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고래사냥 그림 원형은 대곡리 작살자비 암각화
전세계 고래사냥 그림 원형은 대곡리 작살자비 암각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2.2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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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타고 바다 포유동물 사냥 장면
노르웨이·오스트레일리아 등
다른 유적지서도 발견 할 수 있어
그림 속 어부들 모습·연결된 선
소재·시·공간 달라도 형태 동일
해안가 사람들 선사시대 때부터
비 스케 항에서 고래를 잡았던 바스크족보다도 훨씬 더 아득한 예로부터 사람들이 고래를 잡았다. 그것도 일부 연구자들이 추정하는 바와 같은 소극적인 방법, 즉 해안가로 떠밀려온 고래를 잡은 것이 아니라 매우 적극적으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잡았던 것이다.

그러한 점을 세계 각지의 고래 회유지에 남겨진 각종 고래잡이 관련 그림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신석기나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에 발견된 고래 뼈들이나 바위그림 유적지에 그려진 고래잡이 그림들은 적극적인 포경의 시원을 보다 위로 설정하게 해 준다.

북유럽에서 잘 알려진 선사 시대 바위그림 유적지 가운데 하나는 노르웨이 북부 레이크네스(Leiknes)이다. 이 암각화 속에는 순록과 사슴 등이 그려져 있는데, 그 가운데는 쪼아서 그린 고래 그림도 있다. 연구자들은 이 암각화가 기원전 5,000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노르웨이 중부 지역에 있는 로이드 바위그림 가운데는 돌고래를 사냥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기원전 3천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밖에도 10여 곳의 바위그림 유적지에서 고래그림이 확인되고 있다.

스 칸디나비아 반도에서 빙하가 물러가고, 피오르드(fjord) 지역에는 매년 정해진 계절이 되면, 돌고래들이 협곡 깊숙한 속으로 회유해 온다. 어부들은 정기적으로 회유해 오는 돌고래들을 시즌이 되면 기다렸다가 사냥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래잡이의 모습을 바위그림 속에 형상화해 놓았던 것이다.

주요 포획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범고래, 큰 돌고래, 쇠 돌고래 등 이빨고래 아목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이러한 고래들의 생태적 습성을 적절히 이용해 포획했던 것이다.

고래잡이 장면이 그려진 암각화 중 또 하나는 러시아 서북부의 카렐리야 주에 있는 잘라부르가 암각화 유적지이다. 잘라부르가 유적은 크게 스타라야와 노바야 등 두 개의 지역으로 나뉘는데, 두 곳 모두 사람과 순록 그리고 고래잡이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노바야 잘라부르가에는 여러 척의 배들과 고래 들이 그려져 있다. 그 가운데서도 한 척의 커다란 배에는 12명의 어부들이 타고 있으며, 맨 앞의 작살자비와 고래 사이에는 마치 대곡리 암각화 속의 그것처럼 줄이 연결되어 있다.

아네가 호수와 백해 등 카렐리야 지역의 암각화는 이미 1848년부터 K.그레브니크 등에 의해 조사되기 시작했으며, 1926년 이후의 A.리네프스키, 1935년의 V.라브도니카스, 1957년의 A. 사바테에프 등 저명한 연구자들에 의해 새로운 유적지들이 차례로 발견됐으며, 각 유적지들이 모여서 카렐리야 지역의 바위그림 군을 이루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지역의 암각화 속에도 순록과 로시(사슴과 동물의 일종), 사냥꾼 그리고 고래 등이 뒤섞여 있다. 연구자들은 이 암각화가 기원전 3천년기 말에서 2천년기 초에 그려진 것으로 보았다.

앞 의 두 지역의 암각화 유적지에서 살펴보았던 것들과 흡사한 형상들이 베링해협 북쪽 카라 해안의 페베크에 있는 페그트이멜 암각화 속에도 그려져 있다. 아시아 대륙 최북단 추코트의 페그트이멜 강변에 위치한 이 암각화는 툰드라 지역의 수렵민들이 남긴 유일한 선사시대의 그림이기도 하다. 그림의 주제는 순록, 북극곰, 북극여우, 늑대, 물새, 고래와 바다표범 등이다. 그림 속에는 사람들이 우미아크(umiak)라고 하는 보트를 타고 작살로 고래, 돌고래 그리고 바다표범을 찌르거나 순록을 뒤쫓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또한 사냥개들이 순록을 강으로 몰고 가는 모습도 살필 수 있다.

