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담그는 삼월 삼짇날
장 담그는 삼월 삼짇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3.18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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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마음이 허전할 때 식구들과 함께 먹었던 된장찌개를 떠올리면 코끝으로 그 때의 구수한 냄새가 언뜻 지나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된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벌에 쏘였거나 상처가 나면 생된장 한 움큼은 상처부위에 바르는 약이기도 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8 신라본기 제8 신문왕(神文王 제31대) 조의 기록에 의하면 683년 왕의 재위 3년 봄 2월에 일길찬 김흠운(金欽運)의 딸을 부인으로 삼기로 하고 기일을 정하면서 보낸 납채(納采) 285수레 중에 장·시(醬·豆支)가 포함되어 있다. 장·시란 장과 메주를 가리키는데, 장 또는 장류(醬類)는 오래 전부터 즐겨먹었음을 엿보게 한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제3권 현종 원문대왕(顯宗 元文大王) 조에 따르면 1018년 재위 9년에 흥화진이 거란의 침입에 의한 병란과 흉년으로 인하여 춥고 배고픈 사람이 많으므로 면포(綿布)와 소금과 장을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서유구(1764~1845)가 말년에 지은 농업백과인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도 시는 된장을 가리킨다고 본다. 한편 시는 배염유숙(配鹽幽菽)이라 하면서, 숙(菽)이란 콩이고 유(幽)는 어둡다는 뜻을 가지니, 어두운 곳에서 발효시킴을 지적한 것으로 보아도 될 것이며, 시는 메주에 소금을 섞은 것이니 곧 된장이다.

콩의 원산지는 중국의 동북부 지역인 만주다. 여기서 가져 온 콩이 중국에 보급됐다. 함경북도 회령군 오동의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콩이 출토된 점 등으로 미루어 콩의 원산지는 만주일대이며, 옛 고구려 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한민족은 콩을 가공하여 장을 만들었으며 장 문화의 원조라고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여긴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서 삼월령과 십이월령에 장 담그는 일을 노래하고 있다. ‘인간의 요긴한 일 장담는 정사로다. 소금을 미리 받아 법대로 담그리라. 고추장 두부장도 맛맛으로 갖추소(중략). 부녀야 네 할일인 메주술일 남았도다.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두소.’

장맛에서 으뜸 재료는 소금이다. 조선 제21대 영조(英祖)임금은 1759년 재위 35년 6월 9일, 계비를 택하기 위한 삼간택(三揀擇 세 번에 걸쳐 고른 다음에 정하던 일)과정에서 질문을 하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니, “소금입니다”라고 답한 유학 김한구의 딸(훗날 정순왕후)의 총명함을 접하고 간택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또 작년 3월 일본에서 쓰나미로 인하여 발생한 원자력발전소 사고 때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동북아시아 전역에서 소금 파동이 일어 난 그 이유 중 하나도 발효음식 만들기에서 소금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보여 주는 일면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장맛은 항아리 자체에 의해도 좌우된다고 하여 항아리를 고를 때 잘 익은 놈을 고르기 위해 항아리를 두드리는 습성이 있는데, 좋은 항아리를 고르는 방법으로써 항아리를 두드려보아 맑은 소리가 나면 잘 구워지고 질도 좋은 것으로 여긴다.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장단지만 보면 으레 두드리는 재미로운 습성을 보여준다.

지역의 기후에 따라 장단지의 형태가 다르듯이 메주의 모양과 크기도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추운 북쪽지방에는 메주가 잘 띄워지지 않아 크기가 비교적 작으며, 따뜻한 남녘땅으로 내려 갈수록 장물의 염도가 높아 장맛이 짠 이유도 기온에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해서 장 담그기 좋은 날도 남쪽 지방은 음력 삼월 삼짇날을 전후하여 손(일명 해코지를 하는 귀신)이 없는 날인 말날(牛日)을 잡아 장을 담는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추운 서울 지역 풍속에는 오월 단오일을 전후하여 장을 담는다고 하며, 여름에는 장담기와 겨울의 김장하기는 인가(人家)의 1년 중 중요한 계획이라 했다.

더불어 장맛을 지키는 방편으로 장단지 주둥이 주위를 뺑 둘러 왼새끼를 치는데 붉은 고추, 숯, 솔가지 등을 새끼줄에 꿰여 매어 두거나 흰색의 종이 버선을 장단지 벽에 붙이는 등의 주술도 지켜가면서 장맛 지키기에 정성을 다한다.

장은 담근 후 약 3~6개월이 지나 먹으면 잘 발효되어 장의 향이 구수하다. 된장이 항암식품으로 알려지면서 부쩍 재래 된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장 담그기 좋은 계절인 음력 3월, 동도잡지(東都雜志)에 이르기를 중삼(重三=3월 3일)일에 진달래꽃을 따다가 찹쌀가루에 반죽하여 둥근 떡을 만들어 참기름에 지져 먹는데 이 떡을 화전(花煎=꽃전)이라한다. 울주문화원에서 이달 24일을 맞아 외고산 옹기문화관에서 화전놀이를 한다고 한다. 한복 꺼내 입고 화전을 먹으며 화사한 봄맞이를 하고 싶다.

전옥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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