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정승 나온다는 무룡산, 다음은 누구?
3정승 나온다는 무룡산, 다음은 누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9.18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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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춤춘다는 무룡산 자락 해안 북구 어물동 산 122 방방우골 부처봉 남쪽 중턱의 우뚝 솟은 바위에 마애여래불상을 새겨 놓았다.

마애란, 암벽이나 석벽에 새긴 글자나 그림이다. 여래는 석가모니(부처)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마애여래불상은 암벽에 새겨진 석가모니의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이 불상은 천년을 훨씬 넘긴 통일신라 하대의 작품이라고 한다. 중앙의 본존인 약사불의 높이가 5.24m, 폭이 약 10m인 하나의 자연암반에 새긴 3불상 모두 양각(돋을새김)으로 새겼다. 석재는 사암으로서 오랜 세월 속에 비바람에 의한 마모가 심하고 이끼도 많이 끼어 있어 불상의 세세한 부위까지 판별하기 쉽지 않다. 불적조사단의 보고에 따르면 이 자리가 통일신라시대 고찰 터라고 했다. 참고로 얼마 전에 세운 절집과는 무관하다.

본존불의 귀가 부처님 귀라서 그러한지 매우 긴데 한쪽 귀 길이가 약 70cm나 된다. 경주 동해 연안에 서 있는 골굴암 마애불좌상의 귀와 길이가 비슷하다.

본존불의 왼손에 약병을 든 모습은 약사불이다. 이 불상의 손에 있어야 할 약병은 애타는 누군가에 의해 빼앗겼는지 그 자리의 바위 면이 파여져 약병이 떨어져 나가고 없다. 약사불을 좌우에서 모시고 있는 일광·월광보살의 형상은 일정하지는 않지만 대개 일광보살은 이마나 보관에 해를 표현하고 월광보살은 달을 표현한다. 일광보현 보살은 실천과 자비를 상징한다고 한다.

특히 월광보살을 들여다보면 달빛을 불빛삼아 밤늦게까지 성실히 공부한다면 형설지공(螢雪之功)처럼 뜻이 이루어진다는 암시가 스며있는 듯하다.

우리나라 마애불 중 가장 오래 되었다고 하는 충남 태안 마애삼존불(국보 제307호)과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마애삼존불(국보 제84호)에 관하여 태안 삼존불은 당시 대외무역을 할 때 항해와 내륙 왕래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평한다.

이와 비교해 어물동마애여래좌상은 울산 12경 중 한 곳인 주전 정자해변과 가까워, 충남 태안과 서산 마냥 지리적 여건이 비슷하다. 이 3곳 해안은 당시 대외 무역항 주변지역에 위치하여 무역선의 해상안전을 위하여 세운 절이 있었고 그 법당에 모신 불상이었을 것으로 유추할수 있다. 그러니까 어물동의 마애여래좌상은 통일신라시대 어물동 해안지역을 장악한 어느 호족이 세운 것 같은 짐작이 들기도 한다.

서산마애삼존불에 ‘미륵반가상’이 조각된 점을 들어 삼존불 주변은 백제시대 당시 청소년들이 심신을 단련하던 곳이었을 것이라고 주장도 있다.

어물동 마애삼존불상이 있는 이 지역 역시 넓고 앞이 훤히 트여 있어 원대한 기상을 키우려 명산대천을 다니던 신라 화랑들의 훈련장이었을 수도 있다.

어물동의 마애여래좌상과 동구 남목동의 마골산 불당골 마애여래불상 역시 동구 해안 지역에 위치하여 험한 뱃길을 떠난 님들의 안녕을 바라는 정성으로 세워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고3 학생의 대입 시험철이 되면 경산의 팔공산 관봉석조여래좌상이 있는 갓바위에는 앉을 자리가 없다고 하는데, 울산의 어물동마애불좌상에 자리한 약사보살이 지닌 지혜의 효험은 어떠할까?

어떤 스님이 가까운 무룡산 깊은 산속에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운 명당이 있는데, 3정승이 나올 터라고 했다. 후대에 이곳에 선영으로 정한 문중에서 2명의 정승이 나왔다. 정해영 전 국회 부의장 그리고 한국과 소련의 수교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 정재문 전 의원의 경력으로 보아 이미 2명의 정승은 나온 것 아닌가. 그렇다면 다음은 누굴까? 어물동마애불에서 그 점지(點指)를 받아 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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