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그리기는 통례·의미없는 낙서와 달라
덧그리기는 통례·의미없는 낙서와 달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9.25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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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친 문양에서 다양한 문화층위 해석
그림의 선후관계·주제·양식 등 파악
낙서는 집단문화 흔적으로 볼 수없어
최근에 전국적인 주목을 끈 울산 발 뉴스 가운데 하나로 국보 제 147호 천전리 각석에 누군가가 글씨(이름)를 새겨놓았다는 기사였다. 그리고 관련 당국은 범인을 잡기 위해서 현상금을 내걸었다는 내용이 이어졌다. 연이어서 떠오른 뉴스는 범인을 잡았는데, 그는 다름이 아닌 서울의 모 고등학교 학생이었으며, 1년 전에 수학여행을 와서 친구의 이름을 장난삼아 써 놓았다는 내용이었다. 언론매체들은 이 일련의 과정을 앞을 다투어 기사화했다.

분명히 국보는 원래 상태대로 보호·보존하여야 한다. 그것에 어떤 변형이라도 가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리고 그러한 일을 자행한 사람이 있다면, 문화재를 훼손시킨 죄로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이번의 일련의 보도는, 국보와 같은 문화유산을 잘 보호해야 하는데, 결과론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했으며, 그러므로 앞으로라도 낙서 따위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임을 계몽하기 위함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틀림없는 사실은 문화유산을 어떤 방법으로라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사 및 고대 바위그림들을 조사하다 보면, 하나의 바위 위에 여러 시기의 그림들이 차례로 덧그려진 예들을 무수히 살필 수 있다. 여러 차례 시도된 덧그리기로 인하여 어떤 형상들은 그 원형이 무엇이었는지 살필 수 없게 된 경우도 있다. 그래서 암각화 훼손의 결정적인 주범 가운데 하나가 덧그리기라고 보는 입장이 지금까지 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와 같은 덧그리기 때문에 선사 시대 조형 예술의 세계와 문화 변동 그리고 각 시대 별 핵심적인 제재와 양식 등을 읽어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중첩의 예를 통하여 선행하는 집단과 새로운 문화 주인공들 사이의 문화계승 및 단절 등 상관관계 등도 살필 수 있는 것이다.

1997년 여름의 일이다. 그해 여름, 1996년에 이어서 두 번째로 남부시베리아 하카시야 공화국 일원에 분포하는 바위그림을 조사하고 있었는데, 주 조사지가 페치쉐 강변 일대였다. 그 중에서도 술렉크 유적 콤플렉스를 집중적으로 조사하였다. 이 유적지는 피산나야, 솔랸나야, 오제르나야 등 세 개의 나지막한 산봉우리가 연봉을 이루고 있었으며, 가장 중심적인 유적은 피산나야였다. 모든 바위의 상황들을 하나씩 기록하고 또 사진을 찍었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그것들을 모두 채록하였다.

술렉크의 조사를 마친 후, 바로 근처에 있는 우스틴 키노 마을도 답사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 당시의 물가라든가 주민들의 생활 모습 등을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우스틴 키노 소재 초등학교 선생과 인사를 하게 되었으며, 또 그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선생은 그 마을의 유래와 주민 수, 생업 등과 함께 술렉크의 맞은편에 있는 살라비요프 산의 두 번째 암맥에도 암각화가 그려져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유적지 관련 정보를 듣고 난 다음, 한걸음에 그곳으로 달려갔으며, 두 번째 암맥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그림이 그려진 바위를 발견하였고, 그로부터 이 유적은 나의 바위그림 연구 과정에서 더 없이 소중한 곳 가운데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그림을 찾던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 그 공간성, 그림의 내용과 중첩 상황 등등 하나하나가 그간의 조사 과정에서 획득한 정보들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꿰게 해 준 귀중한 유적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바위그림 유적지의 외적 환경과 시대를 달리하면서 그림을 남긴 제작 집단 간의 상호 관련성 등의 연구에 모범적인 답을 제시해 준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덧그리기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 바위의 표면에는 뿔이 있는 얼굴-가면(리치나-마스크)과 말 그리고 환상적인 합성동물 등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바위 표면을 지배하고 있던 저 당당한 환상의 동물과 그 밖의 형상들은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곧 바로 그림을 정교하게 옮겨 그리기 시작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나는 비록 잠시 동안이기는 하였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흥분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 이유는 쪼아서 그린 커다란 합성동물 아래에 가느다란 선으로 새겨져 그린 들소 형상들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야 말로 그동안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형상들을 재발견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바위의 원래 주인은 합성동물이나 리치나-마스크가 아니라 잘 발단한 몸통을 당당하게 드러낸 들소 형상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도래 집단들이 바로 그 들소 형상 위에 그들의 형상을 그려놓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선주민 집단의 소 형상은 훼손되고 말았던 것이다. 덧그려진 형상은 그동안 학계에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었던 오쿠네보 시대의 환상적인 합성 동물이었다. 그러므로 밑에 깔려있던 선 그림은 오쿠네보 시대 이전에 그려졌음을 분명하게 살피게 하였던 것이다. 오쿠네보 시대는 기원전 2,500년 경으로 추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 밑에 그려진 형상들은 늦어도 2,500년 전에 그려진 것이다. 이로써 이 그림이 두 시기에 걸쳐 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선사시대의 바위그림 가운데는 이와 같은 예들이 무수히 많다. 예를 들면 천전리 암각화, 바이칼 호안의 사간 자바, 아네가 호숫가의 베소브이 노스 암각화 등이 그것이다. 그밖에도 무수한 유사 사례들을 일일이 다 나열하기가 어렵다. 한 번 그림이 그려진 바위에는 이후 새로운 문화 주인공들이 그들의 형상들을 그 위에 덧새기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되풀이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어떤 그림 유적지에서는 한 두 차례 덧그려진 경우도 있으나, 일부 유적지에서는 구석기 시대부터 고대의 그림까지 여러 시기의 그림들이 덧그려진 경우도 관찰된다.

