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보내는 ‘약해지지 마’
모두에게 보내는 ‘약해지지 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3.15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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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며칠 전 오래간만에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께 문안드리러 대구로 갔다.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문안가지 못한 죄송스러운 마음을 담아 아내와 함께 다녀왔다. 공교롭게도 어머니가 계시는 요양원은 옛날 필자가 다닌 초등학교와 가깝다. 어릴 때 뛰어 놀았던 달성공원이나 초등학교 운동장은 옛날생각보다 작아 보여 실망스러웠다. 그 주위가 너무 변해 어디가 어딘지 몰라 정말 먼데서 온 이방인이 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노인 몇 분과 같이 있는 병동에 들어서니 어머니는 곤히 잠들어 계셨다. 잠에서 깨실까 조용히 곁에 다가가 앉았다. 약간 움직임이 있는 걸 보니 누군가 사람이 와 있는 인기척을 느끼신 것 같았다. 우리를 보고 알아차리자마자 어머니의 눈 주위가 금방 빨갛게 물들어버렸다. 필자도 저절로 눈물이 나왔지만 애써 감추어버렸다.

올해로 94세, 아들 다섯 딸 하나를 두신 어머니이다. 다른 침대에 누워계신 할머니들은 모두 필자의 어머니와 다르다. 목숨만 부지하고 있을 뿐 사람을 봐도 말도 못하고 눈만 멍하니 떠 계시는 그야말로 치매가 심한 환자가 대부분이고 얼핏 보기에 어머니보다 연세가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머니보다 아래라고 했다.

그러나 다행히 어머니는 정신이 아주 맑다. 손자 증손자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당신께서 은행에 저금한 액수가 얼마 있는데 이자 받는 날짜가 언제인지까지 정확하게 이야기하실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가르쳐야하는 도덕과 윤리강령까지 술술 말하실 정도다. 그러면서도 몸 상태가 아무래도 어제 오늘이 다르다고 한탄하면서 내심 좀 더 오래 살고 싶다는 여운까지 남기신다.

이런 어머니 모습에서 일본 어느 시인 할머니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도쿄 북쪽 우츠노미야시(市)에 살고 있는 시바다 토요(柴田トヨ)라는 할머니가 요즈음 일본에서 화젯거리다. 한국나이로 올해 101세가 되는 이 할머니는 100만부나 팔린 베스트셀러의 주인공이다. 유복한 미곡상의 외동딸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 가세가 기울어 여관 종업원부터 시작해 음식점 종업원 등 온갖 고생을 다 하다 33세에 결혼했다. 음식점 주방장과 결혼해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20여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홀로 외롭게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의 권유로 92세에 시(詩)를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기가 평상시 조금씩 모아 둔 100만엥으로 시집을 출판하게 된다.

그 시집이름이 바로 ‘약해지지 마’(くじけないで)이다. 이 할머니는 이 시집 덕택에 하루아침에 일약 유명시인이 되어 일본열도의 모든 여성들, 특히 40대 이상의 여성들의 심금을 울렸다.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도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 지지 마”〔’약해 지지 마’에서〕

“나 말야,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어/ 그렇지만 시를 쓰면서 사람들에게 격려 받으며/ 이제는 더 이상 우는 소리는 하지 않아/ 아흔 여덟 살에도 사랑은 한다고/ 꿈도 꾼다고/ 구름이라도 오르고 싶다고”〔‘비밀’에서〕

이 시집이 출판되자마자 독자로부터 날아온 편지를 보면, “더 이상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그러나 이제 자살하려고 했던 생각이 사라졌어요.”

“아니, 100세 할머니가 시를 쓰고 계시는데 72세 된 친정어머니는 뭔들 못하시겠어요. 엄마 힘내세요! 뭐든지 할 수 있어요!”라고 친정어머니에게 강한 생의 의욕과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고 한다.

또 젊은이들은 이 시인할머니의 인생 스토리를 듣고 “나의 노후인생의 지침으로 삼겠어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앞으로 시화전도 열고 12편의 시를 모아 캘린더도 제작하여 상품화도 계획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할머니의 의욕과 용기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이 101세 할머니 시인의 좌절하지 않는 의욕과 용기, 아흔 여덟 살에도 사랑하는 꿈을 꾼다는 시(詩)속의 희망, 그리고 요양원에 계시는 필자의 94세 어머니의 삶에 대한 간절한 소원을 들으면서 지금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는 모든 사람, 또 건강하지 못한 모든 이에게 용기와 꿈과 희망을 전하고 싶다.

<김원호 울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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