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학자 못잖은 관찰, 세밀화 능가할 새김에 경탄
생태학자 못잖은 관찰, 세밀화 능가할 새김에 경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12.18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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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뿜는 모양·등선·주름 차이점 뚜렸해
주둥이 위 선으로 브라이드·보리고래 구별
선·면 쪼으기로 양감 디테일 훌륭히 표현
브라이드 고래는 등지느러미나 수염의 크기 그리고 주름 등이 보리고래에 비할 때 작으며 또 분기의 높이는 낮으나 겉으로 드러나는 생김새는 그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보리고래와 분명하게 다른 점은 주둥이 위에 세 개의 선이 뚜렷하게 융기되어 있는 점이다. 수염고래들은 주둥이 위에 보통 하나의 융기선이 나 있는데, 특이하게도 브라이드 고래는 세 개의 융기선이 나 있는 것이다. 몸통의 전체적은 생김새를 놓고 볼 때 입에서 분기공 부분까지는 가늘고 뾰족한 모습이지만, 그 이후부터 타원형으로 바뀌면서 꼬리지느러미에 이르는 유선형을 이룬다.

이 암각화 가운데서 머리 부분의 세세한 디테일을 선으로 쪼았으며 또 몸통은 전면을 모두 쪼아서 형상화한 소위 ‘절충식’ 쪼기의 고래 형상은 그 전체적인 생김새를 놓고 볼 때 브라이드 고래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선사 시대의 대곡리 화가는 브라이드 고래의 입 모양과 머리 부분에 난 세 개의 융기선, 끝이 뒤로 약간 휜 가슴지느러미 등을 각각 다른 시점에서 포착한 다음, 그것을 그림처럼 하나의 형상으로 재구성하였던 것이다.

특히 선사시대의 화가는 신체의 세부 디테일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위하여 두 가지 상이한 쪼기 방법, 즉 선 쪼기와 면 쪼기 방법을 동시에 활용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한 마리의 고래 형상을 분석하여 보면, 입은 측면, 주둥이는 위, 몸통은 측면 그리고 가슴과 꼬리지느러미는 각각 위에서 바라본 모습이 하나의 형상 가운데 재구성되어 제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입과 주둥이 위에 난 세 개의 선을 표현하는 데는 선 쪼기 방법을 채택하였고 또 몸통은 전면을 쪼아서 그 양감을 형상화하였던 것이다. 브라이드 고래는 우리나라 동해나 황해에서도 관찰되며, 정어리와 고등어 그리고 꽁치 등과 함께 소형의 부유성 갑각류를 먹는다고 한다. 전체의 길이는 약 12m 정도이며, 임신 기간은 12개월이고 수명은 60년 정도라고 한다.

몸통 가운데 작살이 그려진 고래와 그 왼편에 그려진 고래 형상은 특이하게도 가슴지느러미의 끝이 갈라져 있다. 가슴지느러미의 끝이 불완전하고 또 갈라진 고래는 전체 67점의 고래 형상 가운데 단 두 개뿐이다. 대곡리의 화가들이 가슴지느러미를 이와 같은 모양으로 그린 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물론 제작 당시에 화가들의 눈에 비친 고래 중 가슴지느러미가 특이한 것에 대한 특별한 기억의 반영이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종의 고래는 다른 종의 고래들에 비할 때 가슴지느러미가 특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음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점이 다른 고래들과 이 고래를 구별하는 분명한 기준이었을 것이다.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관찰되는 수염고래 3과 8종의 가슴지느러미를 서로 비교해보면, 그 생김새가 혹등고래 및 북방긴수염고래를 제외하면 모두가 대동소이하다. 혹등고래의 가슴지느러미는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몸길이의 1/3에 이르기 때문에 다른 것들과 금방 구별된다. 또한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는 다른 것들에 비해 가슴지느러미의 길이는 비슷하지만, 전체적인 모양이 타원형에 가깝다. 그러므로 이 둘은 수염고래의 다른 종들과 비교할 때 가슴지느러미의 기본적인 구조가 다른 것이다. 나머지 여섯 종의 고래들에서 가슴지느러미는 길이와 폭 그리고 구조 등이 다소 길거나 짧은 등의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인 구조는 비슷하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서 밍크고래의 가슴지느러미는 중간부분에 흰 선이 나 있는 점이 확인된다. 이렇듯 가슴지느러미의 색이 중간 부분에서 갑자기 다른 색으로 바뀌는 것은 비단 수염고래뿐만 아니라 이빨고래에서도 그 예를 살필 수 없다. 그러니까 밍크고래의 가장 큰 특징은 가슴지느러미의 중간 부분에 나 있는 흰 색인 셈이다.