그러므로 바위 표면에 인류의 선사 시대 문화상들이 층위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러한 형상 상호간의 중첩된 상황들을 분석하여 정리하면, 해당 유적의 덧그리기 과정과 개개 도상들의 선후 관계 그리고 시대 주제 및 양식 등을 파악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일찍부터 바위그림 연구자들은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덧그리기가 이루어진 바위그림을 주목하였고, 또 그것의 분석을 통하여 상대적인 선후 관계를 파악하여 내었으며, 이로써 도상 연대학을 만들어내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중첩은 분명히 서로 간의 선후 관계를 살피게 해 주는 단서가 되고 있으며, 이로써 형상 간의 상대적인 선후 관계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의 바위표면에 그려진 형상들이 어떤 순서로 그려져 왔는지, 그리고 어떤 그림이 가장 이르고 또 그것은 무엇이었는지 등을 살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 시기의 형상들이 덧그려진 바위그림은 그 자체가 문화층위를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유적지를 조사하다보면, 흥미롭게도 먼저 그려진 형상들 위에 형상들을 새롭게 덧그린 경우, 언제나 늦게 그려진 형상들이 앞선 시기의 그림들 중 일부분 또는 전체를 훼손시키는 일이 발생하였다. 특히 늦게 그려진 형상들은 앞 시기의 형상들보다 더 깊고 또 뚜렷이 쪼여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차례 덧그려진 형상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무엇이 그려져 있는 지 파악조차 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분명하게 서로 중첩된 관계를 살피게 하는 그림도 있다.

이와 같이 중첩은 선사시대의 문화유산을 파괴시키는 역기능도 하고 있다. 핵심적인 사항이나 부분들에 덧그려진 형상들은 선행 집단의 조형 세계를 살피는데 결정적인 방해 작용을 하기도 한다. 덧그리기의 이러한 기능은 시대가 바뀜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악용되기도 하였는데, 그 예가 토템이나 샤먼 그리고 특정 집단의 신상들 위에 십자가를 그린 것이나 라마교의 경문 등이 덧새겨진 것 등이다. 금석문 따위의 중요한 글씨들이 덧 쪼기에 의해 훼손된 것이나 경복궁 앞에 세워졌던 총독부 건물 그리고 전국의 유명한 산이나 그 지맥 가운데 박혀있던 쇠말뚝 등도 그 연장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그것이 고의적인 훼손인지 아니면 선행 형상의 완성인지 등의 판단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중첩은 반드시 형상을 훼손시킨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는 반면에 또 다른 측면에서는 바위그림의 제작 시기, 양식, 문화상 등의 변동 상황을 살피게 해 주는 유용한 단서로 활용되고 있다. 그래서 중첩은 서로 대립하는 이중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천전리 암각화의 낙서와 관련된 최근에 보도들을 접하면서, 문제의 경중을 살피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둔감증에 대해 개탄했다. 눈앞에 보이는 소소한 일은 침소봉대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을 서슴없이 자행하려 하는 행정당국이나 그것을 막아야 할 지역의 일꾼들은 맞장구를 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국보의 보존이라는 말의 허상을 재삼 확인하게 되었다. 소모적인 논쟁을 책동하는 문화 반달리스트들과 그에 무비판적인 지역 이기주의는 언제쯤 극복이 될 지 안타까움과 함께 탄식이 절로 터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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