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이 큰 움푹한 곳은 동서고금의 명소
울림이 큰 움푹한 곳은 동서고금의 명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5.2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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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현상 좋은 곳에 바위그림·극장·성소입지
처음엔 동굴 이용하다 차츰 비슷한 공간 찾아
음향확산·열린공간에 대한 특별한 가치 부여
프랑스 ‘선사학의 법황’이라 불리던 A. 브뢰이 신부는 일찍이 그림이 그려져 있는 동굴과 그렇지 않은 동굴이 있음을 주목하였다. 그는 동굴 사이에도 서로 간에 무언가의 차이가 있으며, 그에 따라서 그림이 그려지기도 하였고, 또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음을 간파하였던 것이다.

사실 누구라도 동굴벽화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어떤 요건을 갖춘 동굴에 그림이 그려졌는지 궁금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 요건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히는 일이란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는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계속 진행되어 왔으며, 갖가지 학설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동굴벽화 유적지와 관련하여 주목을 끄는 견해 가운데 하나는 그와 같은 유적지들이 오늘날의 오페라 극장이나 콘서트홀과 같이 소리로 충만한 공간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견해는 프랑스의 I. 레즈니코프에 의해서 제기되었다. 그는 만약 동굴 내부가 어떤 소리의 자극에 의해 공명 현상이 생긴다면, 동굴 전체는 마치 커다란 관현악기처럼 울리게 될 것이며, 특히 벽화가 그려진 공간에서 그러한 현상이 관찰된다면, 그것은 곧 양자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I. 레즈니코프의 연구 방법은 그림이 그려진 동굴 내부를 천천히 걸으면서 ‘도레미파솔라시도’와 같은 음계를 부르고, 또 그에 따라서 파생되는 공명 현상을 조사해 벽화와 소리 사이의 상관성을 밝히는 것이었다. 그의 조사는 피레네 지방의 니오나 포르텔 동굴 등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 전체 조사지 중 90%에 이르는 곳에서 음향의 공명 현상이 일어나는 점을 확인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서 그는 음향학적으로 특별히 증폭 현상이 있는 공간이 곧 그림이 그려지는 곳으로 선택했음을 주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 대 그리스의 노천극장은 마이크와 같은 음향 증폭 장치가 없어도 많은 사람들에게 똑 같이 동일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구조를 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그리스의 펠레폰네소스 반도 아르골리스 북동해안에 있는 에피아우루스 원형극장을 들 수 있다. 이 노천극장은 기원전 4세기에 건축가 폴리클레이토스가 산허리의 구조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설계한 것이라고 알려졌다. 모두 1만4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객석의 제일 위층에 있는 좌석은 무대로부터 무려 22m나 떨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뒷좌석의 관객들이 무대에서 배우와 악사들이 서로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에코 현상과 관련하여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례로는 예루살렘의 사자문 근처 아랍지구에 있는 성 안나 교회를 들 수 있다. 이곳에는 원래 성모 마리아의 부모인 요하킴과 안나의 집이 있었으며, 또 마리아도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5세기경에 처음 이곳에 교회가 세워졌으나 그것은 갖가지 사건으로 인하여 여러 차례 파괴와 복원이 되풀이 되었으며, 현재의 것은 1856년에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이 교회의 내부 구조는 ‘아치형 주랑’인데, 특이하게도 이곳에서는 공명 현상이 강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또한 아무리 음치일지라도 이곳에서 노래를 부르면, 그것이 마치 천상의 소리처럼 아름답게 들린다는 것이다.

세개의 사례들은 각각 선사시대의 그림이 그려져 있거나 고대인들이 공연을 하였던 곳 그리고 지금까지도 예배를 거행하는 곳이다. 이 가운데서 첫 번째의 것은 자연 그대로의 공간이었고, 두 번째의 것은 자연 경관 중 일부를 개조한 것이며, 세 번째의 것은 인위적으로 만든 공간이다. 이들 각각의 공간은 그 조건과 역할 그리고 이용되었던 시기 등이 서로 달랐지만, 모두가 신비롭게도 소리가 증폭되고, 또 소리 중 일부가 저장되어 있다가 다시 흘러나오며,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등 공통적으로 에코 현상이 관찰되는 점에서 동질성을 띠고 있다.

그런데 선사시대의 바위그림 유적지들에서도 이와 같은 에코 현상이 관찰된다. 2006년 여름에 나는 러시아의 바위그림 연구자 M. 킬루노브스카야 박사와 함께 투바공화국 일원의 암각화를 조사하였다. 우리의 조사지 가운데는 ‘무구르 사르골’이라고 하는 성소의 암각화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무구르 사르골은 크이즐에서 서쪽으로 약 160㎞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암각화 유적지인데, 이곳은 칭게 강이 예니세이 강과 합수하는 지점이자 동시에 이 강이 사얀산맥을 관통하는 사얀 협곡이 시작 지점이기도 하다. 이 인근에는 우스튜 모자가, 알라가, 비지그티크 하야, 우스튜 사르골, 오르타 사르골 등의 바위그림 유적지들이 분포하고 있다. 우리 일행은 이 유적지들을 하나씩 차례대로 조사하였던 것이다.

그 가운데서 오르타 사르골을 조사하면서 M. 킬루노브스카야 박사와 나는 이 유적지의 생김새가 마치 원형 극장과 닮았음을 지적하였다. 이 일대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전체적으로 분지형의 공간이었으며, 그 가운데서도 특히 그림이 그려진 곳은 뒤쪽의 산이 병풍처럼 유적지를 둥글게 감싸고 있다. 조사 과정에서 우리들이 나누던 대화가 울려서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등 강한 에코 현상을 살필 수 있었다. 이곳에는 또한 유목민들이 거주하였던 주거지의 흔적도 남아 있었는데, 그것은 근처의 초지를 옮겨 다니며 방목을 하는 목동의 겨울 집 자리였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유목민들은 가축 떼를 이끌고 물과 초지를 따라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생활한다. 그러나 겨울철의 주거지는 한 번 정해지면,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지속적으로 같은 곳을 반복해서 이용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동 생활을 하다가도 겨울이 되면, 정해진 곳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 집 자리는 여러 가지의 조건을 헤아려서 정할 수밖에 없다. 유목민들은 겨울 집 자리로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찬바람 등 추위를 막아주는 곳을 선택한다. 따라서 겨울 집은 대부분 뒤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또 앞은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세워진다. 그러니까 이와 같은 공간은 우리들이 소위 ‘명당’이라고 일컫는 ‘배산임수(背山臨水)에 좌청룡, 우백호’의 형세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동안 조사하였던 중앙아시아 여러 지역의 암각화 유적지들에는 대부분 유목민들의 겨울 집 또는 봄 집이 축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유적지들은 대체적으로 노천극장과 같은 구조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몽골의 경우 고비 알타이 바양 올 솜 인근의 바위그림 유적지들이나 오브스 아이막 우믄 고비 솜의 후렝 우주르 하단 올 등지가 그랬고, 카자흐스탄의 경우는 남부 지역의 쿨자바스이 등지에서 그와 같은 유목민들의 봄이나 겨울집들이 확인되었다. 또한 키르기스스탄에서도 카므이르든벨과 코크 사이 등의 유적지들이 그러한 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동굴벽화와 바위그림 유적지, 고대 원형극장 그리고 교회 등에서 모두 에코 현상이 관찰되는 점을 통해서, 소리의 증폭 현상이 있는 곳이 곧 바위그림 유적지를 비롯한 집회 및 제장(祭場)의 입지 선정에 중요한 기준이 되었음을 살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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