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전 퉁구스족 기록화엔 샤먼의 원상 고스란히
300년전 퉁구스족 기록화엔 샤먼의 원상 고스란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10.30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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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늑대 등 재구성+북·북채 든 하이브리드 형상
레 트로아 플레르 동굴속 古形과 기본적 외형 일치
구석기-18세기 사이 단절된 문화원형 동질성 증명
비 트센(Witsen, N. C)이 1700년대 초에 시베리아의 여행 과정에서 퉁구스족 샤먼의 의례 광경을 직접 목격하고 남긴 한 장의 기록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것은 퉁구스족의 이동식 천막집 ‘춤’들이 세워진 마을 한쪽에서 부족의 샤먼이 굿을 하고 있는 장면을 그려놓은 것이다. 군데군데 나무들이 서 있는 숲 가운데는 사냥꾼들의 집 ‘춤’들이 모여 있으며, 그 입구는 모두 앞을 향하도록 나 있다. 집과 집들 사이에는 사람들이 서 있거나 걷는 모습들도 보인다. 또한 마을의 빈 터에는 다섯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은 허리를 구부리고 있는 다른 사람을 부축하고 있으며, 막대를 들었거나 어깨에 활을 멘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그를 둘러싸고 있다.

이 그림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화면의 중간 왼쪽에 그려진 샤먼의 모습이다. 놀랍게도 샤먼의 머리에는 두 개의 사슴뿔이 장식되어 있으며, 또 동물의 귀가 달린 가죽옷을 입고 있다. 북채를 쥐고 있는 오른손은 그 생김새로 보아 곰의 앞발이며, 왼손에는 큰 북이 들려 있다. 그는 적당히 다리를 벌리고 있고 또 무릎은 약간 구부린 모습이다. 이로써 그는 곰의 가죽으로 만든 무복을 입었으며, 머리에는 사슴뿔을 장식하였음도 알 수 있다. 비트센이 남긴 이 한 장의 그림으로써 18세기 초엽의 퉁구스 족 사냥꾼들의 마을과 사람들의 생활 그리고 샤먼 등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에 관하여 귀중한 정보를 얻게 된 것이다.

이 그림에서 중심 주제는 물론 무복을 입고 또 북을 두드리며 의례를 거행하는 샤먼이다. 마을의 빈 터에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은 아마도 환자를 돌보거나 치유하는 과정 중의 한 장면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왼쪽 끝에 있는 춤 속에는 두 명의 사람 그림자가 보이는데, 이들도 샤먼의 의례와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로써 샤먼이 병자를 치료하는 등 마을 사람들을 위하여 굿을 하고 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이렇듯, 비트센이 시베리아 여행 과정에서 남긴 이 한 점의 기록화는 지금으로부터 300 년 전의 퉁구스 족 샤먼의 의례 광경을 살피는데 더 없이 귀중한 도상자료이다.

물 론, 우리들은 이 한 장의 그림 속에서 의례 장면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흥미로운 하이브리드 형상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화면의 전면에 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는 샤먼 형상이다. 누구라도 이 그림을 바라보는 순간, 그는 한동안 이 샤먼 형상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모습과 그가 취하고 있는 모습과 동작에서 잊고 있었던 샤먼의 원형(archetype)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형상 가운데서 가장 반문명적이고 동시에 친자연적인 오지 수렵 유목민 부족의 샤먼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샤먼 형상 가운데서 북과 북채를 빼면, 모든 것이 자연에서 획득한 것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이 형상은 이미 살펴본 바 있는 ‘레 트로아 플레르’ 동굴 속의 하이브리드 형상과 기본적으로 그 외형이 동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두 형상은 다 같이 사슴의 뿔, 늑대의 귀, 곰의 앞발 등 종이 서로 다른 동물의 부분들을 재구성하여 완성한 것이다. 또한 두 형상에서 각각의 사람들은 모두 그 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있는 점도 서로 같다. 양자 사이에서 차이가 있다면, ‘레 트로아 플레르’ 동굴 속의 그것은 앞발을 서로 모으고 있고, 비트센이 남긴 샤먼 형상은 북과 북채를 든 모습이다.

비트센이 남긴 퉁구스 족의 샤먼 형상은 그동안 ‘뿔이 있는 신’, ‘부족의 지도자’, ‘동물 가장을 한 사냥꾼’ 등 여러 가지로 해석되었던 ‘레 트로아 플레르’ 동굴 속의 하이브리드 형상, 즉 순록의 뿔과 늑대의 귀, 부엉이 눈, 말의 몸통과 꼬리, 곰의 앞발 그리고 사람의 다리를 한 반수반인(半獸半人)상이 샤먼의 가장 오래된 모습이었음을 확인하게 해 주었다. 이 형상을 두고 그동안 제기된 각각의 주장들이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들은 비트센이 의례 과정에서 직접 목격하고 남긴 샤먼 형상만큼 분명하고도 또 생생한 증거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두 개의 형상을 통해서 각 종족 집단의 원형 심리도 동시에 살펴낼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사슴의 뿔은 끊임없는 탈각의 반복을 통해서 재생. 즉 불사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되었다. 늑대 등 동물의 귀는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소리가 나는 곳과 거리를 파악해 낸다. 부엉이의 눈은 밝은 대낮보다는 어두움 속에서 사물을 더욱 잘 분간할 수 있다. 곰의 앞발은 맹수들도 두려워할 만큼의 가공할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특별한 힘을 갖추고 있는 세부들을 합성시켜서 재창출한 이와 같은 하이브리드 형상은 죽지 않으며 어둠 속에서도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존재의 구현인 셈이다.

이 렇듯 하이브리드 형상을 통해서 석기시대부터 변함없이 이어져 오던 완벽한 존재, 즉, 이상적인 존재에 대한 사람들의 사유의 일단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멀리는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은 그들과 공존하였던 동물 가운데서 가장 큰 능력과 센 힘을 갖는 동물들과 동시에 그 동물 중에서도 특별한 기능이 있는 부위에 대하여 구체적인 분류를 하였으며, 그 부분들을 서로 합성시킬 때 완벽한 존재자가 될 것이라는 인식을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을 구체적인 모습으로 구현한 것이 바로 하이브리드 형상이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사유를 밑바탕으로 하여 창출된 다양한 하이브리드 변형들을 각종 조형 예술 속에서 살필 수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여러 가지 모습으로 표현된 반수반인은 인간이 갖지 못한 초능력을 겸비한 특수한 존재에 대한 도상적인 표현인 것이다. 그의 신체 가운데 여러 부분으로 체화된 동물적 속성들은 그에게 부과된 임무를 수행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능력을 그에게 제공해 주는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그는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하여금 신과 인간 또는 타계와 인간 사이를 자유로이 왕래하면서 양계를 서로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 리들은 비트센이 남긴 한 장의 그림 가운데서 뜻밖에도 또 하나의 하이브리드 형상과 만날 수 있었으며, 그것은 그동안 단절되었던 선사 시대 사람들의 사유의 일단을 살피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현대들이 향유하고 있는 문화의 원형이 위로는 석기시대에까지 잇닿아 있음을 증명해 주었다.

이렇듯, 앞에서 살펴본 두 개의 하이브리드 형상 사이에는 프랑스와 시베리아 그리고 구석기 시대와 18세기라고 하는 좁힐 수 없는 시공간의 차이가 엄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서 살펴지는 형태상의 뚜렷한 동질성을 통해서 인류의 기층 심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샤먼의 ‘원상’, 즉 주술사의 오래된 모습이 어떠하였는지를 재고하게 하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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