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우편물…운송·분류 또 운송…
쏟아지는 우편물…운송·분류 또 운송…
  • 권승혁 기자
  • 승인 2007.12.20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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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울산우체국 세 명의 집배원 이야기]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은 ‘얼었다 녹았다’ 거칠기 짝이 없다. 남색 점퍼는 이미 찬바람에 단련돼 있다. 눈, 비에 두들겨지는 일이 어디 하루 이틀일까 마는.
요즘 같은 연말이면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15시간동안 우편물과 씨름을 한다. 누가 묻기 전엔 굳이 실감나지 않는 하루다. 매일 2천여통의 우편물을 이륜차 뒤에 가득 얹는다. ‘녀석’들의 몸무게는 45~50kg. “해마다 연말이면 ‘늘 있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에겐 ‘늘 안타까운 일’이다.
한 두통의 우편물을 받는 이들의 마음은 편하다. 하루 수 천 통을 헤아려달라는 건 욕심인지.
“이 때쯤 오시면 안돼요”라며 시간을 마음대로 정해버리는 사람들. 혹시 집배원을 가장한 범죄자는 아닌지 의심도 받는다.
20일 남울산우체국 민경주(46),허문길(34),김영경(37) 세 명의 집배원에게 짧은 시간이나마 이들의 이야기를 부탁했다.

▲ 우편량이 급증한 연말이라 주말도 없이 근무 하고 있는 남울산 우체국 집배원들이 우편물 배송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고 있다. (왼쪽에서부터허문길집배원, 김영경집배원,민경주집배원) / 김미선 기자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15시간 씨름
무게만도 45~50kg…범죄자 의심할땐 ‘곤혹’

최근 울산지역의 한 달 우편물량은 울산우체국, 동울산우체국, 남울산우체국을 합해 약 1천여만통. 이중 남울산우체국에만 지난 11월말부터 한 달 동안 380여 만 통(등기 포함)의 우편물이 쏟아졌다. 이중 45만 여 통이 선거관련 홍보물이었다. 두 번에 걸쳐 접수된 선거우편물은 116명의 집배원들에 의해 이틀 안에 배달이 완료됐다. (일반 우편물의 평균 배달기간은 4일) 정신없던 선거우편물 특별소통기간(11.21~12.19)은 19일로 끝났다.
집배원들은 아직도 바쁜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연말 카드며 달력이며 각종 신용회사의 우편물이 쏟아지고 있다. 운송하고 분류하고 또 운송하고 분류하고. 11월말부터 한 달이 지나도록 반복되는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뭐 괜찮습니다”

아침마다 늘어난 우편물을 오토바이에 실을 때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김영경(37)씨는 겸연쩍게 웃으며 한마디 던진다. 김 씨는 집배원 나이로 “만 5년 반 된 신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야! 괜찮기는” 대뜸 옆에 앉은 선배 허문길(34)씨가 핀잔을 주며 말을 자른다. 허 씨의 집배원 나이는 ‘만 9살’. 만 17살 고참인 민경주(46)씨가 흰색 목장갑을 천천히 벗으며 자리에 앉는다. 일을 끝내고 우체국으로 들어설 때마다 안경엔 뽀얀 김이 서려있을 것 같은 민씨. 얼굴에는 알듯 모를 듯 묵묵한 미소가 담겨있다. 다들 힘들지만 내색하지 않기는 똑같다. 그저 괜찮기만 할 린 없을 터.
“얼마 전 우편원 모자를 쓰고 강도짓을 한 범인이 잡혔다는 뉴스에 한숨이 저절로 나왔어요.”민 씨가 말을 꺼내자 “안 그래도 사람들한테 다가가기가 얼마나 힘든데... 목마르다고 물 한잔주고 하던 얘기는 다 옛 말이죠” 허 씨가 거든다.
“사람들이 편지를 받으면 행복해야 배달하는 우리도 기분이 좋은데 신용회사에서 날라 온 청구서라든지, 뭐 돈과 관련된 것들이 워낙 많으니 받는 사람들도 스트레스 받나 봐요. 더구나 우편원 모자까지 쓰고 범죄를 저지르니...” 우편물을 전해줄때면 시민들의 찌푸린 얼굴만 보게 된다고. “더욱 다가가기 힘들게 됐어요” 허 씨의 잘려진 말 한 토막이 점점 작아진다.
얼마 전엔 동료의 사고도 있었다.
지난 14일 젊은 동료 집배원 한 명이 우편물을 중간보관소에 보관하러가던 길에 사고를 당했다. 돗질로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던 승용차가 뒤를 따르던 동료의 오토바이를 보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사고로 동료는 다리뼈에 금이 가는 전치6주의 큰 부상을 입었다. 아무리 조심해도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다 보니 사고가 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
바쁘다 보니 문병도 제대로 가지 못한다. 김 씨도, 허 씨도, 민 씨도 동료가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뒤편에서 우편물을 만지는 손은 다 같은 마음이다.
선거우편물 한 통의 무게는 대략 230g. “길이 좋은 곳으로 나갈 때는 우편물을... 한... 80kg? 근데 대부분 45~50kg정도 실고 나가죠. 길 상태가 좋지 않은 곳이 많으니까요. 바쁘다고 욕심 부리다간 큰일 나죠. 곧바로 사고와 일직선상에 놓이는 겁니다” 허 씨의 말에 동료들도 같은 생각이다. 6년차도 10년차도 18년차도 지킬 건 지켜야한다는 것.

“우편함은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참 진짜 하고싶은 말이 있어요” 불쑥 튀어나온 허씨의 말.
“소중한 우편물이 들어있어야 할 자리에 온통 쓰레기뿐입니다. 각종 업소들의 전단지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고 휴지, 담배꽁초 등으로 편지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요.” 민 씨의 말이 심각하다. 꼭 살림집을 뺏긴 듯 한 사람같다.
“그렇다고 우편함 위에 얹어두고 오자니 마음이 그렇고...“ 마음 약한 우편원이다. 우편함만 깨끗해도 일할 맛이 난다고.
주택과 아파트, 원룸 등 곳곳에서 이미 쓰레기함이 돼버린 우편함.
“우편함 크기도 제각각이에요. 우편함이 너무 작아 어쩔 수 없이
우편물을 조금씩 구겨 넣어둘 때도 있죠. 구길 때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는 우리도 기분이 안 좋은데 받아보는 사람은 얼마나 싫겠어요.”
민 씨도 허 씨도 우편함 얘기가 나오자 할 말이 많다. 이들은 푯말까지 제작해 집집마다 돌리려 했다고 한다. ‘우편함은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라고.
“(기자)힘들 때 혹시 서로 힘내라고 해 주는 말이 있나요”
“보람되게“ “생활하자” “아침에 모두 한 마디씩 외치고 갑니다”신참 김 씨가 말한다.

/ 권승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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