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는 대조적으로, 나의 오른 편에서 나와 나란히 신호대기 중에 있던 사람이 험상 굳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면 나는 금방 머리를 돌린다.
그가 ‘뭘 봐?’하며 꼭 시비를 걸고 뛰쳐나올 것 같은 표정을 하기 때문이다. 겁이 나서 그렇다. 짧지 않은 필자의 외국생활 경험으로는 이렇게 눈이 마주치는 경우, 대개는 그냥 웃음을 보낸다. 울산에서 이렇게 웃었다가는 실없는 사람 또는 미친 사람으로 취급당한다. 화 난 얼굴이어야 한다.
며칠 전은 재수 없는 날이었다. 내 차의 오른 쪽에 있던 외제 승용차 운전자는 화난 얼굴에 쉬어버린 밥풀떼기 같은 얼굴이었다. 그래서 쉰 살이라고 한다. 실제는 쉰 두서너 살쯤의 사나이로 보였다. 대개 이렇게 얼굴에 탄력 없이 쉬어버린 사람들은 화색이 전혀 없고, 면도를 하나마나한 거무튀튀한 얼굴을 갖고 있다.
그는 꼭 노름방에서 밤을 새우고 부스스한 얼굴로 막 길에 나온 모습을 보였다. 거기에 빈혈 끼까지 있어 보였다. 그가 잘 난 척하며 내 앞으로 끼어들어 가다가 차들이 밀려 정체되니까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이런 사람 중 열에 아홉은 운전석 창문을 열어놓고 외제차를 과시하며 왼 손을 밖으로 내밀어 담뱃재를 톡 톡 턴다. 특히 신호 대기 중에 이렇게 멈추어 재를 털다가 차가 출발하면 가만히 담배꽁초를 떨어트린다. 바로 이 사나이가 차를 출발시키며 그렇게 담배꽁초를 버렸다.
나는 앞 뒤 가리지 않고 욱하는 성질로 경적을 올렸다. 그가 차를 급정거 했다. 그리고 험상궂은 얼굴이 더 일그러지면서 나를 향해 걸어 왔다. ‘와 크락숀을 울립니까?’ 차 밖으로 나갔다가는 멱살을 잡히고 쥐어 박힐 것 같아 차 안에 그대로 있었다.
한편 울컥하여 한바탕 해 댈까 생각도 했지만 나보다 큰 그의 체격에 눌리어 창문도 내리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내 뒤의 다른 차들이 경적을 울렸다. 옆으로 비켜가는 차들은 내가 뒤에서 그 차를 받은 줄 아는 모양으로 내 차의 주위를 살피며 지나갔다.
마침 교통을 정리하던 순경이 다가 왔다. 앞·뒤를 살피더니 ‘무슨 사고입니까?’ 하며 두 사람 차를 옆으로 옮기라고 손으로 가리켰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차를 길가로 빼놓고, ‘저 양반이 담배꽁초를 길에 버려서 내가 경적을 울렸더니, 이렇게 길을 막고 못 가게 합니다.’
‘뭐라꼬요? 내가 언제 꽁초를 버렸능교?’ ‘아저씨, 담배꽁초를 길에 버리면 경범죄에 해당됩니다. 벌금을 물어야 됩니다.’ 하며 무슨 기록 지를 꺼내려고 하였다.
‘보소. 경찰아저씨. 저 노인네 말만 믿고 내말은 믿지 않능교? 증거 있습니까?’
순경이 멈칫하더니, ‘어르신, 증거 있으십니까? 잘 못 보신 것 아닙니까?’라고 나에게 물어오니, 그 사람은 기세등등하게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느냐, 노인네 말고 다른 사람이 또 있느냐고 다그쳤다. 순경은 서로 바쁜 길에 그냥 가십시오라며 자리를 떴다.
나도 하는 수 없이 멱살잡이를 당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다 생각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살다보면 이렇게 재수 없는 날도 생기는 구나라고 한참을 되씹으며 한나절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