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화》 최연소 총장이 되어(2)
《제102화》 최연소 총장이 되어(2)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5.05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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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봉의 의미는 바로 확인되었다. 1982년 1월 11일, 내가 강원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하기 전에 대통령께서는 이미 춘천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환영이기 보다는 거부감이었다. 학교와 지역의 인사들이 45세에 국립대학의 총장으로 임명을 받으니 너무 젊다는 것이었다. 나쁘게 말하여 아직 어리다는 뜻이 들어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는 서울대학에 있을 때 부교수이었고, 대학 보직의 학장은커녕 가장 기초인 학과장도 해본 일이 없었다. 이런 경력의 소유자가 대학의 연구, 교육, 행정 그리고 대학발전 비전을 제대로 갈무리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정직한 고백으로, 첫 날 교무위원회(각 단과대학의 학장과 대학 본부의 중요 보직자들이 참여하는 종합대학의 중요한 회의)를 열고 중앙에 앉아서 좌중을 훑어보았을 때, 모두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모 단과대학 학장은 바로 이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질문하여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새로 부임하신 총장님은 춘천, 아니 강원도와는 어떤 연고가 있으십니까?’

다 알고 있으면서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순간 좌중은 찬물은 끼얹은 듯 조용했다. 나는 우선 숨을 고르기 위해 헛기침을 한 뒤, 조금은 과장되게 분명한 답변을 했다.

‘질문하신 뜻은 알겠습니다. 전혀 연고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한나절 생활권이고, 지구는 하나의 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아침을 먹고 다음날 미국에서 아침을 먹고 일을 본 뒤에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오후에 일을 마친 뒤에 다음 날 점심때쯤에는 김포공항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곳이 저의 연고지역이 됩니다. 여기 강원대학교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려 심부름을 해 드리겠습니다. 적극 지원해주시기를 이 자리를 빌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심부름을 열심히, 그리고 효과 있게 해드릴 경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도 있습니다. 진정 어린 협조를 부탁합니다.’

이 말에 나이 드신 몇 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수용하는 눈빛이었다. 그날부터 저녁을 밖에서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뜻 깊은 일을 하나 더 하였다.

한말에 의병대장으로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던 의암 유인석(1842∼1915) 대장의 송덕비(頌德碑)를 그의 고향 마을, 춘성군 동면 가정리에 세웠다. 본래는 국방부에서 항일 독립운동의 예로 유명한 배우들을 동원하여 유인석 대장의 활약을 연극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을 내가 감상한 일이 있어서 이 연극을 춘천에서 공연하여 춘천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만한 공연장소가 없어서 비석을 세우기로 하였다. 이 일이 춘천의 여러 유지들과 시민들에게 알려지면서 새로 부임한 총장이 춘천의 자랑거리를 제대로 찾아서 비석을 세웠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며 강원대학교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커지기 시작했다.

정리=박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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