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파도·바람 가르며 고래와 숙명적 사투
거친 파도·바람 가르며 고래와 숙명적 사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3.11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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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라마렐라 유일 생계수단 고래잡이
주의사항·급소·작살 사용법·맞서는 행동 등
어른들 무용담 속 아이들 자연스레 기초 습득
수많은 수련 속 용감히 몸 날리는 명포수 성장
인 도네시아 름바타 섬 고래잡이 마을 라마렐라의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고래잡이 놀이를 하면서 성장한다. 아이들의 놀이터는 바닷가의 모래밭이지만, 그들은 아버지와 아저씨들이 실제 바다에서 고래를 사냥할 때와 똑 같은 모양의 작살을 들고 뱃전에 서서 통나무로 된 모형 고래를 표적으로 삼아 몸을 날리며 작살 던지는 흉내를 낸다.

아이들은 명중이 될 때까지 몇 번이고 작살을 던지고 또 던진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실제로 바다에서 고래를 향해 작살을 던질 때와 똑 같은 방식으로 작살을 쥐고 갑판 위에 서서 모형 고래를 향하여 몸을 날리는 것이다. 라마렐라의 아이들은 이와 같은 놀이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실제의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고래 사냥의 방법을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고래 고기를 주식으로 삼아 그것을 먹고 자랐으며 또 어른들이 잡아 온 고래의 해체 과정을 지켜보면서 고래 해부학과 더불어 그 해체 방법들을 익혔다. 그들은 자랑스러운 포수인 아버지와 아저씨들의 대화 가운데서 귀동냥으로 라마렐라 고래학의 기초를 학습을 한다. 어디가 고래의 급소이며, 그것을 어떻게 공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지 등을 익히는 것이다. 물론 사춘기와 청년기를 거치면서 그들의 아버지나 아저씨 등의 고래잡이에 동행하게 되고 또 실제 상황에서 그가 해야 할 일들을 배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고래의 종을 구분하고, 각 종별로 그 생태적 특성과 실제 사냥을 할 때 지켜야할 일련의 절차와 순서 등을 현장에서 하나씩 체득하게 된다.

이 렇듯, 라마렐라 마을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라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일생동안 지속적으로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명적인 일이 바로 고래를 익히고 또 그것을 잡는 일이다. 고래잡이 말고는 특별한 생계수단을 갖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고래를 잡지 못하면 그들의 생활은 궁핍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래를 잡는 일은 그들이 감내할 수밖에 없는 숙명이었으며, 고래를 잡기 위한 갖가지 방법들은 그들이 익혀야 할 참 지식이었고 또 생의 최고의 선이자 목표는 고래잡이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고래잡이에 가장 적합한 배를 만들고 또 효과적으로 고래를 잡기 위하여 작살을 고안하여야 했다. 창대 끝에 분리식 작살을 장치하고 또 작살에는 로프가 연결되어 있다. 그들이 던진 작살이 명중하기만 하면, 고래는 절대로 그 작살을 뺄 수 없게 고안되어 있다.

어른들의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은 뛰어난 고래잡이의 용감무쌍한 무용담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벌어진 끔찍한 참상들에 대해서도 학습하게 된다.

바람의 세기와 파도의 높이 등 날씨를 고려한 출어, 처음 고래를 목격한 작살자비와 그의 집요한 공격 그리고 고래의 반격, 배를 끌고 빠르게 도망가는 고래, 그 연속적인 과정에서 포수와 선원 그리고 고래 사이에서 벌어지는 쫓고 쫓기는 처절한 사투, 그 처절한 사투 과정에서 희생된 라마렐라의 포수들. 짐작하건대 어른들은 그들이 거친 파도를 헤치며 몸소 체험하였던 고래잡이의 기억들을 그들의 후예들에게 기회만 되면 들려주었을 것이다. 그런 과정 가운데 생긴 갖가지 무용담과 마을 어른들의 가슴 아픈 기억들은 라마렐라 마을의 또 다른 전설이자 신화가 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러한 이야기들은 아이들에게 타산지석이 되는 것이다. 작살은 어떻게 잡아야 하며, 고래의 어디를 향하여 작살을 던져야 하는지, 작살을 던진 후 어떻게 그 다음 행동을 하여야 하는지, 작살에 맞은 고래가 도망갈 때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줄은 어떻게 준비하였다가 어떻게 풀어주어야 하는지, 줄을 풀어줄 때 무엇을 주의하여야 하는지 등을 어른들의 무용담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고래잡이 방법을 가르쳐 주는 특별한 학교는 없지만, 그러나 아이들이 성년이 될 즈음이면, 모두가 기초 지식을 잘 습득한 어엿한 고래잡이의 성원이 되는 것이다.

