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그려져 중첩된 형상은 편년연구의 절대적 증거
덧그려져 중첩된 형상은 편년연구의 절대적 증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10.09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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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곡리 암각화 문화층위 두겹이 아닌 세겹
면쪼기→선쪼기 이외에 강한 덧그림 있어
선사시대 포경장면 제작시기 더 빨랐을수도
대곡리 ‘건너각단’의 저 침묵하는 바위, 그 표면에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차례 겹을 만들면서 덧그려진 형상들의 총화, 그것이 대곡리 암각화이다.

그 형상들 속에는 이 유적지에 첫 발자국을 남긴 화가들로부터 마지막 방문자에 이르기까지 각 제작자들의 체취가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그 속에 그려진 형상들은 선사 시대 대곡리 사람들이 향유한 문화의 단편들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유일무이한 대곡리 선사 문화 해독 및 복원의 도상자료이다. 한반도 최고(最古)의 화가이자 거장들이 이 바위의 표면을 쪼고 또 그 속살 가운데 그들의 문화상을 새긴 이후, 그것은 곧장 한국 시원문화의 메모리칩이 되었으며, 그들의 뒤를 이은 후속 세대들은 저마다 각각의 문화상을 덧그리기 방식으로 업그레이드하였던 것이다.

서로 다른 시간의 기억을 간직한 제작자들이 저마다 상이한 조형 매너와 방식으로 그들의 삶과 이상을 형상화해 놓은 것이다. 따라서 대곡리 암각화 속에는 수천 년 전의 대곡리 사람들이 누렸던 시간들의 단상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암각화를 선사시대 대곡리 사람들의 타임캡슐이라 부를 수 있다. 저마다의 사연과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형상 하나하나는 순간적으로 우리들을 선사 시대의 대곡리 사람들과 만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물상들의 사실적인 이미지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깃든 정신성까지 더하여 각각의 형상들은 독창적인 아우라(aura)를 뿜어내고 있으며, 그것들이 주변 경관들과 함께 어우러져 한층 더 신비로운 느낌과 경외의 마음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렇듯 다른 시간과 다른 생각이 반영된 이 암각화의 구성양상이란, 얼핏 보면 어떤 체계도 없이 뒤죽박죽 무질서하고 또 혼돈스럽기까지 하다. 각 형상들이 제시하고 있는 공간 정향과 기저선 그리고 상대적인 크기 등 형상들 간의 상관성을 살펴보면, 일관성이 없고 그래서 어색하고 또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사람, 바다와 육지동물 등이 서로 병치되어 있거나 상치된 방향성 등 제재 하나하나의 내보이는 비상식적인 공간 구성으로 인하여 그림은 초현실적이기까지 하다. 게다가 먼저 그려진 형상들 위에 덧그려진 형상들에서 선사시대 문화 반달리스트들이 감행한 서슴없는 선행 문화 파괴의 흔적까지도 적나라하게 살필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에 와서는 먼저 그려진 형상과 덧그려진 형상들이 보여주는 바로 그와 같은 중첩들이 편년 연구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절대적인 증거물이 되고 있으며, 그것들을 기초로 하여 선사 및 고대 미술의 도상 연대표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지표 속에 간직된 여러 겹의 문화 층위처럼 여러 차례 덧그려진 형상들은 그 덧그려진 횟수만큼 상이한 문화상을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그 순서들을 차례로 분석하고 또 읽어내는 과정에서 도상 연대표는 윤곽을 갖추게 될 것이며, 이로써 특정 지역에서 꽃핀 무 문자 시대의 문화상, 즉 그 형성 과정을 밝혀낼 수 있는 것이다.

대곡리 암각화가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의 국내의 몇몇 학자들은 이 그림 속에 간직된 시간의 층위를 두 겹으로 구분하여 파악하였다. 그 대강을 소개하면, 고래와 같이 형상 전체를 모두 쪼아서 그린 것이 먼저 그려졌으며, 그 위에 그물이나 울타리 그리고 호랑이 등 선 쪼기로 그린 형상들이 덧그려졌다고 보았다.

