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바다, 암각화에는 선사의 일상과 상상이 출렁
또 하나의 바다, 암각화에는 선사의 일상과 상상이 출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9.18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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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거북 물개 펭귄 퍼득이는 바다를 암면에 새겨
추격·작살투척·인양·분배 등 오늘의 장생포 구현
작살촉은 작살포로, 나뭇배는 철선으로 변천된 원형
울산에는 동해의 고래바다 말고도 또 하나의 바다가 더 있다. 그것은 대곡천의 건너각단에 새겨진 암각화 속의 바다이다. 그 바다 속에는 한반도는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가장 오래된 고래잡이 어부들과 그들이 바다에서 보고 또 겪었던 일상생활들이 파노라마처럼 각인되어 있다.

당시의 화가들은 마치 기록 영화를 촬영하듯, 그들이 알고 있었고 또 잡았던 고래들과 그것들을 두고 벌인 선사 시대의 포경산업을 하나씩 하나씩 그 바위에 기록해 놓았던 것이다. 그러자 그려진 고래 한 마리 한 마리는 거친 숨을 토하고 또 점프를 하면서 헤엄치기 시작하였으며, 그 바위는 삽시간에 고래바다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림 속의 바다에는 포경선을 탄 어부들이 실제 바다에서 그랬던 것처럼 노를 저어 고래를 추격하고 있고, 그 배의 뱃머리에는 작살자비가 두 손으로 작살을 꼬나들고 이제라도 막 고래를 향하여 그것을 내던지려 하고 있다.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일곱 명의 어부들이 탄 다른 한 척의 배가 사투 끝에 고래의 포획에 성공을 거둔 듯하다. 그리고 왼쪽 끝에는 이미 포획한 고래를 끌고 있는 배도 한 척 그려져 있다. 마치 애니메이션처럼 고래잡이 과정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바다를 터전으로 삼고 고래를 잡으며 살아가던 태고의 어부들이 장생포와 대곡천에서 자취를 감춘 후, 바위그림 속의 고래들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졌으며, 마침내 그것은 수천 년 전이라는 긴 시간을 어둠 속에 잠들어 있었다. 전설조차 남아있지 않은 긴 망각의 시간이 흐르고, 홀연히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저 암각화 속의 바다는 찬란했던 옛 영광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는 예기치도 못한 선사시대의 도상 다큐멘터리를 통하여 한때 저 망망한 바다를 헤치던 어부들과 그들이 보았던 고래와 거북과 물개 그리고 펭귄 등과 마주하게 되었다.

놀랄 일은 그것뿐이 아니다. 이미 수천 년도 더 전에 바다를 무대로 삼았던 옛 어부들의 고래잡이 모습이 지금의 그것과 별 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이미 그때 포경의 전형을 완성하였던 것이다. 그 어부들은 배를 만들었으며, 또 그것을 타고 바다로 나갔다. 모험심에 가득 찬 그들은 바다라는 미지의 세계를 우리에게 안겨준 개척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림 속의 그 어부들은 태화강과 울산만에서 선사문화를 꽃피운 문화 영웅들의 자화상이며, 배와 그물 그리고 작살 등은 그들이 이룩한 첨단 공학의 정수였다.

그들이 만들었던 배는 바다와 어부 사이의 가교였으며, 고래의 몸통 가운데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 작살은 당대 최첨단의 어로 용구였던 것이다.

고래들이 섬처럼 떠 있는 저 인공의 바다. 그 속에 그려진 형상 하나하나는 선사와 현대를 이어주는 타임머신이다. 그것들은 망설이거나 머뭇거림 없이 단숨에 수천 년의 공백을 관통하여 당시의 어부들과 만나게 해 준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 어부들이 살았던 마을과 그들이 배를 타고 나들던 포구 그리고 잡은 고래를 해체하였던 곳 등을 구석구석 살필 수 있다. 형상 하나하나는 어부들이 꾸었던 꿈과 그것을 이루기 위해 펼친 노력들을 무언으로 전해주고 있다.

그 형상들은 이제 그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의 이면에 감춰진 제작 집단의 리얼한 삶, 그 진면목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새겨진 작살 하나와 배 한 척을 두고, 그것들이 어떻게 설계되었고 또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완성되었으며, 그것은 어떤 원리로 부과된 기능을 발휘하는 지 파악해 낼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저 형상들을 통하여 선사 시대 태화강과 울산만 사람들의 참 삶을 반추해 보라는 것이다.

물론, 암각화 속의 형상 하나하나는 제작 당시의 사회적 리얼리티를 형상화한 것이기 때문에, 고래잡이 어부들이 탔던 배와 그들이 던진 작살 등 각종 도구들은 실제로 그 문화 공동체가 생산해 낸 첨단 공업의 산물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선사시대에도 중공업 기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상상력을 조금만 비약시킨다면, 포구 한쪽의 어딘가에는 조선소가 있었을 것이고, 배를 만들기 위해서는 원자재인 나무를 공급해 주는 벌목공들이 있었음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나무들을 용도에 맞게 손질하였을 목재소와 목공들도 있었을 것이다. 나름대로의 분업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추측컨대, 선사 시대의 엔지니어들은 가장 빠르고 또 안전한 배를 설계하고자 노력하였을 것이며, 그 중의 누군가는 전문가 중의 전문가로 이름을 떨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는 하나하나의 공정들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점검하느라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배를 만드는 데에는 적지 않은 노동력이 필요하였을 것이고, 또 그와 같은 일련의 공정을 수행하는 데 많은 수의 부속품들도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조선소 인근에는 크고 작은 협력 업체들도 포진해 있었을 것이다.

또한 포구 근처의 어떤 곳에서는 어부들이 잡아온 고래가 해체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판매하고 또 요리하는 어시장이나 식당 그리고 선술집 등이 늘어서 있었을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온갖 종류의 거래들이 이루어졌을 것이며, 어딘가에는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소란도 벌어졌을 것이다. 그곳은 아마도 꿈을 실현시킨 바닷사람들의 억센 체취가 묻어나는 선사시대 장생포의 번화가였을 것이다. 암각화 속 바다 앞에 서면, 선사시대 장생포와 그 인근의 조선소 그리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번화가 등이 마치 신기루처럼 눈앞에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한국 최초의 선사 중공업 단지는 그렇게 이미 수천 년 전에 바다를 경영할 문명이기들을 생산해 내었다. 비록 오늘과 같은 정교한 도구는 아니었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당대 최첨단의 고래잡이배를 만들었고, 그 배는 자랑스럽게 암각화 속 고래바다에 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선사 대곡리 사람들이 만들었던 작살은 작살포로 바뀌었고, 목선은 포경선이 되었으며, 선사 조선소는 중공업기지로 탈바꿈하였다. 암각화 속에서 살필 수 있었던 고래와 포경선을 이제는 고래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울산의 오늘이 대곡리 암각화의 고래바다와 잇닿아 있는 것이다.

저 암각화 속의 고래바다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문명의 여명기를 추적하는 역사와 문화의 탐험가들에게 태화강 선사문화의 실체를 형상으로 증명하여 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바다는 선사 시대의 포수들이 이루고자 하였던 꿈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도전해야 할 바다가 무엇인지도 가르쳐 준다. 그 바다는 지금 외치고 있다. 다시 일어나라고, 깨어나라고, 머뭇거리지도 말고 또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그리고 언젠가 그들이 그랬듯이 바다로 나가서 또 다른 고래를 잡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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