라 마렐라 바닷가에서 통나무 모형 고래를 향해 모의 작살을 던지던 저 어린 포수들은 시간이 흐르고, 이윽고 어엿한 성인이 되면, 그들은 아버지나 아저씨들을 대신하여 뱃머리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그의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그랬던 것처럼, 갑판 앞으로 튀어나온 대나무 디딜판 위에 서서 바다를 주시하고, 모습을 드러낼 고래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그는 갈매기 등 바닷새의 움직임과 미세한 물결을 일렁임 등을 통해 고래의 출현을 예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불쑥 모습을 드러내며 자맥질을 되풀이하는 고래들의 거친 몸짓과 수증기의 물보라를 찾아내기 위하여 쉼 없이 바다를 주시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거쳐야 할 첫 번째의 통과의례는 어쩌면 그와 같은 주시이고 기다림인지도 모른다.

뱃머리에 자세를 잡고 바다를 주시하는 저 포수, 그에게는 남들보다도 훨씬 좋은 시력이 있어야 했으며, 용감하여야 했고, 뛰어난 운동신경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도 더 우선하는 것은 고래에 관한 해박한 지식이었다. 고래의 신체구조와 습관, 행동의 특징 등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뛰어난 포수는 고래의 움직임을 예견하고 또 때로는 그것들의 이동 방향을 통제하며, 그와 동료들이 작살을 던지기에 적당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는 그의 온 마음과 체중이 실린 작살을 고래의 급소를 향해 내어 던지는 것이다.

라마렐라의 어린 작살자비는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고래잡이 놀이를 하면서 그의 유년기를 보냈다. 아이들은 그렇게 성장하여 한 사람의 명포수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 그의 친구들과 작살 던지기를 하면서 필요한 체력과 담력을 길렀고, 동네 어른들의 고래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한 사람의 고래 전문가로 성장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아버지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부모와 아이들 그리고 이웃들을 위하여 고래잡이배를 만들었고 또 이따금 낡아서 부서진 배를 수선하였으며, 또 때가 되면 그것을 밀어서 바다로 나가 그의 몸을 날려서 용감하게 작살을 내어 던졌던 것이다.

수 백 번 아니 수천 번 모형 고래를 향해 몸을 날렸을 저 라마렐라의 어린 작살자비, 지긋한 눈길로 그들의 행동거지를 지켜보던 마을의 어른들, 때가 되자 그들을 이끌고 바다로 나갔던 경험 많은 작살자비 그리고 크고 작은 마을의 모임이나 축제의 마당에서 되풀이하여 전해져 오던 경험담들. 그것들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먼 적도의 원시적 고래잡이들의 이야기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우리들은 그들의 모습 가운데서 잊어버리고 또 잃어버린 우리 조상들의 포경에 관한 기억들을 더듬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변함없이 라마렐라 마을을 지키며, 고래잡이로 삶을 영위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선사 대곡리 작살자비 마을의 아이들과 명포수를 떠올려 보는 것이다. 추측하건대, 수천 년 전의 장생포 앞바다에서도 모형 고래를 향해 작살을 던지며 뛰어놀던 어린 예비 사냥꾼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대대로 이어지던 포수 가문의 자부심과 가계의 전통을 지키기 위하여 아버지가 바다에서 작살을 던지는 모습 그대로의 흉내를 내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의 표적이 되었을 모형 고래는 그가 던진 모형 작살을 맞아 버둥거렸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대곡리 명포수는 그의 어린 시절의 꿈을 키워왔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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