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는 울산의 문명화 길 열어준 최고의 기제
고래는 울산의 문명화 길 열어준 최고의 기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1.29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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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면 오른쪽 아래 선 쪼기 그림 범고래 형태 표현 분명
끝 쪽 균열선 따라 비스듬히 배치된 또 하나의 이미지
꼬리지느러미 V자형 벤 자리 등 향고래 특징 고스란히
이 암각화 속에는 물론 범고래로 추측되는 형상도 그려져 있다. 그것은 주 암면의 오른쪽 아래에 소위 선 쪼기로 그려진 형상이다. 이 형상은 멧돼지로 여겨지는 형상 위에 덧그려져 있으며, 고래와 거북 등이 주위에 분포되어 있다. 이처럼, 어떤 형상이 다른 형상 위에 덧그려져 있다는 것은 곧 그것이 아래에 있는 형상보다도 더 늦은 시기에 그려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 형상은 아래에 있는 형상과는 달리 선 쪼기로 그려졌으며, 몸통 또한 몇 개의 선으로 분할되어 있다.

바로 이와 같은 덧그려진 형상의 예 때문에 일부 연구자들은 소위 선 쪼기로 그려진 형상들이 이 암각화에서는 면 쪼기나 절충식 쪼기 보다 늦게 그려진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또한 이 형상을 통해서 살필 수 있는 바와 같이 몸통의 내부가 선으로 분할된 형상을 놓고는 그것이 분배의 표시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물론 이 형상 하나만 떼어 놓고 본다면, 이와 같은 주장들 가운데도 일부 타당한 점이 있다. 그러나 대곡리 암각화처럼 하나의 암면에 여러 시기에 걸쳐 형상들이 그려진 경우, 그 제작 시기의 선후 관계를 분석할 때에는 다른 부분들의 중첩 사례는 물론이고 양식과 기법 등도 동시에 비교·분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찬가지로 일부 연구자들이 제기한 분배의 표시, 즉 이 형상의 몸통에서 살필 수 있는 내부 분할 선들이 포획한 고래의 분배를 나타낸 것이라는 주장에도 선뜻 동의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내부 장식의 선들이 특정 동물의 골격이나 표피의 무늬 그 밖의 부족의 문장 등 다른 의미를 지닌 것들을 추상적으로 형상화한 사례들도 적지 않게 살펴지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일부 연구자들이 예로 삼은 분배도와 이 형상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데도 어려움이 따르지만, 이 암각화에서 내부 장식이 된 동물 형상들은 해체나 분할보다는 신체기관, 몸통에 나 있는 무늬나 동작 가운데 어떤 모습을 나타낸 것들이 훨씬 더 많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 형상의 형태상의 특징을 살펴보면, 가슴지느러미는 머리끝과 등지느러미의 중간 지점에 나 있다. 등지느러미는 가늘고 또 높게 솟아 있으며, 그 높이는 몸통 전체 길이(體長)의 약 1/5.5에 이른다. 또한 등지느러미는 몸통의 머리끝에서 약 1/3지점에 솟아 있다. 등지느러미가 난 부분이 몸통 중에서 가장 넓게 발달한 모습이다. 꼬리지느러미는 가운데는 ‘V’ 자형의 벤 자리가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 형상의 몸통은 입과 꼬리부분을 제외하고도 모두 여덟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처럼 이 형상에서 살펴지는 가장 특이한 점은 몸통을 세 등분으로 나눌 때 앞의 1/3 지점에 체장의 1/5이 넘는 높이의 등지느러미가 솟아 있다는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몸통의 전반부 1/3지점에 체장의 1/5에 해당하는 높이의 등지느러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오직 범고래뿐이다. 뿐만 아니라 범고래는 다른 고래들과는 달리 등지느러미가 솟아 있는 부위가 가장 잘 발달하였으며, 그러므로 몸통의 1/3지점에서 그 체고가 가장 높다. 게다가 가슴지느러미의 위치도 머리끝에서 등지느러미의 중간 지점에 있다. 또한 익히 알려진 것처럼, 범고래는 다른 고래들과는 달리 표피의 색과 무늬가 검정, 회색 그리고 흰색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렇듯, 이 형상에서 범고래의 그와 같은 신체적 특징을 골고루 살펴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이 형상이 범고래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 암각화 속에는 이와 같은 몸통 구조를 하고 있는 고래 형상을 더 이상 찾아 낼 수 없다. 이 형상에서 아직도 불분명한 것 가운데 하나는, 왜 몸통을 그와 같이 몇 개의 구혁으로 구분해 놓았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일부 연구자들이 주장한 바 있듯이, 과연 이 형상이 고래의 분배를 나타낸 것인지, 아니면 골격의 구조나 표피의 생김새, 그 밖의 특별한 의미를 지닌 상징 문장인지 등은 앞으로 규명해야 할 과제이다.

