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부임하신 총장님은 춘천, 아니 강원도와는 어떤 연고가 있으십니까?’
다 알고 있으면서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순간 좌중은 찬물은 끼얹은 듯 조용했다. 나는 우선 숨을 고르기 위해 헛기침을 한 뒤, 조금은 과장되게 분명한 답변을 했다.
‘질문하신 뜻은 알겠습니다. 전혀 연고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한나절 생활권이고, 지구는 하나의 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아침을 먹고 다음날 미국에서 아침을 먹고 일을 본 뒤에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오후에 일을 마친 뒤에 다음 날 점심때쯤에는 김포공항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곳이 저의 연고지역이 됩니다. 여기 강원대학교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려 심부름을 해 드리겠습니다. 적극 지원해주시기를 이 자리를 빌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심부름을 열심히, 그리고 효과 있게 해드릴 경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도 있습니다. 진정 어린 협조를 부탁합니다.’
이 말에 나이 드신 몇 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수용하는 눈빛이었다. 그날부터 저녁을 밖에서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뜻 깊은 일을 하나 더 하였다.
한말에 의병대장으로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던 의암 유인석(1842∼1915) 대장의 송덕비(頌德碑)를 그의 고향 마을, 춘성군 동면 가정리에 세웠다. 본래는 국방부에서 항일 독립운동의 예로 유명한 배우들을 동원하여 유인석 대장의 활약을 연극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을 내가 감상한 일이 있어서 이 연극을 춘천에서 공연하여 춘천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만한 공연장소가 없어서 비석을 세우기로 하였다. 이 일이 춘천의 여러 유지들과 시민들에게 알려지면서 새로 부임한 총장이 춘천의 자랑거리를 제대로 찾아서 비석을 세웠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며 강원대학교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커지기 시작했다.
정리=박해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