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롱(愚弄)
우롱(愚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5.24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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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낱말은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무식하고 상스러운 사람들이나 버릇없이 뱉어버리는 욕지거리이어서 그렇다. 들을만한 욕이 아니라 당사자에 대한 근본적인 인격모독이 되기 때문이다. ‘마’ 다음에 오는 닿소리로 시작하는 ‘XX’이 그 말이다. 인터넷 사전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낱말, ‘신체의 어느 부분이 온전하지 못한 기형이거나 그 기능을 잃어버린 상태. 또는 그런 사람. 모자라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주로 남을 욕할 때에 쓴다’는 낱말이다.

이 낱말에 해당되는 사람을 놓고, 내가 화났다고 해서 ‘이런 XX!’했다가는 큰 일 난다. 화내지 않을 사람 없다. 이와 비슷하게 나를 바보 취급하여 나에게 거짓말로 속이거나, 사실을 덮어두려고 하거나, 뒤에서 저희들끼리 잘도 속아 넘어간다고 놀릴 때, 화내지 않을 사람 없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나를 우롱하는 것이다. 우롱 당하고도 불쾌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신선(神仙)의 경지에 있는 사람이다.

두어해 전에 정진홍(전 서울대 종교학과, 현 이화여대 석좌) 교수가 ‘나이를 먹으면, 그것도 일흔이 넘으면, 나는 내가 신선(神仙)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온갖 욕심도 없어지고, 이런저런 가슴앓이도 사라지고, 남모르게 품곤 했던 미움도 다 가실 줄 알았습니다.…(9쪽)’라고 했다.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궁리. 2009)’의 서문에 나오는 말의 일부이다. 이 서문도 16쪽이나 되어 유명해진 글이다.

그는 들어가는 글에서 한참을 일흔 살의 의의를 관조(觀照)하다가, ‘…미움도 털어야 하고, 한도 풀어야 하고, 이제는 싫은 사람 좋은 사람 나누는 일도 그만 두어야 할 터인데,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만 생각하면, 그로 인해 일어난 일만 생각하면, 그 때문에 내 삶이 온통 구겨진 것이 되었던 것이라는 판단이 더 굳어지면서 죽어서도 용서할 수 없다는 다짐이 새삼 솟습니다. ‘눈에 흙이 들어가도’라고 하는 표현은 참 알 수 없게도 나이가 들면서 더 강해집니다. 일흔이 넘어도 다르지 않습니다. 옆에서 누가 그럴 수 있느냐고 이제 다 풀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어느 틈에 그 증오는 신념으로 승화하고 나는 갑자기 지사(志士)가 됩니다. 그런데 내가 미워하는 사람은 대체로 내가 만나 서로 불가피한 관계를 맺고 살아온 ‘가까운 사람’입니다.…(20쪽)’라고 ‘가까운 사람’을 경계하라고 한다.

심리학적으로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갈등, 배신, 무시, 멸시, 모욕, 사기, 허세 등등 ‘정직’과 대비되는 일이 개입하면 ‘미움’이 발생한다. 정직(正直)은 사실(事實, fact) 하나로 이루어진다. 사실이 아닌 정직은 없다.

특히, 스스로 생각해도 이만하면 바보가 아닌데, 상대방이 다른 사람과 나까지 속여 가며 나를 바보 취급, ‘XX’ 취급하면 엄청 화나는 법이다. 이렇게 남을 우롱하는 것은 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여 화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누가 누구를 우롱하느냐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어려서 친구들끼리 단순한 장난으로 우롱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잠시 화나지만 크게 손해 볼 일은 아니다. 좀 커서 이지매, 왕따를 시키는 집단 대 개인 간의 우롱이 발생하면 당하는 사람은 살인까지도 불사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 개인이 집단을, 즉 회장이 사원들을, 또는 권력자가 국민을 우롱하면 폭동이 일어난다. 사원들의 기물파손까지는 참아줄 수 있으나 국민들의 폭동은 혁명으로 확산된다. 지금 부산저축은행 비리는 회장 이하 사원들만의 부실과 부정직으로 끝이 날 수준이 아니다. 권력을 갖고 있으면서 국민을 우롱한 자가 밝혀지고 엄벌을 받으며 법으로 손해 배상까지 물어주어야 우롱 당한 국민의 미움이 조금은 가라않을 정도가 되었다. 먹지 않고 절약하여 모았던 돈, 이자 조금 더 준다니까 맡겼던 생돈을 어디 가서 찾으라는 것인가? 국민의 세금을 받아 살면서 재산을 불린 사람들, 차제에 지난 2년 동안 불어난 만큼을 우롱 당한 저들을 위하여 기부할 생각은 없는가? 국민 우롱죄의 집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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