또한 이 암각화 속에는 향고래로 보이는 형상도 하나 살펴진다. 그것은 대곡리 암각화의 주암면 오른쪽 끝에 그려져 있다. 이 형상은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엇비스듬히 난 균열 선을 따라 비스듬히 배치되어 있다. 겉으로 드러난 형태상의 특징은 직사각형의 몸통에 각각 하나씩 그려진 가슴지느러미와 등지느러미 그리고 가운데가 갈라진 꼬리지느러미 등이다. 끝이 뭉뚝한 머리에서 등지느러미까지 몸통의 구조는 거의 직사각형에 가까우며, 그것은 그 이후 급격히 가늘어지면서 꼬리지느러미와 이어져 있다.

그런데 향고래의 가장 큰 특징은 머리끝에서 꼬리자루에 이르기까지의 몸통이 거의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는 점이다. 성숙한 향고래의 머리는 몸통 전체 길이의 1/3에 이를 정도로 크고 또 잘 발달되어 있으며, 몸통의 2/3 지점 후방에 커다랗게 솟은 등지느러미와 함께 몇 개의 혹들이 솟아 있다. 꼬리지느러미의 가운데는 ‘V’ 자형의 벤 자리가 나 있다. 수염고래나 돌고래 등 다른 것들에 비할 때 향고래는 특히 이마와 위턱이 매우 발달하였으며, 그에 비할 때 아래턱은 너무나 왜소하다.

이 형상은 향고래의 그와 같은 신체적 특징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형상은 이 암각화 속 여느 고래 형상과는 다르게 직사각형의 긴 몸통을 하고 있으며, 몸통의 중간 부분이 발달하였다. 그와 더불어 몸통의 2/3지점에서 뒤로 향해 난 등지느러미도 향고래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형태상의 특징을 보이고 있는 이 형상을 향고래로 보는 데는 무리가 없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이 암각화 속에는 다수의 고래 형상들이 그려져 있다. 바로 이와 같은 고래 형상들을 통하여 선사시대 대곡리 암각화 제작 집단이 보았던 고래들을 대강 엿볼 수 있었다. 일련의 형상 분석을 통하여 이 암각화 속에는 수염고래 아목과 이빨고래 아목이 서로 뒤섞여 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대곡리 암각화 제작 집단은 이처럼 각 아목과 종별 특징들을 분명히 파악하고 있었으며, 서로 간의 차이점을 뚜렷이 구분하여 표현해 놓았던 것이다.

그동안의 분석을 통해서 이 암각화 속에는 보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북방긴수염고래, 참고래, 귀신고래, 대왕고래 그리고 혹등고래 등 모두 8종의 수염고래 아목이 그려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빨고래 아목 가운데는 범고래와 향고래 그리고 부리고래 등을 살펴낼 수 있었다. 이로써 이 암각화 속에는 모두 11종 이상의 종이 다른 고래들이 그려져 있다는 주장을 펼 수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종의 고래들이 대곡리 암각화 속에 그려져 있다는 것은, 제작 집단이 이와 같은 고래들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또 그것들을 실제로 포획하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바로 이와 같은 고래들은 울산만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울산이 한반도에서 가장 일찍부터 문명화의 길을 걸을 수 있게 해 준 기제였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대곡리 암각화 속 고래들이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 다음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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