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암각화에서 가장 먼저 새긴 범고래
반구대암각화에서 가장 먼저 새긴 범고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12.25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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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신앙에 있어서 돌이나 나무가 책, 즉 경석(經石)을 의미한다고 한다. 박용숙은 한국고대미술문화사론 ‘샤머니즘 연구’에서 지석묘(支石墓)에서의 지석도 그런 의미에서 경석이라고 보았다. 이때의 그림이 기하문양이나 숫자로 표시되어 거의 그런 석단본(石壇本)들이 곧 샤머니즘의 경서가 된다. ‘석(石)이 책(經書)의 의미를 지닌다’는 이 글은 모리 시카조(森鹿三 1906~1980년)의 수경주(水經注)에서 인용했다고 한다.

울주의 두 바위그림은 선인들이 한정된 암벽에다 새긴 메시지다. 가장 절제된 문양과 그림으로 표현하였다고 여겨진다. 아울러 그 당시의 전달기능 언어로서 가장 객관적이었을 것이며 전달의 최소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바위그림 언어는 새김질한 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회에선 매우 중요한 표현매체이면서 반드시 필요한 의사소통의 도구로 쓰였을 터이니 바위그림이 가지는 그들의 사회적 기능을 유추해 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원리를 지녔다고 본다.

두 바위그림의 내용에선 오늘날의 입장에서도 적용 가능한 실용적인 이야기가 새겨있음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특히 예화(例話)로 각색하여 살펴보면 더욱 그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앞서 이 난을 통해 ‘천전리각석 마름모가 품은 뜻’을 해석해 보았다. 이번 글에는 반구대암각화 사람들의 교육현장의 측면에서 이 바위그림의 중앙에 새겨둔 범고래를 중심으로 읽어 보려 한다.

김정배는 ‘이흐두를지팔로 암각화의 사람형상에 관하여’란 글에서 ‘선사그림에서 중요한 내용은 대개 그 중앙에 새긴다’고 일러 준다. 비약일런지 모르겠으나 그리스도교에서 예수님을 귀퉁이에 그려놓지 않는다. 불교 역시 부처님을 가운데 모신다. 너무나 보편적인 배치구조이다. 그리고 선사그림에서 동류(同類)의 정서(情緖)를 가진 그림일 경우에는 그림이 겹쳐지거나 연결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반구대암각화를 떠 올려 보자. 거의 가운데 새겨둔 범고래 꼬리 부분에 표범의 꼬리가 걸쳐 있는데, 이들은 맹수이다. 주변에는 앉은 호랑이와 함께 여러마리의 호랑이가 진을 치고 있다. 이러한 지식을 토대로 하여 바위그림 중앙에다 제일 먼저 새긴 그림은 범고래라고 점처 보며, 그놈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려 한다.

“너희들이 바다에 나가 고래잡이 할 때 특히 주의 할 점은, 솔피로 불리는 범고래(Orcinus orca)다. 매우 무서운 놈이므로 극히 주의하여라. 이놈의 특징은 등지느러미인데 수놈은 약 2m, 암놈은 1m 정도 높이의 삼각형 모양이다. 대체로 성격이 느린 귀신고래가 범고래를 얼마나 무서워하는가에 대한 설명을 할 테니 잘 들어보아라. 귀신고래와 범고래는 사이가 좋지 않단다. 그래서 범고래는 늘 귀신고래를 괴롭히지. 해서 범고래들이 나타나면 귀신고래들은 겁에 질려 하얀 배를 위로 하여 몸을 뒤집고 지느러미를 편 채 꼼짝하지 않고 마치 마비된 것처럼 하고 있다. 범고래가 귀신고래의 다문 입술에 주둥이를 대고 억지로 자신의 머리를 쑤셔 넣어서 귀신고래의 혀를 뜯어 먹는단다. 직접 귀신고래를 잡은 포수의 얘기를 빌리자면 그가 잡았던 귀신고래 중 거의가 지느러미와 꼬리의 끝이나 뒷부분의 가장자리가 찢겨 나가고 없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들었다. 범고래는 우리들의 집주변에서 가끔 나타나는 호랑이나 표범만큼 무서운 맹수이기에 가까이 가지도 말며 혹여 물가에서 보이면 즉시 도망쳐야 한다. 그 놈의 이빨은 표범이나 호랑이의 이빨보다 훨씬 크고 단단하단다. 범고래가 표범만큼이나 위험하니, 항상 잊지 않도록 여기 바위에 새겨 두자꾸나.”

정약전(丁若銓 1758~1816년)은 직접 흑산도 바다에서 관찰하고 기록한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범고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해 두었다.

‘이 놈 중 큰놈은 5~6장(15m/1장=10척=1척=약 30cm)에 이른다. 모양은 다른 상어와 비슷하고 몸빛깔이 순흑색이다. 지느러미와 꼬리는 커서 배의 돛대 같다. 바다의 상어 중에서 가장 큰 놈이다. 큰 바다에서 살며 비가 내리려 할 때는 무리지어 나타나 물(숨기둥)을 뿜는데, 그 품이 마치 고래와 같아서 배들이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범고래를 상어와 비슷하리만치 무섭다는 의미로 기록하고 있다.

반구대의 바위그림 내용을 중앙에 범고래와 육지의 맹수들을 가장 먼저 새기고 좌우로 계속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고 여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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