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 염원 절대자에 傅하는 지도자의 간절한 모습
부족 염원 절대자에 傅하는 지도자의 간절한 모습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11.2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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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각화 맨 위쪽 가장 두드러진 자리에 위치
‘성기·짧은꼬리 있는 남성’기정사실화는 오류
동물가죽 무복 입고 기도하는 지도자 형상화
대 곡리 암각화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흥미로운 형상이 하나 그려져 있다. 그것은 두 손을 모으고 또 무릎을 약간 구부린 사람 형상이다. 배꼽 부분이 돌기되어 있고, 엉덩이 부분도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다. 다리를 적당히 벌리고 있고, 두 손을 모아 마치 합장을 하듯 한 이 흥미로운 형상을 두고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주로 배꼽 부분의 돌기에 주목하였다. 대부분 연구자들은 배꼽 부분의 돌기를 남성의 생식기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 형상을 두고 그간에 제기된 연구자들의 형태 해석 내용을 소개하면, ‘전면에는 거대한 성기가 있고, 엉덩이에는 꼬리가 달렸다’는 견해가 지배적인 시각이었다. 이 형상을 두고 벌인 연구자들의 형태 해석 가운데서 특별히 주목을 끌만한 색다른 주장은 없었다.

또한 이 형상을 두고 제기된 수식어들은 초기의 연구자들이 이 형상을 어떻게 인식하였는지의 일단을 살피게 해 준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성기가 있고 짧은 꼬리가 있는 인물 암각’, ‘돌출한 남근을 보이고 있고, 몸 뒤로 꼬리(또는 혹)를 달고 있다’는 등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서 배꼽 부분의 돌기를 ‘거대한 남근’, ‘앞으로 뻗은 성기’, ‘성기 과장’, ‘성기를 내밀고 있는 사람’ 등과 같이 남성 생식기로 인식하였으며, 논의를 진전시켜 ‘알몸의 사나이가 남성 상징을 돌기시킨 채 서 있다’라거나, ‘양 가랑이 사이에 남근을 잔뜩 발기시켜 놓은 모습’이라는 등 그것이 남성 생식기임을 기정사실화 하였다.

또한, 연구자들은 이 형상이 취하고 있는 모습을 두고는 ‘춤을 추는 사람’이나 ‘기도하는 사람’ 그리고 ‘춤을 추면서 기도하는 사람’ 등으로 보았다. 이렇듯 그동안의 연구자들은 이 형상이 ‘발가벗고 손을 들어 춤을 추는 사람’을 나타낸 것이라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인식을 하였던 것이다.

연구자 사이에는 이 형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집단의 소속원인가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상이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는 사냥과 어로집단의 대표적인 신상이고, 다른 하나는 동물의 주인이라는 시각이며, 나머지 하나는 주술사를 형상화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우선, 사냥과 어로 집단의 대표적 신상으로 보는 시각은 고래를 비롯한 바다동물을 불러 모으거나 그것의 출현을 관찰하는 사람 또는 고래 사냥꾼의 우두머리, 고래잡이를 주도하는 대장으로 제사장이자 부족장일 것이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한편, ‘동물의 주인’이라고 보는 시각은 이 형상을 알몸의 남성 상징 숭앙과 결부시키면서 죽은 고래에게는 재생을, 살아있는 배부른 동물들에게는 새 생명의 탄생을 보장할 수 있는 주술적 성행위를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고 하면서, 짐승들의 ‘몸 주’이자 최초의 무당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주술사로 보는 시각은 이 형상을 ‘의식의 춤을 추는 모습’이라거나 ‘춤추는 모습에 성기를 과장한 인물’ 그리고 ‘성기를 드러내고 주술적인 춤을 추는 사람’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하고, 이는 ‘최고의 존재나 미지의 공포 또는 자연력에 대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주술사’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았다. 이 형상을 주목하였던 연구자들은 한결같이 벌거벗고 풍작하는 풍습이나 그것을 형상화한 청동이기 또는 남성 생식기가 과장된 조각상 등을 사례로 들면서 성기노출을 기정사실화하였다.

