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전리석불과 목민심서
천전리석불과 목민심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2.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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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조선의 제4대 왕 1418~1450년)이 훈민정음의 해례문(解例文) 반포를 앞두고 최만리(崔萬理)를 선두로 성리학을 신봉하는 신하들이 들고 일어난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도 엿보았듯이 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합심하여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을 만들었다. 그 수혜자는 정치이념과는 별 무관하여 어제는 고려국, 오늘은 조선의 백성이 된 그들과 소통의 장을 펴려고 한글을 창조했다. 누구 편 무슨 파라해도 어리석은 백성의 편에 섬이 최고임을 세종대왕은 한글로써 인정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청렴을 표방하고 고려 정권의 부패를 처단하면서 성리학의 이상향을 추구한 조선은 백자처럼 청아하고 소박하면서도 예학(禮學)을 바탕으로 맑은 정치를 한다고 했다. 재정은 전정(田政)·군정(軍政)·환정(還政)에 두고 투명해야 했으나 차츰 그 빛은 흐려져 갔다. 백성에겐 각각의 능력에 합당한 세금을 배당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형평을 잃었고 그들만의 이상향을 보여주고, 그들을 위한 예학을 강요했던 것 같다. 조선 후기에 울산의 상북면 천전리 용화사(龍華寺)에 미륵석불이 세워진 내력을 엿보면 도움이 될 듯하다.

요즈음은 직업군인이라 하여 나라에서 돈을 받고 근무하지만 조선 후기에는 남자로서 군역(軍役)을 감당하지 못하면 대신 국방비인 군포(軍布)를 바치게 되어 있었다. 그러함에도 의무를 면제받으려면 대역세(代役稅)로서 포2필을 바쳐야 했다. 이러한 형편 속에서 할당된 세금보다도 더 거두기 위해 갓난아이까지 병적에 올려 세금을 징수하는 황구첨정(黃口僉丁)을 비롯하여 죽은 사람에게 세금을 매기는 백골징포(白骨徵布)까지 횡횡하니 사회가 날로 어지러웠다.

다산 정약용(1762~1836년)은 목민심서(牧民心書) 권8 첨정(簽正)에다 강진에서 귀양살이할 때 지은 애절양(哀絶陽)을 실어 당시의 사회상을 아래와 같이 일러주고 있다.

“갈밭(蘆田)에 사는 한 백성이 시아비 상복 막 벗고, 태어난 아기는 탯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삼대(三代)의 이름이 다 군적(軍籍)에 올려져있고, 이정(里正)이 호통치며 외양간 소까지 빼앗아 가네. (중략) 자식 낳고 사는 건 하늘이 주신 이치인데, 말·돼지 거세하는 것도 가엾다 이르거늘 대 이어갈 생민들이야 말을 더해 무엇하리, 다 같은 백성인데 어찌 차별할까.”

다산은 이렇게 자신의 심정을 밝히고 있다.

울산도 예외 지역은 아니었다. 언양 현감이 세금을 거둬들이는데, 상북면 천전리(川前里)에서는 장정의 수가 모자라 어쩔 수 없이 마을에 있는 미륵(彌勒)석불도 장정으로 올리는 억지를 피우니 당연히 미륵에게 군포를 징수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미륵 앞에서 관리들의 횡포와 부조리한 세금정책을 두고 설움을 터트리면서 “석불을 장정으로 충당하더니, 세금이 우리들만 감당하네“라고 하소연을 하는데, 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석불의 어깨에 두 필의 면포가 얹혀 있는게 아닌가. 이를 본 사람들은 미륵석불의 영험함에 감탄하여 그 자리에 절을 짓고 석불을 모셨다고 전해온다. 그 석불이 용화사의 본존불이 되어 있다.

얼마 전 필자가 석남사에서 애승선정비를 발견했다. 300여년의 세월에 비와 바람 등에 씻겨 마모되어 육안으로 판독이 분명하지는 않으나, 현감 이기명이 승려를 경애하고 선정을 베풀었다하여 바친 선정비이다. 비명은 ‘縣監嘉義大夫李公基命愛僧善政碑’(현감가의대부이공기명애승선정비)이다. 현감이 재임 시(1713~1715년 숙종)는 소빙기(小氷期)에 해당한다. 자연재해인 격심한 한발이 장기화되면서 배고픔에 허덕이는 백성을 위해 나라에서 보유하고 있는 곡식을 내어 이 위기를 감당하려 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영남읍지(1871년) 언양현 관적(官蹟)조에 “이기명 구제견역 민회혜택”이라 설명을 달아 두었는데 이는 백성들을 재난에서 구하고 부역을 줄여 혜택을 배풀었다는 의미이다.

석남사에선 어려운 시기에 유학자 언양 현감이 애민정신으로 절집까지 아우르는 고을살이를 해 준데 대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암벽 높은 곳에다 몸돌을 연꽃받침으로 고이 감싼 애승선정비를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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