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 아메리카나
팍스 아메리카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4.2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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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아메리카나’의 팍스는 ‘여우’(FOX)가 아니라 ‘평화’(PAX)를 뜻하는 라틴어다. 발음이 영어의 ‘피스’(PEACE : 평화)와 비슷한 점을 참고하면 좋겠다.

이 용어는 로마제국이 피 정복민족을 통치하던 시절을 ‘팍스 로마나’라고 부른 데서부터 시작됐다. 로마가 강대국이었을 때 주변 국가들이 감히 건드릴 수 없었기 때문에 국내는 평화로울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19세기 들어 영국의 식민지 통치를 ‘팍스 브리태니카’라고 부르면서 강대국 지배라는 부정적 의미로 변질됐고 2차 대전 후에는 정치, 군사, 경제 분야에서 세계 각국에 영향력을 미치는 미국을 ‘팍스 아메리카나’라고 부르게 됐다.

그러나 1970년대 초부터 시작된 국제 정치의 다변화, 민족의식의 대두 등으로 미국은 ‘다자 협력체제’로 정책을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방미한 이명박 대통령을 부시 미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로 초대해 예우를 갖추는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면 된다.

지금부터 1백여년 전인 1905년 한 해는 우리 민족의 운명을 갈라놓는 비극적 사건들로 점철된 시기였다.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그 해 7월 미국과 맺은 태프트-카쓰라 밀약을 바탕으로 11월 을사보호조약을 강제로 체결시켰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국가의 존망을 눈앞에 둔 대한제국 고종황제는 미국에 구원의 손길을 청했지만 ‘강자는 강자의 편’일 뿐이었다. 1905년 아시아 순방 사절단 속에 끼어 있던 전 육군대장 윌리엄 태프트 전쟁장관에게 미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내린 메모 내용은 이러했다. “한국인 스스로가 나라를 지키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미국이 나서서 도와줘야 할 의무는 없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의 독립을 위해 애쓰는 민족에게만 세계는 도움을 주고 옹호한다는 교훈을 새길 수 있는 부분이다.

첫 기착지인 일본에서 7월 초 일본 외상 카쓰라와 소위 태프트-카쓰라 밀약을 맺고 필리핀, 중국을 거쳐 9월에 한국을 방문한 이 일행에게 고종황제는 극진한 대우를 했다. 7월에 밀약을 맺고 9월에 제물포항에 도착했으니 일행 중 상당수는 이미 사실을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들 아시아 순방단이 길을 나선 것은 사실 당시 대통령 딸 엘리스 시어도어 때문이었다고 한다. 승마를 즐기고 말괄량이로 소문나 있던 엘리스가 유람차 아시아 각국을 방문했는데 일본 천황은 무도회를 열고 중국 서태후는 막대한 양의 선물을 보냈던 것이다.

대한제국을 방문했던 엘리스가 얼마나 분별력이 없었는가는 1905년 당시 감리교 선교사로 한국에서 활동하던 호머 헐버트 박사가 자신이 발간하던 코리안 리뷰(korean review)잡지 기사 일부를 보면 안다 「9월 22일 황제폐하와 점심을 한 후 오후에 동대문 밖에 있는 황후비 무덤을 방문했을 때 엘리스가 왕릉의 석상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 까지 극진한 예우를 갖췄던 대한제국은 엘리스가 떠난 2개월 뒤 11월에 일본이 강제로 체결한 을사보호조약 때문에 허수아비가 되고 만다. 황비의 무덤 주변에 세워 둔 수호 석상 위에 승마장화를 신은 채 ‘아녀자’가 뛰어 오르는 굴욕을 당했지만 ‘나라를 지킬 의지가 없는 민족’을 강대국은 쳐다보지 않았다.

4박 5일간의 방미를 마치고 일본을 거쳐 이명박 대통령이 귀국했다. 개인이든, 국가든 간에 스스로의 힘이 필요함을 절감하는 순간이다. / 정종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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