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소나타
자작나무 소나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2.13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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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저녁 시간대 TV에서 회색을 띤 곰 한마리가 하얀 눈이 쌓인 알래스카 산속의 숲에서 먹이를 찾으러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숲이라 해봤자 우거진 것이 아니라 듬성듬성 사이가 뚫려있는 하얀색으로 보이는 나무들의 군락지였다. 추운지방에서만 자라난다는 자작나무 숲인데 눈부실 정도로 하얀 것이 눈에 띠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멀리 강원도 태백에 하얗게 뻗어있는 자작나무 숲을 상상해볼 수 있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이 자작나무를 두고 ‘새하얀 설탕을 뿌린 기다란 생강과자 같다’고 읊은 일이 있다.

울산대학교로 들어서다보면 정문 옆에 줄기가 하얗고 회색을 띈 엄청 큰 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서있다. 필자는 처음 언뜻 보기에 평소 예찬하던 자작나무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플라타너스인 것을 알고선 아쉽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몇 년 전에는 대학구내 테니스장 옆에 이 자작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자라는 걸 볼 수 있었지만 자라나는 환경이 맞지 않았는지 지금은 아산스포츠 센터 옆으로 옮겨져 있다. 일상생활에서 카페, 레스토랑, 의상실, 병원 등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하얗게 인테리어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자작나무야 말로 자연이 우리 현대인에게 준 아주 멋진 선물인 것 같다. 외양으로 보아 늘 매혹적인 나무로 느낌이 좋을 뿐 아니라 또한 자작나무에 얽혀 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더욱 감동스럽게 느껴진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나 결실의 계절 가을이 되면 으레 혼례식으로 뒤범벅이 된다. 특히 올 흑룡의 해에는 아마 봇물을 이룰 것 같다. 이런 혼례식에 접하는 청첩장을 보면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따뜻한 봄날을 맞이하여 신랑 아무개 군과 신부 아무개 양이 화촉을 밝힙니다”라는 문구다.

또 결혼식의 사회자가 식을 진행하면서 “다음은 양가 어머님의 화촉점화가 있겠습니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여기에서 잠시 ‘화촉’이라는 말에 대해 음미해보기로 하자. 한자로 쓰면 ‘빛날 화(華)’ ‘촛불 촉(燭)’으로 쓰는데 ‘화촉을 밝힌다’라는 말은 ‘결혼을 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또 ‘화촉점화(樺燭點火)’에서 ‘화(樺)’는 자작나무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초에 불을 켠다’는 뜻인 셈이다. 이 나무껍질에는 유독 기름 성분이 많기 때문에 불을 붙이면 자작자작 소리를 내면서 오래 불에 탄다고 해서 ‘자작나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더욱이 이 나무의 몇 가지 특성을 보면, 나무줄기의 새하얀 껍질을 잘 벗겨서 순수한 사랑의 편지를 적어 보내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사랑의 나무’로 잘 알려져 있다. 또 암수 한 그루로 꽃은 4월에 피고 암꽃은 위를 향하며 수꽃은 이삭처럼 아래로 늘어지는데 오랫동안 나무가 썩지 않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합천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의 원목은 이 나무로 만들어졌고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말안장의 그림 재료도 이것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대단하다. 그 뿐 아니라 치아에 들어붙어 있는 프라그를 없애는 물질도 이 나무에서 추출한다. 우리가 자주 씹는 자일리톨(xylitol)이라는 껌에도 이 나무에서 추출한 천연감미료가 들어있다고 하니 자작나무야말로 우리에게 의학적인 은혜도 베풀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하나도 버릴 것 없는 쓰임새 덕분에 식물학자들이 이 나무를 ‘숲속의 귀족’이니 ‘숲속의 여왕’등으로 경외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나무껍질의 불로 어둠을 밝히면 이 세상 모든 행복을 불러들일 수 있다는 깊은 뜻을 담고 있으니 더욱 매력적이다. 결혼을 할 때 화촉을 밝히는 연유도, 선남선녀가 서로 만나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그 자체가 두 사람에게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모든 행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라고 하니 더욱 의미심장할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불타고, 행복을 부르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부부생활에게 잘 어울리는 ‘자작나무’를 생각하면, ‘화촉’은 신랑신부에게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우리 현대인은 일상생활에서 종종 접하는 자작나무로부터 많은 은혜와 교훈을 얻을 수 있어 감사하길 이를 데가 없다. 더욱이 우리는 자작나무 껍질이 자작자작 타듯이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이 나무가 오랜 시간 썩지 않듯 건강하게 살아가야하며, 오랫동안 화촉이 꺼지지 않듯이 오랜 행복의 생활을 이루어 갈 수 있어야 한다. 이 신성한 숲속의 여왕, 숲속의 귀족인 자작나무를 영원히 닮아 가면서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어떨까? <김원호 울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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