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국 그리고 중국
한국, 미국 그리고 중국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5.01 21: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즘은 국경이 거의 없어지다 시피 해 많은 외국인들이 국내에 들어와 살고 내국인과 혼인하기도 하지만 한국거주 화교들은 ‘국내인과 혼인하지 않는다’란 풍문이 한 때 돈 적이 있었다. 습속, 관습차이에다 ‘한국 남성들이 여성을 비하하는 버릇’ 즉 남존여비 사상을 중국인들이 못마땅하게 여기기 때문이란 설명도 있었지만 좀 더 근원적 이유는 ‘대국(大國)인이 소국(小國)인과 결혼할 수 없다’는 우월의식이 바탕이란 주장도 있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아직까지 ‘한성’이라 굳이 부르는 이유도 어쩌면 그들의 대국주의, 즉 중화의식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조선은 중국의 속방이며 그 도읍지인 ‘한성’은 변방 자치국의 한 도시에 불과하단 인식이 그들에게 잠재적으로 남아 있다는 얘기다.

중국은 주변국과의 관계 설정에서 ‘권위를 통한 군림’을 우선시하는 나라였다.

다변화하는 세계흐름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가끔 피상적 제스추어를 쓰긴 하지만 그들의 태생적 외교철학은 ‘힘을 통한 지배’ 그 자체다. 과거 중국왕조의 주변국 통치 스타일을 보면 이런 사실은 자명해 진다. 머리를 조아리고 먼저 굴복해 들어오면 관용을 베푸는 것이 바로 ‘조공(朝貢)이다. 그 뒤에 경제원조, 문화교류가 이어진다.

결국 자신의 우월적 위치를 먼저 인정케 하고 호혜의 순서로 들어가는 것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인 남녀들이 내국인과 결혼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지금껏 외국인과의 결혼을 규제하는 미국인의 습속에 대해선 들어 본 적이 거의 없다. 미국이란 국가 자체의 성립가치가 다민족, 다양화, 다변화에 바탕을 뒀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반면에 미국사회는 ‘이용 가치’ 즉 실용성을 권위보다 중시한다. 개인, 사회, 국가에 이익이 되면 그 존재를 인정하고 흡수하는 것이 그들의 특징이다. 그래서 국가의 정책, 이념도 국익을 위한 ‘이용’에 비중을 둔다. 자신은 참여하지 않은 채 실익을 챙긴 실례로 청·일, 러·일 전쟁을 꼽는 사람도 많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가졌던 식민지 필리핀만 봐도 그렇다. 사탕수수, 고무 등 근대산업에 필요한 자원획득이 목적이었지 영토확대 수단은 결코 아니었다. 자본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국가답게 권위를 앞세워 지배하기 보다 전략을 통한 실익추구가 목적인 나라인 셈이다. ‘햇볕 정책’을 통한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추구했던 이 전 정권들은 자연스레 중국을 우선하고 미국과는 등거리 정책을 폈다. 그 당시 중국의 반응은 자신의 권위를 인정하는 한국에게 ‘온정’을 베푸는 흔적이 곳곳에서 배어 나왔다. 그러나 대등한 국제적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라기 보다 우호적 측면에서 묵인하는 주변국이란 뉘앙스가 짙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단적인 증거가 동북공정이다. ‘머리를 조아리는 그대를 받아들이긴 하겠지만 나의 권위에 도전하지 말라’는 중국인 영토 지배의식이 풍기는 부분이다. 이번 ‘성화봉송 폭력 사태’에서 빚어진 한·중 갈등은 사소한 일회성 사건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미동맹 강화 쪽으로 외교방향을 선회한 현 정부의 자세와 함께 고려하면 얘기는 복잡해진다. 중국이든 미국이든 우리를 지배, 통치하려는 세력과 행보를 같이 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한국이 중국의 지배를 받지 않고 독립국가로 남을 수 있는 방법 또한 한미동맹 강화인지도 모른다. / 정종식 논설위원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