그 밖에도 이 암각화 속에는 시베리아의 암각화 가운데서도 흔히 살필 수 있는 버섯 모양의 머리를 한 사람 형상들도 살필 수 있다. 작살자비는 주로 뱃머리에 서서 고래나 순록 등을 작살로 내리치려하는 모습이지만, 어떤 것은 이미 포획에 성공한 것도 있다. 연구자들은 이 암각화가 여름에는 고래 등 바다동물들을 사냥하였고 또 겨울에는 순록 등 굽 동물을 사냥한 집단들이 남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독자적이고 또 독창적인 이 암각화를 연구자들은 기원전 1천년기 후반에서 기원후 1천년기 후반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배 를 타고 바다 포유동물을 사냥하는 장면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캐즘 아일랜드(Chasm Island)의 바위그림 속에서 살필 수 있다. 그 밖에도 협곡이 있으며, 고래 떼들이 정기적으로 회유해 오는 해안에서는 고래잡이 관련 그림들을 어렵지 않게 살필 수 있다. 이러한 정황들을 놓고 볼 때, 고래들이 정기적으로 회유해 오는 협곡이나 해안가의 사람들은 아득한 선사시대부터 고래잡이를 하였을 가능성이 높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한 사실을 비단 암각화뿐만 아니라 해안가 유적지에서 출토된 뼈나 뿔 그리고 토기 표면에 시문된 포경 장면을 통해서 충분히 유추해 낼 수 있다.

그 런데 바로 그와 같은 유형의 그림이 바로 울산의 대곡천 상류 대곡리 건너각단 가운데도 그려져 있다. 대곡리 암각화 속에도 여러 척의 배들과 함께 십여 종의 고래 60여 점이 그려져 있음을 이미 확인한 바 있다. 그리고 그것들 가운데는 두 척의 배가 협력해 고래를 잡는 장면이나 몸통에 작살이 그려져 있는 고래, 날뛰는 고래와 사투를 벌이는 장면 그리고 포획한 고래를 끌고 가는 배 등도 그려져 있다. 또한 이 암각화에서도 이미 앞에서 살펴본 다른 유적지에서와 같이 바다동물뿐만 아니라 육지동물들이 서로 뒤섞여 있다. 이러한 점으로써 고래들이 정기적으로 회유하는 협곡이나 만에서는 일찍부터 고래잡이가 성행했음을 읽을 수 있다.

이 렇듯 바위그림 속에 그려진 고래잡이의 모습은 유적지가 소재하는 공간과 그려진 시간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간에 큰 차이가 없다. 언제나 작살자비는 뱃머리에 서 있으며, 두 손으로 작살을 치켜들고 있는 모습이다. 보편적으로 작살자비가 들고 있는 작살의 크기는 포수의 세 배에 이른다. 작살자비의 뒤에는 여섯 명부터 그 이상의 사공들이 노를 젓고 있거나 혹은 정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일부 그림 속에서는 이미 작살을 던져 고래의 몸통에 작살이 박혀 있고, 또 고래와 배 사이에 선이 연결되어 있는 것도 확인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모습을 16세기에 제작된 일본의 목판화 속 고래잡이 장면이나 북빙양에서 바스크족이나 노르웨이 그리고 네덜란드의 포수들이 고래를 잡는 장면 속에서도 분명하게 살필 수 있다. 이 같은 일련의 근대 포경도 속에는 여러 척의 배들이 고래를 만 깊숙한 곳으로 몰고 간 다음, 갑판 위의 작살자비들이 작살로 고래를 잡으려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들은 한결같이 긴 작살을 두 손으로 꼬나들고 지금이라도 막 내리꽂으려는 듯한 동작을 취하고 있다.

또한 그와 같은 모습을 지금도 오지의 고래잡이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인도네시아의 플로레스 동쪽 름바타 섬 라마렐라의 고래잡이 라마파(포수)이다. 그는 언제나 작살을 들고 뱃머리에 서서 고래를 관찰하고 있다. 그가 작살을 들고 있는 모습은 바로 대곡리 암각화 속의 포수와 똑 같은 모습이다.

페그트이멜이나 근대 포경도 속 고래잡이 포수의 모습은 공간과 시간이 서로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했으며, 이로써 그 원형이 바로 대곡리의 작살자비였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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