이 렇듯, 이 형상의 외양을 두고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성기를 노출시키고 있다는 데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 형상에서 배꼽 부분의 돌기가 남성 생식기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면, 결과적으로 선사 시대의 화가는 알몸의 사람을 형상화한 셈이다. 그럴 경우 등선(背線)에서 다리로 이어지는 중간, 즉 엉덩이 부분의 돌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그것을 꼬리라고 해야 하는가? 만약에 이 형상이 알몸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에는 사람들에게 꼬리가 달려있었다는 말이 성립된다.

그뿐만 아니라 선사 시대의 사람들이 의례를 거행할 때 옷을 벗었다는 이야기도 성립된다. 그런데 유라시아 전 지역에서 샤먼은 특수한 의복을 입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많이 있다. 우선 그 대표적인 예로는 비트센이 남긴 그림이 될 것이다. 그 밖의 많은 오지의 소수 부족 샤먼들의 무복은 정성스럽게 취급되었으며, 또 의례를 거행하는 특별한 시간에만 입었다. 거란 족 샤먼 ‘카카’는 돼지가죽으로 만든 무복을 입고 의례를 거행하였는데, 그의 아내가 그 무복을 감추자 더 이상 의례를 거행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일화는 무복의 중요성을 전해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그런데 이 형상에서 배선과 다리로 이어지는 중간 부분의 돌기는 위치상으로는 배꼽 부위에 해당한다. 또한 선사 시대의 예술가가 남성의 생식기를 표현하고자 하였다면, 그것을 왜 다리와 다리 사이에 그리지 않았을까? 대곡리 암각화 정도의 그림을 남긴 화가의 솜씨라고 한다면, 등선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윤곽선 및 배와 아랫도리 사이의 윤곽선 등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형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농경문 청동기 속의 사람 형상이나 토우 속의 생식기 등을 놓고 볼 때도 이 형상의 생식기 표현은 부자연스러운 면이 많다.

그 러므로 이 형상이 남성의 알몸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보았던 기존의 시각들은 재고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 형상은 나체의 남성을 그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형상은 특수한 무복, 카프탄과 같은 특별한 옷을 입은 샤먼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형상은 이제껏 살펴보았던 선사 및 고대 샤먼의 전형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이브리드 형상의 변형이다. 즉, 동물가죽으로 만든 무복을 입고 엑스터시 상태에 든 샤먼을 형상화한 것이다.

구석기 시대 레 트루아 플레르 동굴 속의 샤먼이 그러했듯이, 18세기 초두에 비트센이 목격하고 남겨놓은 그림을 통해서 살필 수 있었듯이, 앙가라 강변의 ‘베르흐냐야 부레트’나 키르기스스탄의 ‘사이말루 타쉬’ 그리고 남부시베리아 하카시아의 ‘볼쇼이 바야르’ 암각화 유적지에 그려진 샤먼 형상이 그랬듯이 이 형상도 역시 동물의 가죽으로 된 무복을 입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적당히 발을 벌리고 또 무릎을 구부렸으며, 두 손을 모아서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 즉 샤먼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는 이 그림을 남긴 제작 집단의 샤먼이었으며, 그가 속한 사회 구성원들의 안녕과 풍요로운 삶 그리고 온전한 평화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헌신하여 엑스터시 상태에 돌입하였으며,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면서 영계의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부족의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소망과 부족 전체의 염원을 절대자에게 전하는 한 편, 병든 사람을 치료하고 또 부족과 그들의 삶에 위해를 가하려는 모든 사악한 존재들을 퇴치하기 위하여 전심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주어진 막중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그는 대대로 전해 오던 방식대로 정성스럽게 의관을 정비하고, 머리를 숙이고 또 무릎을 구부린 채 간절히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고 있다. 누구 한 사람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어느 누구도 소외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고 또 부족의 모든 성원이 행복한 삶을 이어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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