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 예술에는 인류문명사가 함축돼 있다
조형 예술에는 인류문명사가 함축돼 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10.1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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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한시대 매너·가치관 통합 구현
작품 통해 고대 사회·환경 해석 가능
매너는 행동 방식이나 자세, 태도 또는 버릇이나 몸가짐 등을 이르는 말이다. ‘세련된 매너’라든가 ‘매너가 좋다’라는 등의 용례를 통해서 보듯, 그것은 이미 체화된 사람들의 행동거지를 이르는 말이다. 매너는 짧은 시간 내에 급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형성되는 것이다. 그것은 변덕스럽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인품 또는 품격이다.

어떤 사회이든, 특정한 사회의 구성원들은 나름대로의 가치 척도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사람들의 행동 방식을 규정하는 규범과도 같다. 개인의 가치관 형성에는 그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그것이 지향하는 방향 등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에 따라서 미와 추, 선과 악 등의 차이를 변별하게 하며, 궁극적으로 사회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 기준도 확립되기 때문이다.

조형 예술을 창조하는 화가도 특정한 사회가 창출한 가치 규범 속에서 양육되었으며, 부모를 비롯한 가족이나 그 사회의 기성세대들에 의하여 가치 변별력에 대한 훈련을 받으면서 성장하여 마침내 한 사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사회가 요구하거나 규범화된 틀 또는 전통적으로 전해오는 지각 방식에 따라 사건이나 사물을 지각하고, 그 이면에 내포된 가치와 상징체계를 이해하며,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차원의 선과 악, 미와 추의 개념을 형성해 내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화가는 사회 구성원들의 요구에 따라 조형예술품을 제작하는데, 그가 창출한 조형물 속에는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것을 요구한 동시대 사람들의 가치관도 또한 조형언어로 변환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특정한 조형 예술 속에는 개인 및 사회성원의 매너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특정 제작자 및 제작 집단의 조형 세계는 종교개혁과 같은 가치관 변화, 기술 혁신에 따른 생업의 변화, 새로운 집단의 등장에 의한 정치 체제 변화 등에 의하여 바뀌는 것이다. 이와 같은 동인들에 의해 조형예술의 세계는 주어진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양식을 창출해 내는 것이다.

조형 예술 속에 인류의 문명사가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기 시작한 것은 그다지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불과 150년 전만 해도 알타미라 동굴은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으며, 석기 시대의 선조들을 오랑우탄의 사촌쯤인 미개인으로 이해할 정도였다.

그런 인식으로 인하여 선사 미술을 한 때는 당연하다는 듯이 ‘미개미술(primitive art)’이라는 말로 형용하였던 것이다. 알타미라가 발견될 무렵, 당시의 선사학의 대가들은 사람들이 동굴 깊숙한 곳에 그림을 그려놓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발견한 마르셀레노 드 사우투올라(1831~1888) 후작은 안타깝게도 소위 당대 석학들에 의해 정신병자의 취급을 받았으며, 동시에 그 벽화는 선사 시대의 인류가 남긴 것이 아니라는 위작 시비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과 원숭이의 중간 정도여야 할 석기 시대의 사람들이 너무나도 생동감에 차 있는 들소 등 동물 형상들을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결국 사우투올라 후작은 화병을 앓다가 죽었으며, 그런 후에도 한 동안 진위논쟁은 계속되었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가 재조명된 것은 20세기 초의 일이었으며, 그 계기는 프랑스에서 네 개의 동굴 벽화들이 잇달아 발견되면서부터 였다. 그러나 선사미술의 진위논쟁을 종식시킨 결정적인 단서는 매머드의 이빨에 그려진 매머드 형상이었다. 그것은 E.라르테에 의해서 마드렌느 유적에서 발견되었는데, 그것이 선사 미술로 공인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매머드를 직접 본 사람만이 그 이빨을 입수할 수 있었을 것이고, 또 그것을 아는 사람만이 그러한 형상을 그릴 수 있었다는 논리 때문이었다. 더욱이 매머드는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에 이미 멸절한 동물이기도 하였다.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4세기 사이의 스키타이 시대에 조영된 카자흐스탄 알타이의 쉴리크타 무덤에서는 독수리 모양의 브로치가 발견되었다. 투각의 황금으로 만든 브로치인데, 눈과 부리 그리고 발에는 옥이 상감되었으며, 고개를 뒤로 돌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렇듯 스키타이 시대에 제작된 조형물 중에는 고개를 뒤로 젖혔거나 앞뒤다리가 서로 포개지도록 구부린 특이한 자세의 동물 형상들이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카자흐스탄의 제트이수 지역에 있는 에쉬키올메스 암각화 유적지 가운데는 고개를 뒤로 돌린 독수리 형상들과 함께 앞뒤다리가 서로 포개어진 산양과 사슴 형상들도 같이 그려져 있다.

몽골을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에서는 소위 ‘사슴 돌’이 세워져 있는데, 그것은 사슴 형상을 비롯하여 동그라미, 칼, 활, 집 등이 새겨져 있는 돌기둥이다. 이 돌기둥이 ‘사슴돌’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것의 중간 부분에 여러 마리의 사슴들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슴 형상은 코스트롬스키 고분에서 출토된 황금패식 속 사슴 형상과 같은 양식이다.

남부 시베리아의 하카스코-미누신스크 분지에는 기원전 2세기를 전후하여 타쉬트이크 문화가 꽃피었다. 이 시기에 조성된 무덤 속에서 널빤지 그림을 발견하였는데, 그 널빤지에는 손에 활이나 칼을 든 전사들이 말을 타고 빠르게 질주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 말들의 달리는 모습을 살펴보면, 앞뒤 각각 두 개의 다리를 서로 엇갈리게 교차시켜서 움직이는 모습을 구현하였는데, 특히 앞 다리 중의 하나는 무릎을 구부린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몽골의 야마느이 오스 암각화 속에는 여러 겹으로 그림들이 덧그려져 있는데, 그 가운데는 화려한 마차 두 대가 그려져 있다. 이 마차를 끄는 말들은 흥미롭게도 타쉬트이크 무덤에서 발견한 널빤지 속 말 형상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마차 그림은 기원전 후기의 흉노시대에 그려진 것이다. 그러니까 야마느이 오스 암각화 속의 마차그림과 타쉬트이크의 널빤지 그림이 같은 시기에 그려진 것이다. 남부시베리아와 몽골 그리고 카자흐스탄 등지의 암각화 속에는 기원전 2세기 이후에 그려진 동물 형상들이 앞의 두 예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양식으로 그려져 있다.

이상의 몇몇 예들은 조성 연대가 비교적 분명한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과 바위그림 속에 그려진 형상들 사이에 서로 동질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이를 통해서 바위그림 속 형상들의 제작 시기에 대해서 비교적 객관적인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특정 시기의 조형 매너도 파악해 낼 수 있다. 이러한 단서들을 통하여 바위그림 속에 그려져 있는 도상들의 제작 년대는 하나씩 규명될 것이다. 그에 따라서 선사 시대는 보다 객관적인 모습으로 복원될 것이다.

매머드의 이빨에 새겨진 매머드 형상이나 쉴리크타 무덤 속의 브로치 그리고 타쉬트이크 무덤 속 널빤지 그림처럼, 대곡리 암각화의 제작 연대를 설정할 수 있는 단서들이 근년에 울산을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의 고고학적 발굴 현장에서 하나씩 발견·보고되고 있다. 정말로 반갑고 또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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