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없는 사람들
염치없는 사람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4.28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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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廉恥)는 옛날(1960년대부터 한 동안) 서울 명동에 있던 중국 화교학교의 본관건물 한 가운데에 붙어있던 교훈이다.

당시 중국 화교학생들이 아침 조회 때마다 조회대 뒤의 ‘염치’라는 낱말을 볼 때마다 ‘염치가 있어라’를 되새겼을 것이다. 어떤 염치가 필요해서 학생들에게 ‘염치를 알아라’, 어떤 ‘염치없는 짓을 하지 마라’라고 했을까?

그때 우리는 중국 사람들을 6·25 전쟁 때의 중공군 빨갱이, 인해전술, 두껍게 누빈 솜 옷, 그리고 짱깨라는 비속어로 얕잡아 보고 있었다. 지금도 그런 감이 없지 않으나 하여간 가짜, 짝퉁으로 중국 사람들을 깔보는 버릇이 남아있다. 이렇게 무시당하던 중국 화교들이 아무 말 없이 자기 학생들에게 ‘중국 사람이라는 자존심을 잊지 말고, 의연하게 한국 사람을 대하고,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마라. 염치를 가져라’는 행동지침을 주었던 것이다.

자장면 국수 가락이나 뽑는 중국 사람으로 깔보았는데, 사실은 인성교육의 진수를 가르치고 있었다. 우리는 염치고 뭐고 아무 것이나 돈 되는 것이면 좋다는 방식으로 살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미군이 버린 깡통으로 별의 별 것을 다 만들어 썼다. 재떨이는 기본이고, 작은 냄비, 연필꽂이, 쓰레기 통, 그리고 드럼 통으로 버스 몸체를 만들었다. 특히, 고장 난 탱크를 이틀 만에 분해하여 처분하였다. 염치고 뭐고 없었다. 그런 때에도 짱깨는 염치를 갖고 있으라고 가르쳤다.

지금 울산에서 어느 어른이 어린 학생들에게 ‘부끄러운 짓을 하지 마라’라고 가르칠 것인가? ‘자존심을 갖고 살아라’라고 잔소리를 할 것인가?

염치없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다. 사람은 짐승과는 달리 부끄러움이 있다. 본능적인 부끄러움도 있으나, 학습된 부끄러움이 있다. 우리 어른들이 이것을 가르쳐야 한다.

학습된 부끄러움의 첫째는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이다.

짐승은 부모라는 개념이 없다. ‘개새끼’라는 욕은 부모도 몰라본다는 뜻이 욕 속에 숨어있다. 꼭 유교적 구시대라고 비웃을 일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첫째가 제 부모를 알아보는, 그래서 효도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불효하는 행동을 부끄러워하도록 학습시켜야 한다.

둘째는 역지사지(易地思之), 내가 대하는 상대방과 입장을 바꿔 생각해볼 수 있는 태도이다. 이 일은 감히 어느 짐승이 할 수 있는가? 사람만이 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을 할 줄 모르면 부끄럽다는 학습을 시켜야 한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데에서 ‘양심(良心)’이 나오기 때문이다.

셋째는 진정한 자존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진정한 자존심이 없으면 부끄러운 사람이 되는 것을 학습 시키는 것이다.

진정한 자존심은 내가 나를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는 나이다’, 내가 무슨 일을 하건 나는 나이다고 자기가 자신을 인정하는 마음을 갖도록 가르쳐야 한다.

울산의 여러 직종의 어른들이 자식들에게 ‘나는 나이다’의 진짜 자존심을 보여 주면 염치 있는 아이들로 성장한다. 의연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 박문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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