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성주단지 갈기
겨울 성주단지 갈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12.1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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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력 11월에서 1월까지 3개월 동안이 겨울이다. 1년을 15일 간격으로 24등분한 계절을 24절기라 한다. 음력 9월이 되면 밤 기온이 서리가 내릴 정도로 매우 낮아져서 춥다. 이맘때쯤이면 추수가 거의 끝나고 동물들은 일찌감치 겨울잠에 들어간다.

양력 11월, 음력 10월에 입동(立冬)을 맞으면서 땅이 얼고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소설(小雪)이 따라오고 큰 눈이 내리는 음력 11월 대설(大雪)이 다가온다. 추위도 점차 심해지고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인 음력 12월 동지(冬至)에 동지팥죽을 쑤어서 먹고 나면,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봄바람이 불어와 겨울을 날려 보낸다. 요즈음처럼 이상 기온이 밀려오기 전의 계절 감각이다.

음력 시월에는 그동안 애써 거두어들인 햇과일과 햇곡식으로 한 해 동안 아이들이 무병(無病)하도록 도와주신 삼신(三神)할매를 위한 삼신할매쌀단지갈기를 하는 이날은 매우 정성을 모우는 날이기에 대문에 금줄을 쳐서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기도 했었다.

겨울이 오면 한 해 동안 잘 보살펴 주신 조상에게 감사하고 새해에도 무병장수하도록 조상님께 빌기 위해 고사(告祀)도 지내고 마을굿도 했다. 각 가정에선 길흉화복을 담당하는 가장 높은 성주신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묵은 곡식을 햇곡식으로 바꾸어 담는 성주단지갈기와 조상단지갈기를 한다.

북녘 땅 함경도지방에는 성주에게 지내는 제사와 같은 격인 단군에게 제사하는 농공제(農功祭)를 지냈고, 남녘 땅 막내둥이 제주도에선 시월만곡대제(十月萬穀大祭)라 하여 햇곡식으로 마련한 제물을 마련하여 제사를 지냈다.

성주단지는 집을 지킨다는 귀신(家神)인 가신신앙의 성물(聖物)단지다. 가신신앙에선 가택(家宅)의 요소마다 신이 존재하니 다신(多神)이며, 가신에는 성주(城主, 星主, 成造)·조상(祖上)·조왕·삼신·문신(門神)·터주·업·우물신·측(뒷간)신 등이 있다. 농경사회에선 쌀을 단지에 담아 봉안한다. 단지는 다신앙교(多信仰敎)의 성물단지가 된다. 가신은 집안을 보살펴 준다고 믿고 그 신에게 정기적 또는 필요에 따라 의례를 행하며 믿고 받들며, 이를 가리켜 가택신앙이라고도 하며 가정·집안신앙이라고도 한다.

가신신앙의 성물단지가 성주단지 또는 삼신단지로 명칭이 바뀌면서 삼신은 하늘의 신인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인간세상에서 아기의 많고 적음과 있고 없음 그리고 아이의 출산을 주관하는 삼신할머니를 모시는 신앙이 되었다.

천주쟁이의 손으로 만들어 내는 성주단지는 그들 신앙의 결정체였다. 천주쟁이는 그들이 구운 단지를 십자가 진 예수처럼 사모하며 힘겨운 신앙심으로 뜨거운 불속에서 숨죽이며 건져 낸다. 불덩이 같은 단지를 머리에 이고 150여 년간 산천을 해매면서 단지와 곡식을 바꾸어 목숨을 연명했다.

천주가 도왔는지, 단지장사의 수입이 꽤 짭짤했다고 한다. 산기슭에서 약간의 수고만 들이면 원자재인 진흙(태토)은 지천으로 널려있고 골짜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은 가두면 웅덩이니 물 걱정 있을 턱이 없으며 땔감은 집 가까이에서 자라고 있으니 관심만 두면 단지는 주저 없이 만들 수 있었다. 단지는 그들의 성물단지가 아니었을까?

성주단지나 조상단지라고 하면 옛날 풍습인양 치부하기도 하나 불과 100여 년 전에는 이 그릇 외에는 더 만만한 그릇이 없었다. 조선시대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箕山 金俊根)의 풍속화에 실린 단지장수 부부의 소박한 모습에서 엿볼 수 있듯이 지게에 가득 실린 단지가 우리들의 그릇이었다.

요사이는 가정에서 조차 단지 보기가 쉽지 않으니 성주단지가 있었다는 것을 알기나 할런지, 부모님의 노력으로 김치 냉장고에 가득한 김장 김치로 봄까지의 반찬이 해결되는 추수동장(秋收冬藏)을 마치고 나니 몰아치는 한 겨울의 칼바람조차도 참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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