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과 화살
활과 화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2.19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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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호는 신라 제17대 내물왕(訥祗麻立干 재위 356~402)의 아들이다. 그는 다음 왕인 실성왕(實聖尼師今-402~417) 때 고구려로 가서 볼모생활을 하고 있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내물왕 재위 37년 정월에 실성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고 재위 46년 7월에 실성이 돌아 왔다. 그후 실성이 왕위에 오르면서 자기를 고구려에 볼모로 보낸 전 왕의 막내 아들 미사흔(未斯欣)을 왜국(倭國)에 볼모로 보냈다. 재위 11년에 둘째 아들인 복호(卜好) 조차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다. 앙갚음을 한 셈이다. 후에 내물왕의 장남 눌지(訥祗)가 제19대 신라 왕(麻立干-417~458)이 되었다. 그는 타국에서 고생하는 두 동생을 데려오기 위한 외교전을 펼치는데 그 세부적인 내용은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에 기록해 두었다.

삽라군(지금 양산시) 태수(太守) 김제상(金提上 삼국사기 박제상)이 북쪽 바닷길을 달려가서 변복(變服)을 하고 고구려에 들어가 보해(寶海=복호)의 처소로 가서 함께 도망갈 날짜를 모의했다. 제상이 고성포구에서 도망갈 배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고구려 장수왕이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수십 명의 군사를 풀어 두 사람을 잡으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군사들이 모두 화살촉을 뽑고 활을 쏘았기에 그들은 무사히 귀국했다. 보해가 고구려에서 볼모 생활을 할 때 주위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었기에 그 위급한 상황에서도 살아 나왔다고 한다.

예로부터 한민족은 화살을 잘 쏘기로 유명했다. 반구대암각화에도 화살을 쥔 사냥꾼이 있으며 고구려 시조 주몽이 화살 잘 쏘기로 대표적인 인물이다. 함흥차사라는 말을 낳기도 한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활 잘 쏘기로 유명한데, 아들 방원에게 활을 겨누기도 한 왕이다.

삼국사기 권 제6의 기록에 의하면 669년 신라 제30대 문무왕(文武王, 661∼681) 재위 당시에 쇠(鐵)로써 방아쇠를 만든 화살인 쇠뇌를 만드는 기술자인 사찬 구진천(仇珍川)이 있었다. 이해 겨울에 당나라 관리가 와서 구진찬을 데리고 가서 황제의 명으로 목뇌(木弩)를 만들게 하여 쏘아 보매 60보(步) 밖에 가지 아니하였다. 황제가 이상히 여겨 너의 나라에서 만든 쇠뇌는 1천보를 간다고 했는데 어찌 그러한가 라고 물으니 ‘만일 목재를 본국 신라에서 가져 오면 그렇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하니 사신을 보내어 가져오게 하여 다시 만들어 쏘아 보아도 더 이상 나가지 않기에 황제는 그가 거짓으로 말하는 줄로 여겨 위협했다고 알려져 있다.

명나라 때 발행한 기술 서적 천공개물에 쇠뇌에 관한 설명이 나온다. 방아쇠에 관한 기록으로써 후한(後漢 23~220)의 반고(班固 32~92)가 완성한 한서(漢書)에서 궐장재관(蹶張材官)이 나오는 데, 이 사람은 발로 밟아 강한 쇠뇌에다 시위를 걸치는 사람을 가리킨다라고 설명하는 것을 보아 이때에도 쇠뇌가 사용되었다고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쇠뇌의 구조는 비록 교모하나 그 힘이 매우 약해서 20여 보 밖에 날 수 없다. 이것은 민가에서 도적을 막기 위한 것이지 군대가 쓰는 무기는 아니다. 맹수를 사살하는 쇠뇌 살 한 개를 발사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지 한 마리이다’ 라고 알려준다.

유럽 쪽으로 이야기를 돌려 보자. 독일의 문호 실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가 희곡으로 쓴 ‘윌리엄 텔’은 이후 이탈리아의 작곡가 로시니(Giacchino Antonio Ros sini 1792-1868)가 오페라로 만들었는데, 사냥꾼 윌리엄 텔의 화살이야기가 나온다. 내용은 이렇다. 스위스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의 총독이 자신의 모자를 길가에 걸어놓고 스위스인들에게 인사를 하게 만들었는데, 유명한 사냥꾼인 윌리엄 텔이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혀 갔다. 총독은 텔에게 살고 싶으면 아들 머리 위에 얻어놓은 사과를 화살로 명중시켜라는 몹쓸 명령을 내린다. 텔은 유배지에서 탈출한 뒤 사과를 명중 시켰음에도 유배지에 보낸 총독을 화살로 쏘아 죽인다. 이 화살은 스위스 사람들에게 독립운동의 활비비로 꽂힌다.

임진전쟁 전문 진주박물관에 가면 화차(火車)가 있다. 1409년 태종 9년에 처음 만든 이 무기는 쇠로 만든 화살인 철령전(鐵翎箭)이 100개가 들어 있는 사전총통(四箭銃筒)이 실려 있다. 이 총통의 심지에 불을 붙이면 연결된 전체 화살이 연속적으로 발사하도록 설계되었다. 전시에 무기인 화살을 싣는 화차가 평시에는 농산물을 운반하는 수레로 그 기능이 바뀐단다.

‘부러진 화살’ 소동이 가라않지 않은 요즘, 활과 화살에 대한 오랜 얘기들을 한번 더듬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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