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에는 크게 신경 안 써
음악통해 기본 학습태도·습관 기르기 치중
성적에는 크게 신경 안 써
음악통해 기본 학습태도·습관 기르기 치중
  • 양희은 기자
  • 승인 2011.07.31 1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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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 오케스트라 중심 예술 꽃 씨앗학교 운영
오랜 연습과정 통한 인성·집중력 향상 이뤄내
소규모 학교임에도 불구 학생수 유지 걱정없어
“80살이 되는 해에는 기념음악회를 열고 싶어요. 피아노, 색소폰 연주에 노래까지 곁들이면 훌륭한 음악회가 되지 않을까요.”

울주군 언양읍 반천초등학교 남진석 교장(66)은 퇴직 후에 해야 할 일들을 차곡차곡 잘 정리해 뒀다. 목표도 뚜렷하다. 팔순이 되는 해에 지인들을 모셔 놓고 작은 음악회를 열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악기 연습을 하고 있다.

반천초등학교는 지난 4년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지원하는 ‘예술 꽃 씨앗학교’를 운영해 왔다. 예술분야 중에서도 오케스트라 교육이 중심에 있다. 300여명의 학생들은 모두 악기를 연주할 수 있고 그 중에서는 특출한 재능을 보이는 학생들도 있다.

“우리 아이들 표정 보셨어요? 수업에 지쳐 있는 모습이 아니라 언제나 친절하고 밝아요. 음악교육의 효과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인근 중학교 선생님들의 칭찬도 자자해요. 우리 아이들이 졸업해서 진학한 중학교의 선생님들은 ‘반천초 졸업생들은 끈기가 있고 믿음직스럽다’고 이야기 합니다.”

실제로 이 학교 학생들은 많이 달라졌다. ‘예술 꽃 씨앗학교’의 컨설팅위원으로 있는 한국교원대학교 민경훈 교수는 4년간 지켜보면서 학생들의 인성에 큰 변화가 생겼다고 한 발제문을 통해 밝히기도 했다.

“인성에도 물론 변화가 있었지만 어느 분야에든 몰입하는 능력이 생겼어요. 악기를 연주하면서 집중하고 몰입하면서 모든 분야에서 그 능력을 발휘합니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학력향상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요. 초등학교 때 습관을 잘 들인 덕분이라고 다들 입을 모읍니다.”

3~4시간에 이르는 오케스트라 연습에 개인 악기 연습까지 참고 견디는 힘을 배운다는 것이다. 남 교장은 학생들의 성적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음악을 하면서 기본적인 학습 태도와 습관을 기르는 것이 오히려 학습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울주군 언양읍 상북면 궁근정 초등학교를 졸업한 남 교장은 초등학교 시절 서울에서 오신 선생님이 가르쳐 준 노래를 잊지 못한다. 당시 교과서에 있던 노래가 아닌 ‘사공의 노래’ ‘올드 블랙 조’ 등을 듣고 배우며 더 넓은 세상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한다.

“저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평교사 시절부터 남들이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배우고 공부했어요. 서예, 유화, 분재, 수석 등 여러 분야를 익혔는데 음악만 못해 봤어요. 내가 못해본 것을 우리 아이들에게라도 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예술 꽃 씨앗학교’도 음악분야로 신청했어요. 아이들이 음악을 하는 것을 보고 ‘소원 풀었다’ 생각했지요.”

남 교장은 정말 자신의 소원이 이뤄진 듯 기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학교의 음악 교육 덕분에 바뀐 것은 학생들뿐만이 아니다. 학부모들도 아이들의 변화에 신뢰감을 보였고, 인근 아파트 주민들도 학교에서 하는 일에는 무조건 협조적이다. 시골의 작은 학교들은 학생수가 줄어들기 마련인데 이 학교는 계속 학생수를 유지하고 있다.

남 교장은 이러한 변화 때문에 음악교육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는 2008년 이 학교에 공모제 교장으로 왔다. 마침 그 해 진흥원의 ‘예술 꽃 씨앗학교’ 공모 공지가 나왔고, 오케스트라 분야에 신청을 했다. 2008년 가을, 악기들이 하나둘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음악교육이 시작됐다. 이름도 생소한 악기를 처음 접한 아이들의 모습을 남 교장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신기한 듯 얼떨떨한 표정으로 소리를 듣던 상기된 얼굴들.

처음 두달간은 예술강사들이 반마다 돌면서 악기를 보여주고 소리를 들려줬다. 아이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오케스트라 교육은 시작됐다. 학생들은 원하는 악기를 선택했고, 다음해 2월 졸업식에서 오케스트라는 애국가와 교가를 멋지게 연주해냈다. 졸업식에 참가한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은 그 서툰 연주에 눈시울을 붉혔다. 남 교장은 그 때 느꼈다고 했다. “이게 음악이구나.”

지난해에는 개천예술제 전국음악경연에서 도시의 큰 학교들과 겨뤄 은상도 받았다. 객관적 평가에서 처음으로 인정받아 그 기쁨은 더할 수 없었다.

남 교장은 요즘 혼자서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다. 교장실에는 피아노도 한 대 놓여 있다. 아침 일찍 출근해 30분 이상은 피아노를 연주한다. 학교에 오는 예술강사에게 미리 연주를 부탁해 여러번 귀에 익힌 뒤 혼자서 연습한다.

“아이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걸 보고 나도 하나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색소폰을 배웠는데 기본적 음악 지식이 없다보니 조금 부족하다 싶었지요. 그래서 음이 정확한 피아노부터 배우자 하고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어요.”

그는 음악은 즐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피아노 연습도 주로 반주를 연습한다.

“내 반주에 맞춰서 노래도 부르고 다른 악기들도 옆에서 흥을 돋워주면 얼마나 보기 좋겠습니까.”

남 교장은 퇴직 후에 경로당에서 피아노를 치며 다른 어르신들과 음악을 즐기는 모습을 떠올린다. 피아노 앞에 앉은 남 교장의 표정은 설레임으로 가득했다.

반천초의 ‘예술 꽃 씨앗학교’는 올해로 진흥원의 지원이 끝난다. 남 교장은 물론 학생, 선생님, 학부모들은 음악 교육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8월에는 울산에서 열리는 전국관악경연대회도 나갈 계획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됐지만 학교에는 여전히 악기 소리가 가득했다. “전국대회에서 연주하는 아이들을 꼭 보러 오세요”라고 말하는 남 교장의 말에는 학생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꽉 차 있었다.

글= 양희은·사진=김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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