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노점상 소년에서 대통령까지
이명박 ‘노점상 소년에서 대통령까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7.12.1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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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키운 힘은 ‘가난’과 ‘어머니’
▲ 유년시절의 이명박 /연합뉴스
찢어지게 가난했던 목부(牧夫)의 아들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유년기와 청년기의 고난과 풍파를 딛고 마침내 청와대의 주인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이로써 이 당선자는 CEO(최고경영자) 출신 정치인으로는 처음으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기록을 세웠으며,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서울시장)을 거쳐 행정수반에 오르는 ‘그랜드 슬램’까지 달성했다.

국내 생존인물로는 유일하게 자신을 모델로 한 TV드라마가 두편(야망의 세월, 영웅시대)이나 제작, 방영됐다는 점은 그가 얼마나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고, 코리안 드림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는지 웅변하고 있다.

▲ 청년 이명박 /연합뉴스

그의 일대기는 굴곡 많았던 대한민국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 한다. 그의 오늘을 키운 힘은 ‘가난’과 ‘어머니’, 그리고 ‘긍정의 힘’으로 압축된다.

이 나라 60대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이 당선자는 일제 식민시대와 광복, 6.25 전쟁과 초보적인 민주자유화, 군사독재정권과 산업화, 민주화와 세계화 시대로 이어지는 격동의 파고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넘어왔다. 철들기 전부터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벌였던 좌판은 그를 강인하게 단련했고, 찢어지는 가난함 속에서도 안정된 가풍을 만들었던 어머니는 그의 인간성 형성에 자양분을 제공했으며, 끝까지 버리지 않았던 스스로에 대한 신념은 그의 리더십을 담금질했다는 게 이 당선자의 `자찬’이다.

◆ 가난 그리고 어머니=이 당선자는 일제치하였던 1941년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났다. 목부였던 아버지 이충우(1981년 작고)씨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 채태원(1964년 작고)씨 사이에서 태어난 4남 3녀(귀선, 상은, 상득, 귀애, 명박, 귀분, 상필) 가운데 다섯째였다.

해방 직후 귀국선에 올라 아버지는 동지상고 재단 이사장의 목장에서 일을 하고, 어머니는 과일행상에 나섰지만 가난은 지겹도록 그를 따라다녔다. 그런 와중에 집안의 희망은 포항에서 수재로 이름을 날렸던 둘째 아들(이상득 국회부의장)이었고, 자연히 이 당선자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함께 /연합뉴스

초등학교 3학년때 6.25 전쟁을 겪으면서 누나(귀애)와 막내(상필)를 잃고, 가세는 더욱 기울었다. 이 당선자는 술 지게미로 하루 두끼를 때웠고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아예 어머니의 풀빵장사를 돕기위해 길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서울대 상대에 입학한 둘째 형의 뒷바라지를 위해 고등학교 진학을 거의 포기하려던 즈음 한 은사를 만난 그는 진학의 꿈을 이뤄내기 위해 어머니와 담판을 벌여 “학비는 한푼도 달라고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허가를 받아냈다. 결국 동지상고(야간) 수석 합격과 3년 연속 수석을 이뤄내 무일푼으로 고교 졸업장을 따냈다.

▲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연합뉴스

이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한 이 당선자는 온갖 잡일을 하면서도 ‘고졸’보다는 ‘대학 중퇴’가 취직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에 대입을 준비했고 청계천 헌책방에서 헐값에 구입한 참고서로 고려대 상대에 합격했다.

이태원시장에서 매일 새벽 쓰레기를 치우는 일로 근근이 학비를 마련하며 대학을 다녔던 이 당선자는 3학년때는 상대 학생회장에 당선돼 6.3사태의 주모자로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을 복역, ‘민주화 투사’라는 이력을 보탰다

▲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 그러나 그는 석방 한달여만에 어머니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이 당선자가 지난해 6월말 서울시장 퇴임 후 대권행보에 나서면서 각종 강연과 연설에서 거의 빼놓지 않는 일화는 모두 가난과 어머니가 주인공이다.

◆ 왕 회장과의 만남=이 당선자의 일생에서 어머니 만큼이나 큰 인연은 역시 ‘왕회장’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다. 가난으로 점철된 그의 성장기는 정주영이라는 기업인을 만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그의 남다른 기질은 취직할 때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학생운동으로 복역한 전과 때문에 취직이 어렵게 되자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정부의 부당한 ‘취직방해’를 비판하는 편지를 썼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현대건설이라는 중소기업에 입사한다. 타고난 부지런함과 과감한 문제제기로 입사한 지 2년도 되지 않아 대리로 승진한 것을 시작으로 29세 이사에 이어 불과 35세에 현대건설의 사장이 됐고 이후 최장수 CEO(최고경영자)의 역사를 쓰게 된다.

현대그룹 재직시절 세계에서 3번째로 긴 말레이시아 페낭대교(연륙교)를 건설하고 이라크 화력발전소를 짓는 등 열사의 중동에서부터 동토의 시베리아까지 전 세계를 누비며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경영자로 자리매김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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