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이러한 카페 장소를 ‘훌륭한 아이디어 제작소’라고 말하고 싶다. 사무실이나 회의실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면 연필과 메모지를 들고 밖으로 나가보라. 노트북도 좋고 태블릿 PC도 좋다. 그리고 아늑한 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세상을 한번 살펴보라. 보석 같은 아이디어가 생각날 것이다. 더욱이 이곳은 현대인들의 찌들은 생활 속 카타르시스를 조용히 배출해주는 활력소 역할을 함과 동시에 소통하는 사람끼리의 훌륭한 사교장이나 토론장이 되어 삶의 의욕을 북돋아줄 것이다.

이런 공간에서 한 잔의 커피를 음미하며 조그마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 있고 효율적인 삶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김원호 울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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