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라 봐
골라 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10.2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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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라고 말하면 뽀뽀 한 번 해 주지, 좋아, 싫어?”

“어머 싫어!”

어느 걸 고르든지 남자의 의도대로 넘어가게 되어있다. 이걸 보고 당신은 뭘 느끼는가? 남자가 음흉하다고? 원래 남자는 다 음흉하다. 늑대니 도둑이니 흥분하고 손가락질하기 전에 화술의 미묘함을 느껴보라. 인간은 원래 앞에 보이는 물체에 반응하게 되어있다. 이런 심리를 정확히 파악해 놓은 유식한 말이 있으니 이름하여 견물생심(見物生心).

이 기법의 상세한 설명을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필자의 청년시절로 돌아가 소싯적의 연애상황을 회상해보련다. 최면시작, 5, 4, 3, 2…1 자세를 편히 한 상태에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자 이내 그 날의 기억이 난다. 오랜 옛날 무덥던 날이다, 첫 만남의 설렘, 그녀가 너무 예쁘다. 눈, 코, 입술에서 몸매까지, 얼짱, 몸짱에 목소리까지 금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듯한 음성, 한마디로 ‘그녀는 예뻤다!’ 당연히 또 만나고 싶었고 난 간절히 그녀에게 물었다.

“다음 주에 또 만날 수 있어요?”

“글세요, 제가 요즘 바빠서… 그럼.”

“아아니 이럴 수가, 저기요… 그런데…날… 근데… 왜?”

그녀의 거절에 이은 중언부언, 그게 그녀와의 마지막이었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수많은 폭탄밭 속에서 찾아낸 퀸카, 오리무리중 한마리 백조인 그녀가 날 안 만나주다니 도대체 이유가 뭐야? 왜 안만나겠다는 거야? 왜? 수많은 날을 하얗게 지샌 끝에 그 비밀을 알 수 있었으니. 숱한 실패와 좌절 끝에 기적처럼 알게 된 평생의 비법을 전하는 장인의 심정으로 이제 천기를 누설하고자 한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우연히 들른 남대문 시장, 시끌벅적 그야말로 난장이 벌어진 남대문 쪽 초입, 좌판 위에 올라 선 상인 하나가 연신 박수를 쳐대며 ‘골라 골라’를 외치는 게 아닌가? 좋다는 말도 안 하고 사라고 애원한 것도 아닌데 아가씨 아주머니 할머니 등 뭇 여성들이 그 남자가 외치는 대로 고르고 있었다. 헉, 이럴 수가… 고르라고 하니 고르는구나. 그렇다 상대에게 비교되는 상품을 고르라고 하면 고르는 게 인지상정이요 조건반사다. 몸뻬나 브라우스, 치마나 바지, 월남 치마나 마후라 어느 걸 고르든지 그 남자는 돈 번다.

아하 이렇게 쉬운 것을, 그 남자의 방법대로 내 화법을 바꾸어보았다.

“다음 주에 연극 볼래요 영화볼래요.”

너무 신난다. 계속 만들어보았다.

“다음 주에 에버랜드 갈래요 고수부지 갈래요.” 부사, 형용사 관사 조사 감탄사… 살도 붙여보자.

“스키 좋아하신다고 했잖아요. 아 눈(雪)! 가슴이 떨리네요, 이번 주 주말에요 기막힌 추억을 만들 수 있거든요, 얼마전 방송 퀴즈를 맞추어서 이천에 있는 스키장 입장권 두 장을 얻었거든요. 공짜라구요! 새하얀 눈밭, 원색의 연인들, 신나는 음악, 질주 본능… ”

분위기가 달아오르며 그녀가 호기심을 보인다. 바로 이때다. 고민하게 두 가지 상품을 보여주며 스스로 고르게 한다.

“우리요, 낮스키 탈래요 밤스키 탈래요?”

비몽사몽간에 무의식적으로 답이 나온다. 마치 무반동 자동화기처럼.

“밤 스키요.”

“스키와 스노보드 어느 게 더 좋으세요?”

“스노보드는 무서워요.”

키야! 그녀가 어느 걸 선택하든 당신은 성공한 것이다. 주관식 질문을 들으면 답 고르기가 너무 어렵다. 일단 두뇌에게 물어본다. 보수적인 두뇌는 최악의 경우를 찾아낸다.

‘삐비 삐비~ 이 놈을 어떻게 믿나 이 놈을 어떻게 믿나’

그래서 거절을 하게 된다. 그러니 객관식으로 물어라. 그러면 두뇌에 가기 전에 입술만의 동작으로 답이 나온다. 마치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누르면 자동으로 밀크커피가 나오는 것 처럼.

생각해보라. 당신도 주관식 문제에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를. 객관식 그것도 4지선다도 아니고 둘 중 하나라니… 일단 하나 찍고 보는 게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본능적 선택이요 원초적 결단이다.

누군가가 묻는다. 그래 총각 시절에 이 방법으로 효과 많이 봤수? 유감이지만 보안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질문엔 명약관화하게 밝힐 수는 없다. 마누라에게 당할 후환때문에. 그러나 분명한 건 만약 내가 만천하에 사실대로 밝힌다면 그날부터 침대밑에서 혼자 움크리고 자야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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