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식 학원장이 그동안 내가 어려울 때 나에게 얼마나 많은 베풀음을 주셨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이다. 이것을 생각하면 내가 그 대학을 떠나가기가 쉽지 않다. 엊그제 평화복지대학원장 임명장을 받았는데 그 문서에 찍은 도장밥도 채 마르기 전에 바로 떠나겠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 된 도리가 아니다. 누가 보면 조영식 학원장이 배고픈 나에게 건네어 준 떡을 먹다가 정부에서 더 큰 떡을 주니까 먹던 떡을 뱉어버리고 훌쩍 떠나 가버리는 것 같다. 주위의 여러 사람에게 나쁜 인상을 줄 것이니 그 직은 사양할 수밖에 없네.’
이돈희 장관은 앞에서 대학시절을 회상하며 거명 한 일이 있는 대학동기동창이다. 누구보다도 서로 이해될 수 있는 친분관계가 있어서, 이 장관은 ‘그건 맞는 말일세.’하며 수긍을 했으나 다음 말은 장관으로서 또한 당연히 해야 할 말이었다.
‘공직사회는 대통령께서 한 번 임명을 결심하면 특별한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그 결심을 지켜드리는 것이 모시는 사람들의 기본 도리야. 나보다 공직사회의 경험이 더 많으니 잘 알고 있을 거야.’
참으로 까다로운 고민에 빠졌다. 나는 더 이상 이 문제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동안 조선제 교육부차관이 조영식 학원장을 만나고 갔고, 이돈희 장관은 전화로 나를 놓아줄 것을 간곡히 설득하고, 청와대 쪽에서는 수석 비서관이 대통령의 뜻이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좀 강하게 밀어붙였다.
드디어 조영식 학원장이 나를 불렀다. 사무실로 들어갔더니,
‘이 원장,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오. 이제 자유롭게 선택하세요. 경희대를 떠나더라도 우리의 선의는 잊지 말아 주세요.’ 라고 웃음을 지어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감사합니다.’는 말 밖에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은 돌아가신 김태길 서울대 교수의 요청으로 상임연구위원이 되어 처음부터 연구원이 앞으로 할 사업의 초안을 같이 만들었던 곳이다. 1978년 6월 30일 오전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개원하였는데 2001년 1월 17일에 원장으로 다시 정신문화연구원을 찾았다. 정리=박해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