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4화》 최연소 총장이 되어(4)
《제104화》 최연소 총장이 되어(4)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5.10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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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교무회의을 소집하였기에 그때의 긴장된 분위기를 기억이 생생하다. 각 대학의 교무회의는 총장, 각 처장(교무, 학생, 기획, 사무 등등 명칭과 직무가 약간씩 차이가 있음), 각 학장, 대학원장 등으로 구성된 대학의 최고 협의, 의결 기구이다. 이때 참석한 교무위원들의 면면과 머리를 보았을 때, 내가 가장 젊은, 어린 축에 들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과거 대학시절에 웅변대회에 나가 큰 목소리로 외쳐도 보았고, 수석비서관시절에 정부의 중요 회의를 진행해본 경험이 축척되어 있어서 그렇게 위축되거나 불안하지는 않았으나 앞으로 강원대학교를 책임지고 이끌어 갈 첫 걸음이어서 긴장은 되었다. 평소의 방식대로 아랫배에 약간의 힘을 모으고 마음속으로 두 가지를 다짐했다.

‘겸손하게 행동하자.’

‘열과 성의를 다하여 일하자.’

그러고서 인사말을 시작했다. 지금은 그때 내가 어떤 말들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대학발전을 위한 여러 분의 충직한 심부름꾼이 되려고 합니다. 많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요지로 최대한의 겸손을 보이며 말을 마쳤다. 이때 H학장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총장님은 강원도 춘천과 무슨 연고가 있습니까?’

낱말 하나하나가 똑똑 끊어지며 긴장된 첫 교무회의에서 얼핏 들으면 시비를 거는 말로 들렸다. 묘한 뜻이 담겨있는 여운이 감돌았다. 앞의 연재에서도 밝혔듯이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잠은 한국에서 자고, 아침 식사는 일본에서 하고, 미국에 있는 직장에 다니고, 쇼핑은 파리에 가서 한다는 식으로 약간은 과장해서 말을 하며, 요점은 세상이 이런 식으로 좁아지고 있는데 지역연고가 뭐 그리 중요하냐는 반문으로 대답을 끝내었다. 아마 나의 말에서 억양과 성량(聲量)이 많아서였던지 갑자기 교무회의 분위기가 썰렁해짐을 감지할 수 있었다.

H교수의 인품으로 보았을 때, 나와 춘천의 관계를 진정으로 알고 싶어서 그런 질문을 하였을 터이지만 서울에서 춘천으로 올 때의 나의 비장한 각오와 새 출발에 거는 나 자신의 설렘이 순간적으로 과잉반응을 일으켜 대화의 방향을 잘 못 잡았던 것 같았다. 이런 경우를 두고 엎질러진 물이라고 할 것이다. 이미 답변을 한 뒤인데 어찌할 도리가 없고 바로 사과하는 경망된 행동은 더욱 더 문제가 될 것이어서 다음부터 조심하기로 새롭게 다짐을 하였다. 사실 우리나라의 지방대학마다 그 지역의 한두 개 명문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텃새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처음 강원대학의 제 2대 총장으로 내정되었을 때, 과거부터 친분이 있는 교수 두 세 사람 정도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들로부터 강원대학의 전통과 교수들의 성향에 관해서 솔직한 의견을 듣고, 초기에 인사를 할 때 유익한 조언을 들었다. 그러나 지역명문고를 중심으로 한 텃새를 받아 이들로부터는 별로 도움 받은 일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강원대학교의 상징으로서 ‘미래의 창조’를 세웠다. 정리=박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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