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동물과 중첩된 독특한 윤곽 쪼임 호기심 자극
다른 동물과 중첩된 독특한 윤곽 쪼임 호기심 자극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1.15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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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면 중간부분 흥미로운 고래 한마리
가슴지느러미 부분 없어 미완성된 듯
선·면쪼기 혼용 형상 vs 범고래 주장
“윤곽 표현 범고래 흰 배 나타낸 것”
형태적 특징·구조 고려 설득력 없어
주변
암 면의 중간부분에는 또 한 마리의 흥미로운 고래 형상이 그려져 있다. 그것은 다른 형상들과 비교할 때 주변에 가장 많은 여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완성된 형상이며 동시에 호랑이과의 다른 동물 형상과 부분적으로 중첩되어 있다. 이 형상을 두고 미완성이라고 보는 것은 가슴지느러미가 없기 때문이다. 발견자를 비롯한 초기의 연구자들은 몸통의 약 2/3에 해당하는 전반부가 윤곽만 쪼여져 있는 점을 들어 이 형상이 미완성된 것이라고 보기도 하였다.

그러한 시각은 이후 선 쪼기와 면 쪼기가 혼용된 형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또 범고래를 나타낸 것이라는 주장 등이 차례로 제기됨에 따라 완전히 빛을 잃었다. 사실 하나의 형상을 표현하는데 두 가지 이상의 다른 기법을 혼용하는 예들이 있음을 초기의 연구자들은 간과하였던 것이다. 바위그림에서 여러 가지 기법을 혼용하여 형상들을 표현한 예들이 적지 않으며,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예 가운데 하나가 바로 대곡리 암각화 속의 형상들이다. 이 암각화 속에는 특정 제재가 내포하고 있는 형태적 특징을 표출시키기 위하여 소위 선 쪼기와 면 쪼기를 혼용한 형상들이 여러 개 살펴진다. 특히 작살이 같이 그려진 고래 형상 중, 작살은 면 쪼기, 선 쪼기, 긋기 그리고 갈기 등이 복합적으로 혼용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형상을 굳이 미완성된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다른 고래 형상들에서 살필 수 있는 가슴지느러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림을 통해서 살필 수 있듯이, 이 형상의 몸통은 거의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 형상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았거나, 아래에서 위로 치켜본 모습, 즉 배(腹)나 등(背)을 그린 셈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좌우의 가슴지느러미가 그려져 있어야 하는데, 그림에서처럼 그것이 생략되어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 형상을 완성되지 않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연 구자들 중 일부는 이 형상이 범고래를 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본 연구자들의 근거는 신체 전반부 때문인 것 같다. 즉 윤곽만으로 표현된 부분은 범고래의 흰 배를 나타낸 것이라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연구자들은 이 고래 형상의 주둥이라든가 가슴이나 등(背) 그리고 꼬리지느러미와 더불어 몸통의 생김새 등에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이 형상에서 윤곽만 쪼여진 부분을 흰 배를 나타낸 것으로 단정하였으며, 더욱이 그것이 범고래의 흰 배를 잘 표출시켰다고 보았던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동안의 연구자들은 몸통과 그 세부의 생김새를 비교 연구하여 고래의 종을 분류하거나 판독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에 이것이 범고래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면, 이 형상의 어떤 부분이 범고래의 속성을 나타내고 있는지도 함께 지적해 내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형상이 과연 범고래를 형상화한 것인지 아닌지 여부를 가리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범고래의 형태적 특징을 먼저 파악하는 일이 필요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범고래는 이빨고래 아목이며, 겉으로 보이는 형태상의 특징은 다른 고래들에 비해 배에서 등까지의 높이, 즉 체고(體高, 키)가 높다. 부리는 그 길이가 아주 짧고, 이마는 둥글며, 부리와 이마 사이는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가슴지느러미는 둥글고 넓으며, 등지느러미는 다른 어떤 고래들보다도 높다. 또한 배에는 머리에서부터 생식기에 이르기까지 포크 모양의 흰 색 무늬가 뒤로 향하면서 길게 나 있다.

