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리의 ‘휴지 한 장’
비비안 리의 ‘휴지 한 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1.17 21: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즈음은 각 방송사별로 예능프로의 오디션이 열풍이다. 유명가수들이 나와 경쟁하는 프로도 있을 뿐 아니라 해외에서 직접 오디션에 참가시켜 국내에서 경쟁시키는 프로도 있다. 필자가 강의실에서 하고 있는 세미나에서도 오디션을 본 일이 있다. 세미나의 성질상 외국어번역 연습을 겸하면서 매년 연말 `작은 음악회를 개최하기 때문이다. 그 장기(長技)코너를 열심히 살펴보면, 강의실에서 보는 우리학생들의 모습과 음악회에서 보는 학생들의 모습은 너무나 다른 것에 놀라기도 한다.

서울의 어느 구청에서는 시민들을 위하여 지나간 추억의 명화를 정기적으로 상영한다고 한다. 거기에는 잘 알고 있는 불후의 명작 `태양은 가득히` `노트르담의 꼽추` 등을 가지런히 예고하고 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영화는 `클락 케이블`과 `비비안 리`라는 두 주인공이 나오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다. 160센티의 작은 키에 18인치의 개미허리를 뽐내는 아름다운 `비비안 리`가 등장하는 영화이어서 관심이 더 간다.

인도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그 곳에서 보낸 그녀는 고국 영국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같이 유럽 각지를 돌며 교육을 받는다. 어느 날 이 영화에 출연할 스칼렛 역의 여주인공을 뽑는 오디션에 참가하게 되는데, 오디션에서 그만 불합격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불합격임에도 얼굴을 찡그리는 대신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출입구 쪽으로 나가면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휴지를 사뿐히 주웠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감독이 불러 세웠다.

“잠깐만요! 당신이 지었던 부드러운 미소와 표정 그리고 휴지를 줍는 그 마음가짐을 보니, 다른 것은 보지 않아도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을 것 같군요! 이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발탁하겠소!”

그 영화에서 그리려는 여주인공의 강인한 용기와 정신력을 가진 새로운 여성상을 선보이는데 그녀의 인성이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비비안 리`처럼 마음에서 우러나는 발심(發心)의 좋은 인성이 있는가 하면, 다음과 같은 경우도 있다. 필자는 집에서 연구실까지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아 걸어 다닌다. 집을 나서서 골목길을 거쳐 구멍가게를 돌아서면, 금방 새로 깐 듯 깨끗한 아스팔트길이 나온다. 생각에 깊이 빠져 하루의 일과도 그려보고 좋아하는 팝송도 읊어대면서 터벅터벅 걸어간다. 어느 날 내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한 신사는 깔끔한 정장 신사복에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고 있어 걸어가는 모습이 한껏 돋보였다. 그 정도 스타일이라면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는 매력 있고 멋있는 남성상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사람이 그 깨끗한 아스팔트 길 위에다 가래침을 퉤! 뱉으면서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게 아닌가! 그 사람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일순간에 사라져버린 경우다.

이러한 광경을 보고 있으니 언뜻 어릴 때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개구리와 지네`에 관한 동화가 떠오른다. 개구리는 어느 누구보다도 수영은 단연 최고이다. 그러나 지네는 다리만 많았지 수영이라곤 쥐꼬리만큼도 할 줄 몰라 물속에 들어가면 이네 빠져 죽는다. 어느 날 지네가 앙숙관계인 개구리한테 통사정을 한다. “개구리야! 개구리야! 내가 오늘 급한 사정이 있어 저 강을 건너야 하는데 좀 도와줄래? 너도 알다시피 나는 다리만 많았지 헤엄은 칠 수 없잖니? 그러니 제발 도와줘라!”

그 말을 들은 개구리는 선뜻 내키지 않아 대답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네는 보기만 해도 징그럽고 남을 물어뜯어 죽이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네는 다시 부탁을 한다.

“개굴아! 개굴아! 이렇게 빌게. 진짜 급한 일이 있어 그래!”

이렇게 통사정을 하고 있는 지네의 말에 하는 수 없이 도와주기로 했다. 그래서 개구리는 지네를 등에 업고 강을 건너지만 기회가 되면 나를 물어 죽일 것 같은 섬뜩한 기분이 들어 괜한 일을 하지 않았나하는 후회를 느낀다. 강을 거의 다 건널 무렵, 아니나 다를까 지네는 개구리의 뒷목을 물어뜯어 죽여 버리고 자기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하는 우화이다. 그야말로 지네의 나쁜 습성은 죽어서도 고칠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와 같이 지네의 나쁜 습성, 그리고 보기엔 신사 같은 아저씨의 침 뱉는 습관, 그것에 반해 세기적인 여배우 `비비안 리`의 실패 앞에서도 온화함을 잃지 않았던 모습과 덕분에 세기적인 역할을 맡아낸 명화를 생각해보면서, 우리에게 삶의 자세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을 명심해둔다면 더욱 더 행복한 하루하루가 되지 않을까. <김원호 울산대 교수>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