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어선 시대 임박 국가적 지원·공론화 필요”
“전기어선 시대 임박 국가적 지원·공론화 필요”
  • 정인준 기자
  • 승인 2011.11.17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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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전기어선 완도→제주 시험운항 성공
상용화 땐 영세어민 유류비 절감 큰 도움 기대
지난달 13일 오후 6시 제주 도두항에 지금까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소형 어선 한 척이 들어왔다. 어선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엔진소리도 없이 조용히 물살을 가르며 스스르 미끄러지듯 나타났다. 세계 최초 전기(충전식 리듐인산철 배터리) 어선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이 배는 이날 전남 완도 화룡포에서 오전 6시에 출발해 12시간 동안 120㎞의 거친 파도를 헤쳐 왔다. 평균속도 5.6노트(10.37㎞/h), 최고 속력 12노트(22.22㎞/h), 무게는 3t이다. 바다를 아는 사람들은 3t급 소형 어선이 남해바다를 건넜다는 것에 대해 “기적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3t급 어선은 가까운 바다 어업용이기 때문에 망망대해에선 그야말로 일엽편주라는 것. 게다가 검증이 안 된 2차전지 전기어선이라니, 무모한 도전이었다고 말한다.

◇일엽편주, 기적같은 120㎞ 항해

하지만 이 전기어선 개발의 산파역을 맡았던 울산대학교 조선해양공학부 박노식 교수는 “무모한 걸 알았지만 (성공에)자신 있었다”고 말했다. 기존 어선 보다 안정성이 높은 새로운 선형설계와 최장 200㎞까지 갈 수 있는 배터리팩 성능 등을 실험과 근해 운항을 통해 확보했기 때문에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극한 조건의 시험운항이 필요했다는 것. 그 결과 이 배는 기적 같은 성능을 보이며 당당히 그 존재감을 세상에 알렸다. 박노식 교수를 만나 소형 전기어선 개발 배경과 과정, 그리고 앞으로 남은 과제 등을 들었다.

박 교수는 “우리는(한국) 소형 전기어선이 꼭 필요해 개발을 했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세계 최초라는 게 별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나라는 (소형 전기어선)개발에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을 것”이라며 “세계 각국이 전기자동차 상용화 경쟁을 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고 밝혔다.

◇WTO 대응 절박감이 개발 배경

‘꼭 필요하다’는 건 절박하다는 것이다. 소형 전기어선 개발의 절박함은 WTO체제에서 찾을 수 있다. 2007년부터 WTO는 우리 정부가 어민들을 지원하는 면세유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1ℓ당 1천원씩 지원하는 면세유를 중지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FTA를 체결하며 WTO 가입을 늦추고 있지만 결국 WTO에 가입을 할 것이고 이땐 면세유 지원을 중단해야만 한다. 즉 영세 어민들은 고유가 시대에 고사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기 전 이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착안한 박 교수는 2008년말 농림식품부 국책과제로 선정받아 ‘전기 추진 소형 어선’개발에 들어갔다. 3년간 11억원(국비 8억원, 민자 3억원)이 투입됐다. 박 교수가 이론과 계산 등을 총괄했고, 태우해양기술(대표 김영수)이 선박설계를, G&W테크놀러지(대표 김상욱)가 배터리 부분을 담당했다. 박 교수와 이 두 회사의 대표는 학연과 사제지연으로 맺어져 탄탄한 기술력에 팀워크 시너지 효과를 나타냈다. 소형어선이 120㎞의 거친 파도를 헤치고 나갈 수 있었던 데는 이런 기술력과 팀워크가 뒷받침 됐기에 가능했다.

◇“어민들이 매우 좋아 하더라”

전기어선은 1t급과 3t급 두 종류로 개발됐다. 1t급은 낙지잡이 어선으로 항속거리 10㎞, 3t급은 항속거리 200㎞ 성능을 확보했다. 전기어선의 핵심이랄 수 있는 배터리는 리듐인산철 배터리로 가벼우면서 효율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배터리는 완속으로 풀충전 하더라도 4시간 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성능이 좋다.

박 교수는 “전기어선을 개발해 놓고 보니 어민들이 더 좋아하더라”며 “첫째는 어민들은 대부분 엔진소리에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데 우선 조용하니 좋고 둘째, 현 3t급 어선이 10만㎞를 운항할 때 유류비가 4천만원 정도 드는데 전기어선은 이의 10분의 1 수준인 400만원이면 가능하다니 모두들 놀라워 했다”고 전했다. 현재 전기어선은 1t급 2척, 3t급 2척 등 4척이 제작돼 전남 목포 쪽에서 어민들이 운용하며 데이터 확보를 위한 실증사업을 하고 있다.

박 교수는 다만 “고가의 전기어선 값이 흠”이라고 말했다. 3t급 전기어선의 가격은 1억원 정도. 현 기존 어선의 값은 6천만원으로 4천만원이 비싸다. 하지만 정부가 면세유 지원금을 전기어선 지원금으로 돌려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현재 정부는 전기차 구입비용을 3천만원 정도 지원할 계획인데 1천500만원은 정부가, 1천500만원은 지자체로 배분할 계획이다. 박 교수는 “이러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3t급(6만척) 이하 어선은 약 8만척(1t급 2만척). 향후 면세유 지원 중단을 대비해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전기어선으로 전환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

◇국내기업·인도네시아도 관심 보여

이와 함께 박 교수는 “전기어선의 선박등록 등 법적 제도화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행 선박은 엔진선박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전기어선이 상용화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 또 “기술표준을 정하는 등 전기어선 시대에 대한 공론화도 필요하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는 시작초기의 어지러움으로 기술은 농림수산식품부가, 선박허가는 국토해양부가, 그린산업R&D 지원은 지식경제부가 큰 몫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부서간 협조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렇더라도 박 교수는 “전기어선의 상용화가 임박해 지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이 선박의 개발은 정부의 우수성과 사례로 소개되면서 국토해양부와 지식경제부의 관심을 받고 있다. 또 전기어선 개발이 알려지면서 국내기업의 문의와 인도네시아에서도 도입을 타진해 오고 있다. 세계 각국이 전기차 개발에 각축을 벌이고 있을 때 조선강국 한국에서 소형 전기어선 시대가 조용히 열리고 있는 것이다. 글=정인준·사진=김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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