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속인 국회의원
대통령을 속인 국회의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4.17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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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닥에서 이삼십년 일을 하다 보면 만나는 사람의 고향, 직업, 성격 등을 첫눈에 알아보는 수가 가끔 있다.

심지어 성씨(姓氏)까지 알아 맞춰 상대를 놀라게 했던 일도 있었다. 성품이나 직업은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 추측이 가능하고 고향은 말투를 통해 짐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 외에도 의복, 앉는 자세, 머리모양 등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참조해 상대를 파악하는 자료로 삼는 다. 그래서 수십년 간 살아 온 주위 환경이 인간의 성품이나 직업을 짐작케 하는 잣대가 된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랬던 적도 있다. 4.9총선이 끝난 후 인지라 선거에 출마했던 인사들이 가끔 내방한다. 찾아오는 손님들은 각양 각색인 반면에 당선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덕목 중 하나가 요즘 어렴풋이 손에 잡힌다.

정치인들은 서민적이고 소탈해야 당선되는 확률이 높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 공통점 외에 하나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한 일이 있었다.

며칠 전 울산 남구 당선자가 찾아 왔을 때 순간적으로 눈길을 끈 것은 그의 구두였다. 광택을 내는 그런 류가 아니라 재래시장 귀퉁이에서나 찾아 볼 수 있음직한 그런 것이었다. 언론사를 방문하면서 일부러 그런 무덤덤한 신발을 신었을 리도 없을게고 그런 성품의 소유자도 아님을 어느 정도 들어 알고 있었다.

약칠을 하지 않아 희끄무레한 구두만큼이나 그의 이야기는 들을수록 점입가경이었다. 정치인이라기 보다 초등학교 교사를 연상케 하는 외모에서 ‘정치꾼’의 흔적이 비치지 않아 적이 우려했던 순간은 그가 들려준 다음 일화로 착각이었음이 드러났다.

자신의 지역구에는 공단이 들어서면서 이주해 온 영세민들이 사는 달동네가 주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특히 일부 지역은 하수도 시설마저 갖춰져 있지 않아 주거환경이 열악한데다 무계획한 이주로 인해 불법거주 문제가 지역현안이란 설명도 했다. 처음에는 울산시가 불법 거주를 묵인하는 상태로 현재의 공동체가 형성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재산권 문제가 발생해 울산시와 주민이 대립된 상태에 있다는 얘기도 했다. 이 지역민들을 합법적으로 거주케 하려면 재개발 지역에 건설하는 아파트를 하나씩 무상으로 제공하거나 현 거주지를 울산시가 양도하는 수밖에 없다는 부연 설명도 곁들였다.

그러나 울산시는 그럴만한 재정적 여력이 없다는 설명도 했다.

그래서 꾀를 낸 것이 지난 대선 당시의 지역 대선공약을 이용한 것이라고 한다. 간단히 말해 대통령 공약사항에 지역민 숙원사업 하나를 ‘가면 씌워 슬쩍 집어넣었다’는 얘기다.

대통령은 내용도 확실히 모른 채 약속을 덜컥 해 놨으니 이행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간 것이다. “대통령에게 사기 친 내용은 절대 기사화 하면 안 된다”며 깔깔 웃는 모습이 천진난만한 소년 같았다. 이 대선 공약을 빌미로 향후 중앙정부에 재정적 지원요구를 계속할 것이란 말도 더 했다.

이 순박한 국회의원을 보면서 ‘정치를 하려면 요즘은 순수, 서민적 이미지는 기본이고 지역구를 위해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헌신’도 필수적이란 명제가 성립되는 듯 했다.

명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고등학교 때부터 집사람과 연애하느라 공부는 하나도 안 했다”고 익살을 부리는 모습 때문에 지역 유권자들이 그를 선택했다는 결론에 닿았다. 가지런히 발을 모아 앉은 자세와 싸구려 구두가 한편의 작품으로 승화되는 이유도 그의 순수함 때문이리라. / 정종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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