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주변국과의 관계 설정에서 ‘권위를 통한 군림’을 우선시하는 나라였다.
다변화하는 세계흐름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가끔 피상적 제스추어를 쓰긴 하지만 그들의 태생적 외교철학은 ‘힘을 통한 지배’ 그 자체다. 과거 중국왕조의 주변국 통치 스타일을 보면 이런 사실은 자명해 진다. 머리를 조아리고 먼저 굴복해 들어오면 관용을 베푸는 것이 바로 ‘조공(朝貢)이다. 그 뒤에 경제원조, 문화교류가 이어진다.
결국 자신의 우월적 위치를 먼저 인정케 하고 호혜의 순서로 들어가는 것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인 남녀들이 내국인과 결혼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지금껏 외국인과의 결혼을 규제하는 미국인의 습속에 대해선 들어 본 적이 거의 없다. 미국이란 국가 자체의 성립가치가 다민족, 다양화, 다변화에 바탕을 뒀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반면에 미국사회는 ‘이용 가치’ 즉 실용성을 권위보다 중시한다. 개인, 사회, 국가에 이익이 되면 그 존재를 인정하고 흡수하는 것이 그들의 특징이다. 그래서 국가의 정책, 이념도 국익을 위한 ‘이용’에 비중을 둔다. 자신은 참여하지 않은 채 실익을 챙긴 실례로 청·일, 러·일 전쟁을 꼽는 사람도 많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가졌던 식민지 필리핀만 봐도 그렇다. 사탕수수, 고무 등 근대산업에 필요한 자원획득이 목적이었지 영토확대 수단은 결코 아니었다. 자본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국가답게 권위를 앞세워 지배하기 보다 전략을 통한 실익추구가 목적인 나라인 셈이다. ‘햇볕 정책’을 통한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추구했던 이 전 정권들은 자연스레 중국을 우선하고 미국과는 등거리 정책을 폈다. 그 당시 중국의 반응은 자신의 권위를 인정하는 한국에게 ‘온정’을 베푸는 흔적이 곳곳에서 배어 나왔다. 그러나 대등한 국제적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라기 보다 우호적 측면에서 묵인하는 주변국이란 뉘앙스가 짙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단적인 증거가 동북공정이다. ‘머리를 조아리는 그대를 받아들이긴 하겠지만 나의 권위에 도전하지 말라’는 중국인 영토 지배의식이 풍기는 부분이다. 이번 ‘성화봉송 폭력 사태’에서 빚어진 한·중 갈등은 사소한 일회성 사건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미동맹 강화 쪽으로 외교방향을 선회한 현 정부의 자세와 함께 고려하면 얘기는 복잡해진다. 중국이든 미국이든 우리를 지배, 통치하려는 세력과 행보를 같이 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한국이 중국의 지배를 받지 않고 독립국가로 남을 수 있는 방법 또한 한미동맹 강화인지도 모른다. / 정종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