연구자들은 이와 같은 주장의 근거로 면 쪼기의 고래 위에 선 쪼기의 그물이나 호랑이 꼬리 등이 덧그려진 부분을 예로 삼았다. 이와 같은 예들은 면 쪼기가 선 쪼기보다 먼저 그려졌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연 구자들은 그러한 점을 근거로 삼아, 고래 등 바다동물을 잡으며 살던 사람들이 먼저 이 유적지에 그들의 그림을 면 쪼기 방법으로 남겼으며, 그 뒤를 이어서 사슴과 멧돼지 등 육지동물을 사냥하며 살던 사람들이 선행 집단과 교체하여 이 지역 문화 주인공이 되었고, 그들은 선 쪼기로 그들의 그림을 그렸다고 하였다. 그와 더불어 또 다른 일부 연구자는 봄과 여름에 어로를 하였고, 가을과 겨울에는 사냥을 하였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그림은 왼쪽에서부터 그려지기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확대된 것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주장들은 이 암각화 속에 그려진 형상들의 제작 기법 및 상대적인 선후 관계 파악 그리고 제작 집단의 생업 변화 과정 등을 이해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련의 주장들은 한동안 대곡리 암각화의 기법과 층위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생업 등에 관한 통론으로 자리를 잡았었다.

하지만 이 암각화의 문화 층위는 보다 복잡하고 또 중층 구조를 띠고 있다. 이 그림의 중첩 관계를 보다 면밀하게 검토해 보면, 앞에서 소개한 통론과는 사뭇 다른 층위를 이루고 있음을 읽어 낼 수 있다. 그것은 이 암각화의 왼쪽 윗부분에 그려진 그물과 그 주변을 통해서 분명하게 살필 수 있다(제작 순서 분석도 참조). 이 부분의 중첩 관계를 살펴보면, 면 쪼기의 고래가 먼저 그려진 것이 아니라 가느다란 선으로 쪼아서 그린 배와 윤곽만 쪼아서 그린 고래 형상 등이 가장 먼저 그려졌으며, 그 다음에 면 쪼기의 고래, 절충식의 호랑이 등이 덧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다음 다시 그 위를 강한 선으로 쪼아서 그린 그물이 덧그려진 것이다.

특히 가느다란 선으로 윤곽만 쪼아서 그린 고래 형상을 살펴보면, 그 고래의 머리 부분은 바로 위에 그려진 고래의 꼬리지느러미가 침범하였으며, 오른쪽 몸통 부분은 그 오른쪽에 그려진 고래의 가슴지느러미가 침범을 하였다. 또한 그 고래의 왼쪽 꼬리지느러미는 바로 그 왼쪽 아래에 그려진 호랑이의 귀가 다시 침범하고 말았다.

다시 말하자면 선으로 쪼아서 그린 고래의 머리와 몸통 그리고 꼬리지느러미 중 일부분이 주변의 면 쪼기 또는 절충식 쪼기의 방법으로 그려진 고래와 호랑이 등에 의해 훼손되고 만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사실은 윤곽선만 쪼아서 그린 배와 고래 형상 등이 이 암각화에서 가장 먼저 그려진 그림임을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선 쪼기의 고래를 훼손하였던 바로 위의 면 쪼기 고래는 보다 강하게 덧새겨진 그물에 의해서 그 머리 부분이 훼손되고 말았다. 그와 같은 예를 비단 이곳 뿐만 아니라 이 암면의 다른 부분에서도 동일하게 읽어낼 수 있다. 덧그려진 형상들은 언제나 먼저 그려진 형상들의 특정 부분을 훼손하면서 강하게 새겨져 있다. 그러한 점을 우리는 예의 그림을 통해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중첩된 층위만을 놓고 본다면, 이 암각화에서는 세 번의 겹 그리기가 이뤄졌음을 지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제일 첫 번째 형상들은 놀랍게도 배를 타고 고래를 잡거나 잡은 고래를 끌고 가는 장면임을 주장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제기됐던 면 쪼기에서 선 쪼기로의 이행이나 왼쪽이 먼저 그려지고 그 다음에 오른쪽에 그림이 그려졌다는 등의 주장은 이 암각화의 중층구조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내린 주장이었음을 지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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