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민심의 징후들
불안한 민심의 징후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6.02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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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옛날에 아이들이 땅 따먹기 놀이를 하면 나라에 무슨 변고가 곧 생길 징후라고 어른들이 걱정하였다. 그 놀이는 깨진 사기그릇 조각(사금파리)을 50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크게 갈아서 도구로 만들고, 이것을 땅바닥에 약 1m 정도의 정사각형을 그리고 각 모서리에 한 사람씩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이 조각을 번갈아 가면서 손가락으로 정사각형 안으로 튕겨 땅을 차지하는 것이다. 글로서 설명하기 보다는 실제로 해보면 간단하다.

징후(徵候, symptom)는 우리 몸의 여러 기관이 정상적인 기능에서 벗어난 일을 하여 그 아래 숨겨져 있는 어떤 문제들을 가리키는 상태를 말한다. 어떤 문제가 지금은 나타나지 않으나 조금 있으면, 상황이 변해 그 문제가 표면으로 나타날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우리의 속담에도 아주 쉽게 나온다. ‘방귀가 잦으면 똥 싸기 쉽다’는 말이 우리의 오랜 체험에서 나오는 징후에 관한 정의(定義)이다. 얼굴에 여드름이 생기기 시작하면 신체적인 어떤 변화를 알려주는 것이고, 몸에 열이 있으면 역시 몸의 어느 부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머리가 아프다고 내과 병원에 가면 체온부터 재어 보는 이유도 그냥 머리가 아프다는 것이 사실은 몸에 열이 있다는 징후로 나타나고, 이것이 몸의 어디에서 오는지 진찰하기 위한 것이다.

이유 없이 체중이 주는 것도 몸의 어딘가에 문제가 생긴 징후이다. 두꺼비가 떼를 지어 이동한다든지, 개미들이 집을 비워두고 다른 데로 옮겨간다든지, 때 아닌 갈 까마귀 무리들이 반대 방향으로 날아간다든지 하는 것은 천재지변을 예고하는 징후들이다. 동물생태학 특정 분야에서 지진을 예고하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특히 이런 징후들을 ‘과학혁명의 구조(토마스 쿤)’에서는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로 주목하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적 설명(목적론적 설명)에 불편해 하던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자신들의 심기를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즉,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민심도 이와 같이 기능한다.

아이들의 간단한 땅따먹기 놀이가 어떤 변고를 예고하는 징후가 되듯이 시장에서, 백화점에서, 동네 어른들의 쉼터에서, 버스 속에서, 전철 속에서, 국내의 운동경기에서, 심지어 한 사람이 실력을 발휘하는 세계적 대회에서도 그들의 행동거지들이 예전과 달리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나라의 살림에 문제가 생기고 있음을 예고하는 징후들이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서 징후를 찾아보고 치료책(治療策)을 걱정한다.

아이들이 땅따먹기 놀이를 시작하는 것은 무슨 시즌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어른들이 서로 잘 났다고, 더 차지하기 위해 싸우면서 보이는 행동들을 집안의 아이들이 우리들도 저렇게 차지하는 놀이를 하자고 해서 만들어낸 게임인 것이다. 이것이 징후로 보여 지는 것이다. 아이들의 땅따먹기 놀이는 6·25 전쟁이 터질 것임을 알려주는 징후였다.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건은 다른 차원의 비리가 꿈틀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징후였다. 승부조작에 말려든 프로 축구계도 국민들의 사회정의의 최저 기준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징후이다. 정치판이 늘 그런 것이지만 더 놀라운 징후는, 북한의 발표를 그대로 믿는다고 전제하고, 기절초풍할 징후는 정상회담을 판문점에서 하자는 대한민국으로부터의 제안이 비밀접촉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데 있다. ‘천안함, 연평도 사건 이후 지금까지의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진행된 나라 살림의 위암이 보여주는 징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위암의 치료는 그 정도에 맞추어 대수술을 하든지 수술할 정도가 안 되면 세월(歲月)이라는 약으로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 그저 기적이 있어서 수술하지 않고도 기력을 되찾을 수 있는 천행(天幸)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너무 불안한 징후들이 나타나 돋보기가 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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