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왕 우사인 볼트의 해이
달리기 왕 우사인 볼트의 해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12.19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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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선수가 일본 프로야구 시절 기자회견 때 자주 썼던 말이 있다. “잇쇼켄메이 간바리마스(一生懸命頑張ります)”.‘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뜻이다. `잇쇼켄메이(一生懸命)`라는 말은 일본 봉건 시대 때 무사가 조상의 땅을 목숨 걸고 지켜나가겠다는 다짐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런 표현은 지금까지도 어떤 일을 할 때 생명을 걸 정도로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며칠 후면 임진(壬辰)년 새해를 맞이한다. 어느 누구라도 각오가 새롭겠지만 이런‘잇쇼켄메이’의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아가면 어떨까? 다음의 몇 가지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생각해 봤으면 한다.

지난 늦여름 때 이야기를 좀 하고 싶다. 나의 고향 대구에서는 세계적인 육상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평상시 육상에 대하여 흥미를 갖고 있던 터라 더욱 관심이 많았다. 최근에는 울산의 확 트인 태화강변을 경보를 하느라 열심히 달리고 걷고 하여 그 재미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제대회가 열리는 경기장에는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현장에 가 있는 것 같은 HD화면을 보면서 한여름 밤의 역동적이고 생동감 있는 경기를 즐길 수 있었다. 그 중 주된 관심거리였던 100m 달리기의 경기모습이 인상적이였는데 이전 세계신기록이 자그마치 100m에 9.58초인 달리기 왕 `우사인 볼트`가 출전하는 그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대구 경기에서도 어느 누구도 넘나볼 수 없는 금메달감임에 틀림이 없었다. 경기에 앞서 장내 아나운서의 선수 소개시간이다. “1번 레인 에티오피아선수…” 약간 주눅이 든 모습이지만 각오가 단단해 보이는 얼굴이다. “5번 레인 우사인 볼트…” 명랑한 웃음을 지으면서 손을 든다. 그에게 카메라가 다가가니 입고 있는 유니폼의 국기를 가리키며 우쭐대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세레머니를 보여준다. 이 시간이야말로 정신집중이 필요한 때인데도 정말 기고만장한 모습이였다. “레디!…” 담벼락에 살며시 앉아 먹이를 노려보고 있는 고추잠자리처럼 쫑긋 엉덩이를 치켜 올린다. 우사인 볼트도 집중하느라 “쉬-” 라고 한마디 보태보기도 한다. 총소리가 “탕-” 나자 프라잉(실격)이 나 버린다. 그러자 억울하다는 듯 웃통을 벗어버리면서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떡볶이와 튀김으로 갑부가 된 한 젊은 사업가의 성공스토리가 생각이 난다. 매출이 1천200억이고 전국에 체인점이 850개를 갖고 있는 그는 스스로 내 피 속에는 아무래도 장사의 혼이 늘 흐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야심찬 사업가이다. 그의 성공지론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혼자 튀김을 만들면서도 자신이 정한 규칙을 철저히 따르고 떡볶이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재료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것이다. 도마 위에서 파를 썰 때도 손님이 보든 안보든 온 정성을 다하여 하나라도 비뚤어지지 않게 썬다고 하는 그는 조그마한 것이라도 `잇쇼켄메이` 일하는 것이 그의 성공비결이라고 말했다.

잘 알고 있는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이야기를 하나 더 들어보자. 옛날 어느 나라에 예쁜 공주가 살았는데 갑자기 원인 모를 병이 들어 시름시름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임금은 하나 밖에 없는 딸을 살리기 위해 누군가 공주를 살려주면 공주와 결혼시켜주고 왕위도 계승해 준다는 조건부 내용의 방(榜)을 전국에 붙였다. 천리를 내다볼 수 있는 요술 망원경을 가지고 있는 총각, 재빨리 하늘 위로 날아다닐 수 있는 요술 양탄자를 갖고 있는 총각, 여러 가지 과일을 갈아 쥬스를 만들어 마시게 하면 한방에 병이 낫는 신통한 쥬스 만드는 법을 알고 있는 총각이 그 방을 함께 보게 되었다. 망원경 총각은 망원경으로 궁을 찾고, 양탄자 총각은 양탄자를 타고 궁으로 찾아가, 마지막으로 쥬스 총각은 공주에게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여러 과일을 섞어 만든 쥬스를 만들어내었다. 그 쥬스를 마신 공주는 살아나게 되었고 임금도 깜짝 놀라며 약속대로 세 총각 중에서 왕위를 계승시켜주기로 한다. 임금은 고민 끝에 결혼 상대를 망원경 총각이나 양탄자 총각이 아닌 쥬스 총각으로 정했다. 망원경과 양탄자는 어떻게든 구할 수 있지만, 온갖 정성을 다하여 만들었던 요술 쥬스는 쥬스 총각이 아니면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한 잔에 온 마음을 담아 예쁜 공주를 살려낸 그 쥬스 총각의 지극 정성스러운 마음, 그리고 떡볶이 사장의 조그마한 것에도 전심전력을 다하는 자세, 달리기 왕‘우사인 볼트’의 해이해진 정신자세 등을 떠올려보는 것은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 우리 모두에게 의미 있는 교훈이 되리라 생각해본다.

< 김원호 울산대학교 일본어·일본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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