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逆)
역(逆)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4.20 20: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逆)은 한자풀이로 거스르는, 반대로, 거꾸로 되어있는, 그러다보니 천천히 할 수밖에 없는 상태를 뜻한다. 앞으로 걸어가다 역으로 걸어가는 것은 뒤돌아 앞을 보고 가는 것이 아니고 뒷걸음질하여 오던 길을 뒤돌아 가는 것이다.

사람이야 약간 고개를 뒤로 돌려 가야할 방향을 보면서 뒷걸음으로 가면 되지만 자동차 역주행(逆走行)하기는 기네스북에 나올만한 사람만 할 수 있고, 보통 사람들이 역주행 하다가는 대개 사고를 낸다. 그런데 우리들의 일상용어로 사용하는 역주행은 일방통행의 길, 또는 오른 쪽 차선을 반대로 주행할 때를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가는 방향의 반대로 뚫고 나가는 모습이다. 대단한 모험이면서 그만한 용기를 필수로 하는 행동이다.

울산의 공업탑 주변에는 일방통행 도로가 많이 있다. 이 도로를, 무슨 사정이 있겠지만 역주행하는 자동차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런 자동차를 마주치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경우가 더러 있다. 상대방은 미안하다는 표시한번 안 하고 그냥 지나치는데 여간 불쾌하지 않다. 더구나 이런 차들은 천천히 움직이지 않고 그 역으로 빨리 달려서 일방통행 도로를 벗어나려고 한다. 시대(時代)에 역행(逆行)하는 사고(思考)가 이와 비슷할 것이다. 하긴 시대라고 하면 역사 연구에서 다루는 상당히 긴 시간의 경과를 지칭할 수도 있고, 그 당시, 당대를 말할 수도 있다. 오늘, 여기서는 당대를 가리킨다.세계 어디에서나 창의성(創意性)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국가 간의 경쟁에 이긴다고 한다. 특히, 우리 같이 자원이 부족하고 땅도 작은 나라에서는 창의력을 길러서 원자재, 재료를 수입하고 부가가치를 높여 수출하여 그 차액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고 외친다. 그러나 막상 어떻게 창의성, 창의력을 길러야 할 것인지를 물어보면 추상적인 대답, ‘풍토 조성’ ‘가정과 사회의 허용적 분위기’등을 말한다. 가장 핵심적인 요소, ‘역으로 행동하기’는 무서워서 건드리지 않고 말하는 것이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사람은 ‘찰스 다윈’인 것 같다. 당대의 거의 모든 사람이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을 때, 이를 역행하여 ‘아니다. 미생물로부터 진화한 것이다’고 역행하였다.

영국의 생물학자 헉슬리(1825-1895)가 ‘이 쉬운 자연선택을 생각해내지 못했다니, 이런 바보 같으니!’라고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고 난 뒤 자신을 후회했을지라도 다윈은 먼저 역행한 것이다. 자신도 뛰어난 생물학자이었으면서 다윈을 옹호하며 ‘원숭이로부터 진화한 것이 사람이다’고 주장하며 신학자와 다른 생물학자들과 싸웠다. 다윈과 같이 역행하였다. 우리나라에도 역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역모(逆謀)를 하여 성공한 사람이 이성계이다. 역행한 것이다. 스님 중에 벽에 거꾸로 서서 참선하다가 그대로 입적하는 하는 경우도 있고, 좌선하며 앉은 채로 입적한 경우도 있다. 한마디로 ‘괴짜’이며, 역행한 것이다.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에는 창의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수학공부도 풀려고 하는 문제의 정답, 끝을 놓고 질문한 처음의 문제로 거슬러 가보면 더 확실하게 이해가 된다. 역행하는 것이다. 처음 갔던 친구 집의 길도 왔던 길로 되돌아오면 더 확실하게 기억된다. 낮에 있었던 일을 다시 기억해내야 할 때도, 지금부터 조금 전에 있었던 일로 거슬러 가면 그 때의 일이 붙잡힌다. 역행해야 할 때이다. 그러나 역이 이렇게 효과가 있어도 일방통행 도로만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지켜주기 위해서 역주행하면 안 된다.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