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꽁초
담배꽁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5.3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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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더워지니 운전석 창문을 열어놓고 운전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긴 머리 펄럭이며 밝은 미소를 머금은 체 운전석에 앉아 있는 젊은 여성은 보기에도 싱그러워 보인다. 조금 나이가 들어보여도 좌우를 두리번거리지 않고 다소곳이 앉아있는 아주머니도 보기에 편안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나의 오른 편에서 나와 나란히 신호대기 중에 있던 사람이 험상 굳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면 나는 금방 머리를 돌린다.

그가 ‘뭘 봐?’하며 꼭 시비를 걸고 뛰쳐나올 것 같은 표정을 하기 때문이다. 겁이 나서 그렇다. 짧지 않은 필자의 외국생활 경험으로는 이렇게 눈이 마주치는 경우, 대개는 그냥 웃음을 보낸다. 울산에서 이렇게 웃었다가는 실없는 사람 또는 미친 사람으로 취급당한다. 화 난 얼굴이어야 한다.

며칠 전은 재수 없는 날이었다. 내 차의 오른 쪽에 있던 외제 승용차 운전자는 화난 얼굴에 쉬어버린 밥풀떼기 같은 얼굴이었다. 그래서 쉰 살이라고 한다. 실제는 쉰 두서너 살쯤의 사나이로 보였다. 대개 이렇게 얼굴에 탄력 없이 쉬어버린 사람들은 화색이 전혀 없고, 면도를 하나마나한 거무튀튀한 얼굴을 갖고 있다.

그는 꼭 노름방에서 밤을 새우고 부스스한 얼굴로 막 길에 나온 모습을 보였다. 거기에 빈혈 끼까지 있어 보였다. 그가 잘 난 척하며 내 앞으로 끼어들어 가다가 차들이 밀려 정체되니까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이런 사람 중 열에 아홉은 운전석 창문을 열어놓고 외제차를 과시하며 왼 손을 밖으로 내밀어 담뱃재를 톡 톡 턴다. 특히 신호 대기 중에 이렇게 멈추어 재를 털다가 차가 출발하면 가만히 담배꽁초를 떨어트린다. 바로 이 사나이가 차를 출발시키며 그렇게 담배꽁초를 버렸다.

나는 앞 뒤 가리지 않고 욱하는 성질로 경적을 올렸다. 그가 차를 급정거 했다. 그리고 험상궂은 얼굴이 더 일그러지면서 나를 향해 걸어 왔다. ‘와 크락숀을 울립니까?’ 차 밖으로 나갔다가는 멱살을 잡히고 쥐어 박힐 것 같아 차 안에 그대로 있었다.

한편 울컥하여 한바탕 해 댈까 생각도 했지만 나보다 큰 그의 체격에 눌리어 창문도 내리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내 뒤의 다른 차들이 경적을 울렸다. 옆으로 비켜가는 차들은 내가 뒤에서 그 차를 받은 줄 아는 모양으로 내 차의 주위를 살피며 지나갔다.

마침 교통을 정리하던 순경이 다가 왔다. 앞·뒤를 살피더니 ‘무슨 사고입니까?’ 하며 두 사람 차를 옆으로 옮기라고 손으로 가리켰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차를 길가로 빼놓고, ‘저 양반이 담배꽁초를 길에 버려서 내가 경적을 울렸더니, 이렇게 길을 막고 못 가게 합니다.’

‘뭐라꼬요? 내가 언제 꽁초를 버렸능교?’ ‘아저씨, 담배꽁초를 길에 버리면 경범죄에 해당됩니다. 벌금을 물어야 됩니다.’ 하며 무슨 기록 지를 꺼내려고 하였다.

‘보소. 경찰아저씨. 저 노인네 말만 믿고 내말은 믿지 않능교? 증거 있습니까?’

순경이 멈칫하더니, ‘어르신, 증거 있으십니까? 잘 못 보신 것 아닙니까?’라고 나에게 물어오니, 그 사람은 기세등등하게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느냐, 노인네 말고 다른 사람이 또 있느냐고 다그쳤다. 순경은 서로 바쁜 길에 그냥 가십시오라며 자리를 떴다.

나도 하는 수 없이 멱살잡이를 당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다 생각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살다보면 이렇게 재수 없는 날도 생기는 구나라고 한참을 되씹으며 한나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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