이러한 점을 상기하면서, 이제 다시 이 형상의 생김새를 꼼꼼하게 되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신체 구조를 살펴보면, 몸통의 폭은 전체 길이의 약 1/3지점, 즉 가슴지느러미가 있어야 할 부분이 가장 넓으며, 꼬리자루에서 꼬리지느러미로 이어지면서 그 폭이 급격히 가늘어지는 긴 유선형이다. 몸통의 전체적인 생김새와 비례 등을 놓고 볼 때, 머리 부분은 그 폭이 상대적으로 급하게 줄어들어 눈에 띌 정도로 뾰족하다. 물론 이미 지적하였던 것처럼, 가슴지느러미는 없으며, 머리끝에서 신체의 약 2/3지점까지는 윤곽만 쪼았다.

이 렇듯 주둥이 부분은 폭이 좁고 또 길쭉하다. 그러므로 주둥이 부분이 범고래의 그것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주둥이가 뾰족한 것은 수염고래 아목에서는 밍크고래가 있으며, 이빨고래 아목에서는 큰 부리 참돌고래, 짧은 부리 참돌고래, 긴 부리 돌고래 등 부리 고래류들이 대표적이다. 이미 지적하였던 것처럼, 이 형상에서 가슴지느러미나 등지느러미 따위는 없다. 그리고 살필 수 있는 특징 중의 하나는 신체 전반부의 윤곽만 쪼여진 부분이다. 이것이 배를 나타낸 것인지 아니면 쪼다가 만 것인지를 구분하는 일도 중요하다. 만약 이 부분에 주름이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수염고래 아목을 나타낸 것이지만, 그것이 없으므로 흰 배 부분을 나타내었다는 주장도 섣부르다.

동시에 범고래의 배에 흰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어디에 어떤 모양을 하고 있고 또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등도 살펴서 서로 비교해 볼 수 있다. 범고래의 배에는 틀림없이 흰 색의 띠가 나 있다. 그런데 그 생김새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아래턱 부분은 모두가 흰 색이며, 배 부분에 이르면서 그 폭이 좁아지고 꼬리 쪽으로 가면서 세 갈래로 나누어지는데, 전체적인 생김새는 포크 모양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세 갈래로 나뉜 흰 색의 띠 중 좌우의 것이 범고래의 몸통 측면에 난 흰 선이다.

그러므로, 이 형상에서 겉으로 드러난 특징들을 놓고 볼 때, 이것이 범고래라는 일부 연구자들이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다시 한 번 지적하자면, 뾰족하면서 길쭉한 머리 부분의 생김새가 범고래의 그것과 다르며, 윤곽만 쪼여진 부분 역시 범고래의 흰 줄무늬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따라서 선사 시대 대곡리 화가들이 가슴지느러미를 생략하고 또 윤곽만 그린 이유를 규명해 내기 전까지는 그것이 무엇을 나타내었는지 단정하기가 어렵다.

암 면의 형상이 무엇을 나타낸 것인지는 주변 정황과 함께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다른 형상들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 즉 그 배치와 구성 등도 보다 종합적으로 분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형상에 대한 첫 번째 인상은 돌고래류와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만약에 윤곽만 쪼인 부분이 흰 배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면, 뾰족한 주둥이와 흰색의 배를 지닌 것 가운데 짧은 부리 참돌고래, 긴 부리 참돌고래, 낫돌고래 따위를 형상화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형상에서 폭이 좁은 머리 부분이 과연 돌고래의 뾰족하고 긴 부리를 나타낸 것인지, 돌고래류라고 한다면 그 몸통 길이가 최대 3m에 이르지 않는데, 10여명의 사람들이 탄 배보다 두 배 이상 크게 그렸는지 등의 의문이 동시에 제기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지금 현재의 상태에서는 이 형상이 어떤 고래를 형상화한 것인지의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번 기회에 이 형상이 범고래를 형상화하였다는 일부 연구자들의 주장이 바르지 않음을 분명하게 지적해 두고자 한다.

< 다음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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