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그림 새긴 연모에 대한 연구
바위그림 새긴 연모에 대한 연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12.04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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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각화 바위그림은 어떤 연모로 새겼을까?

천전리각석이 있는 곳에서 가까운 언양지역 대곡리 붓돌배기의 토산석(土産石)인 부싯돌(flint)이 그 연모였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워 정리해 본다.

일반적으로 쳐트(chert 석기시대의 인간에게 도구와 무기인 화살촉의 주원료)에 포함된 부싯돌은 수석(燧石)으로 차돌 또는 규암(硅岩)의 일종이다. 이 돌은 구석기시대에 주로 사용한 석기 재료이며 덩어리로 된 큰 돌의 일부를 때려서 잘라 내거나 작은 돌의 둘레를 때려서 껍질을 벗기듯이 떼어 내서 만들어 사용하였다. 특히 아프리카?유럽의 구석기시대에 많았기 때문에 가장 적당한 석기재료로써 오랫동안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부싯돌은 그 질이 단단하여 풍화에도 잘 견디어 내고 떼어내기도 비교적 쉬웠으며, 잘라낸 파편이 면도날처럼 날카로웠다. 그 돌이 발견되는 장소도 하천 언덕이나 바닥 그리고 해안이나 해안절벽에 노출되어 있어 많이 사용되었다.

부싯돌로 만든 대표적인 석기는 손잡이도끼인데, 일반적으로 손잡이 부분은 복숭 모양이다. 한쪽 끝은 덜 뾰족하며, 밑 부분은 둥글면서 약간 두께가 있고, 측면 가장자리 부분은 날이 서도록 날카로운 형태로 만들었다. 인류는 이것을 나무를 베거나 땅을 파는 도구로 이용했다.

요꼬하마 유지가 글을 짓고 장석호가 옮긴 ‘선사예술의 기행’에 의하면 대서양 피레네산맥 아래 프랑스 영토에 속한 르부르프 동굴군에는 몇 백 개의 선각화가 남겨져 있다. 선사예술의 보고로 알려진 이 선각화(線刻畵)는 주거층에서 발견되었다. 앙렌 동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이 주거층은 두개인데 아래층에서 많은 동물뼈와 부싯돌 파편이 겹겹이 쌓여 발 디딜 틈마저 없을 정도이다. 부싯돌 파편은 이곳이 돌을 다듬어 석기를 만들었던 흔적임을 말해 준다.

석기를 통해서 살펴보면 ‘마들렌문화 Ⅳ기’(후기구석기 18,000~12,000년전)에 해당되며, 지금부터 약 1만 4천년 전의 ‘도리아스 Ⅰ’이라고 불리는 한냉기에 해당된다. 여기에서 사용된 석기는 부싯돌이며 불을 피우기 위해서 사용되었으며, 또한 바위그림을 새길 때에도 사용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동굴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뗀석기 같은 하얀 차돌로 바위그림을 그렸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하얀차돌’이 예사롭지 않다. 이 돌 역시 부싯돌로 쓰였을 규암일 것 같은 짐작이 든다. 왜냐하면 동굴 안에서 흰 차돌을 지나치듯이 보았다고 했는데 하얀 차돌로 보일 수 있는 것이라면 백수정·사암·규암 등도 포함 될 수 있으며, 하얀 돌무더기의 돌은 부싯돌로 사용한 규암일 것이다. 그리고 선사인들이 단단한 부싯돌로 사용했을 규암이나 석영류를 이용하여 바위그림의 새기개로 두루 사용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반구대 주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하얀 규암을 내 보이니 주저 없이 그들이 근래까지 사용하였던 부싯돌이다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천전리계곡 셰일의 판상(板狀) 층에 노출된 규암을 볼 수 있다.

박구병의 한반도연해포경사에서도 바위그림의 새기개로서 부싯돌이 사용된 기록이 있다. 포경국으로서 유명한 북유럽의 노르웨이에서는 석기시대에 고래를 포획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바위그림이 있다. 고래가 주제인 듯한 바위그림은 세계 최고의 것으로 인정되고 있는 뢰되이섬의 동물 바위그림으로 기원전 약 2,200년에 끝이 날카로운 부싯돌로 판 것으로 보고 있다.

이상의 예를 바탕 삼아 울주 바위그림의 새기개의 돌감은 부싯돌이라고 짐작된다. 반구대 주변 진티(진현)마을 동쪽 앞산의 정상일대에서 부싯돌이 많이 난다고 하여 이 지역을 붓돌배기라고 부른다. 최근까지도 울산지방에선 규암을 가지고 부싯돌로 사용하였고, 이러한 돌은 그리 귀하지는 않지만 특별하게 관리한 것 중 하나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언양의 진티마을 근처에서 생활하였던 바위그림사람들은 새기개 돌감으로 주저 없이 보다 단단하고 좋은 돌인 부싯돌을 선택하지 않았을까라는 가능성의 일각을 내 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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