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문구와 위계질서
잘못된 문구와 위계질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9.04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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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전시관에서 경험한 일이다. 안내문에 맞춤법이 잘못된 문구가 여러 날 동안 버젓이 게시되고 있었으나, 아무도 그 잘못 쓴 글을 고치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상관이 기록했기에 감히 지적할 수 없다는 것이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일어난 재미있는 현상이었다.

문득 경주 김씨인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의 손자 김군수(金君綏)와 언양 김씨인 김취려(金就礪.1171~1234) 간에 일어 난 소위 ‘업무보고사건’이 떠올랐다.

두 집안은 경순왕의 후손이다. 김부식의 증조부 김위영(金魏英)은 마의태자 김일(金鎰)의 증손자이기도 하다. 위영은 경순왕이 왕건에게 귀부하고 식읍으로 받은 경주를 통치하는 주장(州長)으로서 사심관(事審官)을 맡았음을 근거하여 신라가 고려에 귀부할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던 인물로 지적되기도 한다.

동경잡기(東京雜記)에 의하면,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지은 김부식의 손자 김군수는 김취려에 의해 귀양을 갔다.

이유인즉 ‘김근수가 당시 병마사인 상관 김취려에게 먼저 업무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밉게 본 것이 원인이었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원통하게 생각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최근 대전의 어느 관공서에는 ‘어찌하오리까’로 시작하는 보고가 많다고 한다. 사안이 있을 때 담당부서 책임자가 결정하지 못하고 하나 하나 윗선에 물어보고 허락을 받은 후에 행정에 옮긴다는 의미인데, 필요한 부분은 책임자가 고민하고 결정한 후 사후보고 형식을 취하면 어떨까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그 근간에는 서로 간의 신뢰와 믿음이 따라야겠지만.

한편, 과연 안내문에서 ‘잘못된 문구를 읽는 자가 누구일까’를 고민했을까? 만약 이 점을 고려했다면 먼저 본 자가 고쳐 쓰고 사후 보고함이 현명한 판단일텐데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오기의 지적은 업무보고시의 위계수준에 포함될 문제가 아니라 조직 내 소통의 문제다.

가족 안에서도 ‘위계’는 존재한다. 아버지의 자리와 어머니의 위치가 제대로 잡혀 있어야 그 자녀가 훌륭한 인격체로 성장한다고 다들 경험적으로 말한다. 그러나 이 위계에 앞서 사랑이 먼저다. 그리고 소통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 소통이 잘되면 자식의 고민은 성장 에너지가 되는 것이다.

흔히 고려의 4번째 왕인 광종(光宗, 925-949~975년)은 왕권강화를 위해 힘쓴 왕으로 알려졌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은 호족의 힘을 지렛대로 삼아 나라를 세웠다면, 광종은 26년간의 치세기간 동안 거의 개국공신의 숙청작업을 단행한 군주이기도 했다.

광종의 치세 7년에 즈음하여 거의 혁명적이라고 지적하는 업적으로써, 노비의 해방이라는 ‘노비안검법(奴婢按檢法)’을 실시하면서 개국공신과의 정면충돌이 시작되었다. 노비안검법은 귀족들의 개인 소유 재산이었던 노비의 신분을 조사해서, 본래 양민이었던 자를 해방시킴으로써 귀족들의 세력을 누르고 왕권을 신장시키고자 했다.

이어서 재야의 젊은 지식인들을 모아 왕권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하여 과거제(科擧制)를 실시했는데 이 역시 권력층의 개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고려시대에 공무원이 되는 방법은 신라시대와 마찬가지로 공식적인 시험이 아닌 명성이나, 집안 배경에 따라 정했다. 이에 반해 과거제의 실시는 권문세가(權門勢家)의 자제가 아니더라도 관리가 될 수 있는 혁신적인 조처였다. 이로써 고려는 공신(功臣)시대가 끝이 나고 바야흐로 문치(文治) 시대가 열렸으며 이를 바탕으로 관복(官服)을 제정하여 관리들의 위계질서를 바로 잡았다.

광종 당시만 하드라도 별도의 예복이 없었기에 때론 신하들이 임금 보다 더 화려한 관복을 입기도 했으며, 신라계의 호족들은 옛 신라 관복을 입고 고려 왕실을 출입했으니 위계질서가 없기 마련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관리들의 등급에 따라 관복인 유니폼을 입도록 했다. 이렇듯이 광종이 왕조의 질서를 잡아 가는 그 과정이야 말로 기득권자들과의 목숨을 건 전쟁이었기에 광종을 두고 성군이다, 아니다라는 평이 따라 다닌다.

위계질서는 양면의 칼날이 아닐까? 칼은 쓰기에 앞서 소통과 신뢰 그리고 이타(利他)에 대한 배려가 따라야 하며 잘 쓸수록 보는 사람을 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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