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시작이다
진짜 시작이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3.14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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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추위가 물러나고 봄 햇살이 살포시 고개를 내밀던 지난 달 말 아들의 대학 졸업식이 있었다.

이 날은 아들이 16년의 제도교육에 마침표를 찍던 날이었다. 교정은 봄꽃보다 아름다운 청춘들로 붐볐다. 학사모를 부모님께 씌워주고 사진을 찍는 모습, 친구끼리, 혹은 연인과 함께 마지막 학창시절을 사진으로 남기기에 바빴다.

나도 아들과 함께 학사모 대열에 끼어 사진을 찍었다. 굴곡하나 없는 평지에 펼쳐진 대학캠퍼스는 젊음의 열정을 담기에 충분했다. 대한민국에 차고 넘치는 게 대학생과 대학이지만 4년 간 젊음을 만끽하기엔 대학 만한 곳도 없다고 본다. 낭만이 사라지고 시국을 걱정하는 모습이 예전의 대학과는 많이 다르긴 하나 각자의 진로와 현실 앞에 고민하는 분위기는 기성세대와 차원이 다르지 싶었다.

어느 일간지를 보니 ‘기쁜 입학식, 아픈 졸업식’이란 기사가 눈에 띄었다. 대학 졸업이 실업자를 양산하는 슬픈 세태를 꼬집은 내용이었다. 당장 내 자식 앞에 맞닥뜨려진 현실이었다.

지난 연말, 짐을 싸들고 집으로 올라온 녀석은 나를 보더니 ‘엄마, 이제 졸업이다’며 만세를 불렀다. 대책 없이 졸업을 하는 아들 녀석의 철부지 환호성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2월 초, 학교에서 취업 추천이 들어왔지만 아들은 그다지 내켜하지 않았다. 울산에서 직장생활을 원하던 아들의 등을 떠밀었다. 내 앞에 선 열차부터 타라고 부추겼다. 자신의 값어치는 스스로 올리는 거라며 아들을 근사한 말로 꼬드겼다. 면접을 본 다음날, 아들은 다시 짐을 꾸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입학과 졸업은 한 인간이 성장해가는 과정의 분기점이라 생각한다.

초등학교 입학이 집단생활의 첫 걸음마라면 대학졸업은 사회 구성원으로써 첫 발걸음일 것이다. 걸음마를 시작할 땐 부모나 선생님이란 울타리가 있어 힘들거나 넘어졌을 때 손을 잡아 줄 수 있다. 하지만 사회의 첫 걸음은 가보지 않은, 혼자 가야할 길이다. 당연히 두려움과 장애물이 있기 마련이다.

아들의 졸업식 가는 날, 울산에서 진주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무정차 버스가 자주 없어 양산을 거쳐 가는 버스를 탔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 까지 코를 고는 아저씨, 멀미로 토를 하며 우는 아이, 병목 구간에선 도로가 막히기까지 했다. 잠도 오지 않아 버스 안에서 오늘 졸업하는 아들의 지난날을 그려보았다.

녀석은 재수나 휴학도 안 한데다 흔한 어학연수 한 번 가지 못했다. 여유 없는 졸업에다 원치 않는 직장을 잡은 아들 생각을 하니 코끝이 찡했다.

돌아오는 버스는 무정차 버스, 좌석이 없는 입석이었다. 다음 차는 한 시간 뒤란다. 무조건 탔다. 맨 뒷좌석 높은 단에 걸터앉았다. 버스는 울산을 향해 쉼 없이 달렸다.

사람이 가는 길엔 굴곡이 있으리라 여긴다. 아들이 가는 길도 그럴 것이다. 오늘 내가 탄 버스처럼 무정차로 달리거나 둘러서 가기도 하고, 좌석이 없어 서서 갈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울렁거려 멀미를 하거나 지친 나머지 버스에서 코를 골며 잘 수 있는 것도 우리네 삶이다. 졸업이 진짜 시작인 것을 아들은 알까? 학생이란 꼬리표를 떼고 처음으로 어른이 된 아들에게 미완의 첫 발걸음을 자신 있게 내딛도록 짱짱한 봄 햇살 한줌 실어보낸다.

박종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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