따라서 작살이 그려진 고래와 그 왼쪽의 고래에서 살필 수 있었듯이, 가슴지느러미의 끝이 불완전하고 또 갈라진 것처럼 표현된 것은 밍크고래를 형상화한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밍크고래는 한반도 연근해에서 사시사철 살펴지는 종이다. 우리나라 연안에서 1년 내내 새끼가 관찰되는 점을 놓고 볼 때, 주요 서식지 가운데 한 곳이 한반도 연근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잡식성으로 위 속에서 발견된 주요 내용물이 멸치라는 점도 주목된다. 바위 표면을 쪼아서 그려야 하는 제약과 물속에서 헤엄을 칠 때 가슴지느러미의 모습을 그림에서와 같이 표현하였을 가능성은 충분히 높다.

이 암각화 가운데 가장 다이내믹하게 그려진 형상들은 암면의 왼쪽 아래 부분에 그려진 세 마리의 고래이다. 세 마리의 고래는 분기공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고리모양을 이루고 수증기가 분기되고 있다. 이는 두 개의 분기공에서 뿜어져 나온 것을 분명하게 증명해 준다. 그러니까 두 갈래로 뿜어져 나온 분기로 이것이 수염고래임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선사 시대 대곡리 화가와 고래잡이 포수들은 고래의 분기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기의 모습을 분명하게 살펴서 특징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고래는 부드럽게 휘어진 등선과 바깥으로 완만하게 반원을 그리며 솟아오른 배선 그리고 몸통에서 꼬리자루로 가면서 급하게 꺾인 곡선 등에서 물을 차오르거나 다이빙하는 순간의 움직임을 읽어낼 수 있다. 이 암각화 속에 그려진 대부분의 다른 고래들과는 다르게 측면의 모습을 그려놓았는데, 등선의 어디에도 등지느러미는 보이지 않는다. 수염고래목 중에서 등지느러미가 없는 것은 북방긴수염고래이며, 이빨고래목 중에서는 흰 고래와 상괭이뿐이다.

그런데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분기공에서 솟아오른 두 갈래의 분기는 그것이 수염고래임을 말해주기 때문에 이는 북방긴수염고래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 세 마리의 고래형상에서는 입과 가슴지느러미의 생김새도 분명하게 살펴낼 수 있다.

세 마리 가운데서 제일 오른쪽에 그려진 고래 형상에는 입의 모양이 또렷하게 그려져 있다. 위턱은 그 폭이 좁으며, 전체적인 입의 구조는 아치형을 이루고 있다. 이렇듯 아치형의 입을 하고 있는 것은 수염고래 가운데서 북방긴수염고래가 유일하다. 게다가 그 가슴지느러미도 타원형처럼 중간 부분이 발달하여 타원형을 이루고 있는데, 가슴지느러미가 이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역시 북방긴수염고래뿐이다.

따라서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이 세 마리의 고래들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형상화한 것이다. 수염고래들은 두세 마리가 무리를 이루고 헤엄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이들은 가슴지느러미나 꼬리지느러미로 수면을 때리면서 서로 간에 위급한 상황이나 감정 전달 등 정보를 교환한다고 한다. 분기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기의 모양, 머리와 등선 그리고 꼬리자루에 이르기까지 몸통의 움직임 등에서 물 위로 떠올라 다시 자맥질하기까지의 순간에 취하는 북방긴수염고래의 생태적 특성을 포착하여 그림과 같이 선사 시대 대곡리 고래잡이와 화가들은 형상화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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